▶ 뉴밀레니엄 기행 (9) 라틴아메리카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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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왕국을 찾아서남미최대의 왕국, 아니 스페인 점령전 남미 역사에 있어서 유일하게 존재했던 왕국다운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잉카왕국은 뛰어난 건축술과 천문학 등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마야문명과 달리 문자가 없었다. 따라서 똑똑한 어린이들을 특별훈련하여 이들로 하여금 지난 역사와 새로운 사건들을 기억해 구전으로 역사를 전달하게 했으며 독특한 매듭만들기로 역사를 기록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이 같은 전통을 파괴했다.
따라서 자세한 역사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그간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고대문명이 그러하듯이 자연을 숭배했던 잉카족은 11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중의 하나로 잉카성지인 티티카카에서 북상중 이곳에 정착했다. 태양의 아들을 자처했던 이들은 5만명이 20년에 걸쳐 ‘지구의 배꼽’이라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건설했다. 세계가 뱀, 퓨마, 독수리로 각각 상징되는 전생과 현세, 내세의 세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던 이들은 도시를 퓨마모양으로 만들었다.
잉카로드 15,000 마일 건설특히 전투적이었던 잉카족은 저항하는 타 부족의 귀족을 생포하면 고문해 죽인 뒤 그 뼈로 피리를 만들고 두개골을 술잔으로 썼던 것을 잉카박물관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 같은 잔인한 방식으로 영토를 넓혀간 잉카는 1438년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 거대한 왕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쿠스코는 스페인 정복당시 20만명의 거대한 도시로 발달했고 잉카는 쿠스코 중심가로부터 북으로는 에과도르, 남족으로는 칠레, 동쪽으로는 아마존, 서쪽으로는 태평양에 이르는 네 방향의 도로를 기점으로 무려 1만 5천마일에 달하는 놀라운 잉카로드를 건설했다.
수도 쿠스코에 유적 3만여개이 같은 왕국의 수도답게 쿠스코에는 고고학적 유적이 3만 6천개나 존재한다. 그러나 스페인의 파괴에 의해 겉으로는 잉카의 유적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쿠스코는 잘 보존된 너무도 아름다운 스페인 도시 같다. 특히 스페인이 어디에 가나 중심광장으로 세운 아르마스 광장은 잉카 정복기념으로 세운 남미최대의 성당 등 스페인이 건설한 옛 건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는데다가 이후 고층건물을 짓지 않아 사방을 돌아보아도 시선을 가로막는 고층건물이 하나도 없고 푸른 하늘과 멀리 보이는 병풍같은 산만 보이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광장 중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었다.
강진에도 원형 그대로 남아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스페인의 파괴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잉카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거대한 산토 도밍고 성당이다.
스페인이 잉카의 중심성지였던 태양의 신전을 부수고 그 자리에 세운 이 성당은 정면의 경우 신전의 일부였던 높이 10미터의 거대한 돌축대를 부수기에는 너무 힘이 들고 건축적으로도 문제가 많아 축대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성당을 지어 잉카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다.
즉 멕시코 시티처럼 옛 신전을 완전히 파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이 벽은 엉성한 다른 쪽의 스페인 벽과 달리 특유의 놀라운 잉카 건축술을 발휘해 거대한 돌을 돌 사이에 종이 한 장도 안 들어갈 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 놓고 있어 단번에 잉카의 벽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벽은 다른 잉카건축들과 마찬가지로 돌을 과학적으로 엇물리고 10도 정도 경사가 지도록 건축해 수 차례에 걸친 강진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그 위에 세워진 성당과 다른 쪽 벽들은 여러번 파괴되어 재공사와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겪어야 했다.
카하마르카의 충돌사실 잉카는 놀라운 건축술만이 아니라 풍부한 농산물, 아마존에서 채취한 막대한 사금 생산으로 경제적으로 풍요한 경제대국이었다. 이는 신대륙의 최고문명이 서구와 맞부딪친 ‘카하마르카의 충돌’이라고 불리우는, 인류학적으로 유명한 사건의 일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잉카정복에 나선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잉카왕이 페루의 산간지방인 카하마르카에 원정을 온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매복을 하고 있다가 그를 인질로 잡고 길이 6미터 폭 5.4미터 높이 2.4미터의 방을 금으로 채우라는 인류사상 최고액의 몸값을 요구해 이를 받아낼 정도로 잉카에는 금이 풍부했다. 그리고 피사로는 몸값을 받아낸 뒤 약속을 어기고 잉카왕을 무참히 학살했다.
구름위의 유적지 마츄피츄페루하면 역시 떠오르는 것은 남미최고의 문화유적으로 손 꼽히는 마츄피츄이다. 노래가사에도 있듯이 "구름도 쉬고 가는"것이 추풍령고개라고 하지만 마츄피츄로 가는 길은 구름위를 달려가야 한다.
쿠스코를 떠나 마츄피츄로 향하는 기차는 높은 산의 오르막길에서 볼수 있는 지그재그의 차길처럼 얼마를 올라갔다가는 다시 뒤로 후진을 했다가 다시 올라가는 식의 독특한 지그재그형 철로를 달려간다. 이렇게 얼마를 달린 기차는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해 아마존의 원류인 우람바라강을 끼고 원시림을 달린다. 그 같은 기차여행을 마치면 평지에 우뚝 선 산봉우리들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이 산봉우리를 향해 다시 버스를 타고 지그재그로 산꼭대기에 오르면 첩첩산중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바로 ‘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마츄피츄이다. 이 첩첩산중에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기막힌 명당자리에 이 같은 거대한 유적을 지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잉카인들은 비옥한 평지를 놔두고 이 첩첩산중에 1천명이 살수 있는 거대한 자급자족의 소도시를 만든 것일까? 어쨓든 너무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경이로운 문화유적이 첩첩산중에 위치해 정복자 스페인에게 알려지지 않음으로서 스페인의 야만스러운 파괴를 피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생의 역사는 요원한가도저히 내려오기가 싫은 마츄피츄를 뒤로 하고 지그재그의 산길을 거꾸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7-8살 된 한 작은 인디오 소년이 전통잉카복장을 하고 수직으로 난 잉카로드를 따라 맨발로 산길을 뛰어내려와 차가 내려오는 길에 미리 와 서 있다가 가슴에 손을 댔다가 펴는 전통적인 잉카의 인사법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차가 다시 지그재그길을 돌아 다른 구비로 내려오면 지름길인 잉카로드를 달려 내려온 소년이 미리 내려와 있다가 다시 인사를 하는 식으로 근 한 시간의 길을 계속 따라 내려오며 인사를 했다.
결국 차가 평지에 내려오자 이 소년은 차에 올라타 관광객들에게 팁을 구걸하는 것이었다. 팁을 얻은 뒤 떠나는 차를 향해 다시 옛 인사법으로 인사를 하는, 아마도 전설적인 잉카의 전령의 후예일 이 소년, 그리고 이 소년 옆에 서서 조야한 고예품들을 하나라도 더 팔아보겠다고 떠나는 차를 향해 흔들어대고 있는 한 인디오 여인의 주름잡힌 얼굴을 바라다보면서 슬픈 패자의 역사를 되씹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패자가 없는 역사,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공생의 역사는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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