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여객선 금강호가 동해항을 떠나 북한 땅인 장전항에 도착하는 것은 아침 7시께다. 이에 앞서 선내 방송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전달된다.
"해뜨는 시각은 아침 6시20분입니다. 동해의 장엄한 해돋이를 구경하실 분들은 지금 갑판으로 나와 주십시오."
그러나 갑판에 나온 관광객들을 압도하는 것은 동해의 해돋이가 아니다. 날이 밝으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장전항과 금강산의 조화된 아름다움이다.
깎아지른 천불산이 병풍처럼 항구를 둘러싸고 있고 그 속으로 호화여객선이 입항하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처음에는 캄캄한 새벽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것이 날이 밝으면서 드러나는 금강산의 전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한다. 앞에는 금강산 뒤에는 동해의 해돋이가 시작되는 이 시간이야말로 금강산 관광코스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금강산 관광에서는 입항하는 순간이 감격의 피크를 이루는 셈이다. 보통 마을이 있고 차로 한참 달려가야 산이 나오는 법인데 장전항은 산 절벽이 바로 항구에 닿아있어 절경을 이룰 수밖에 없는 형세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여객선 위에서는 금강산을 촬영할 수 없다는데 있다. 장전항은 북한의 주요 군사기지이기 때문에 사진 찍으면 큰일난다는 소리를 안내원들로부터 귀따갑게 들은 후라 아무도 갑판에 카메라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없다.
"~하면 안 된다"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비하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북한산림 관리원에게 선물을 주면 안 된다" 등등 "안 된다"의 종류가 30여 가지에 이른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북한측의 ‘디지털 노이로제’다 ‘디지털’이라는 글자가 붙은 것은 무조건 금강산에 갖고 들어갈 수가 없다. 기자는 취재용 카메라와 캠코더가 모두 디지털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관광안내양의 카메라를 빌려 사용했다. 이렇게 처음부터 겁을 주니까 북한 입국수속을 밟을 때 울려 퍼지는 "반갑습니다" 노래도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금강산 입구에는 ‘온정각’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남한의 ‘현대아산’에서 직접 경영하는 휴식소로 온천장, 기념품매점, 식당, 평양 모란봉교예단이 공연하는 돔극장이 있고 그 옆에는 6층 해상호텔인 ‘해금강 호텔’이 바다 위에 떠있다. ‘현대’가 해상호텔을 영국에서 구입해 이 곳까지 끌어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온정각’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 용산 빈민촌 가운데 자리잡았던 미8군사령부 영내가 연상된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 사람들은 8군 영내 식당에서 식사하고 PX에서 샤핑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삼았었다. 북한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온정각’은 남한과 북한의 빈부차이를 실감케 하는 전시장이었다.
기자는 이번 관광에서 현대 측의 특별 배려로 북한 당국에 부탁해 ‘금강산 호텔’을 구경하고 그 옆 ‘금강원’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놀란 것은 우리 일행이 온다고 하여 금강원 식당 종업원이 그 날 하루만 출근한다는 사실이었다. 식당 방안에 석유난로를 켜 놨는데 북한에서 석유난로 켜는 것은 굉장한 대우를 의미한다고 현대측 간부가 설명했다. 그러니까 북한의 금강산 호텔은 손님이 올 때만 문을 여는 특수한 호텔이다. 보통 때는 운영할 능력이나 형편이 안 돼 외부인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호텔이다.
금강산 부근에 있는 북한 마을들을 보면 굴뚝에 연기 나는 집이 별로 없고 밤에 전기가 켜져 있지도 않다. 마을에 돌아다니는 개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집 모양도 너무 초라하다. 남한 관광객이 다니는 길목의 집들이 이 정도라면 다른 북한지역은 어떻게 사는지 짐작이 간다.
금강산 관광에서 새삼스레 느낀 것은 금강산 관광은 ‘관광’이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금강산이 경치 좋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보다는 북한 알기 운동의 최적합 장소가 금강산 관광코스라고 생각한다. 금강산에 배치된 북한 관리원들의 사고방식과 태도에서 남북한의 현실이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의 교육현장이다. ‘아! 금강산’이라고 시인들이 금강산 경치를 극찬했지만 거기에는 겨레의 아픔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 금강산’.
① 필자
② 구룡폭포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관광객들
③ 만물상에서 험하기로 이름난 천선대를 오른 78세의 유경목 할아버지 부부. 왼쪽은 관광안내원 김중연양.
④ 김일성의 손이 닿은 곳에는 모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약수터에서 물 마신 것도 바위에 새겨져 있다.
⑤ 현대에서 운영하는 금강산 온천장에는 조선족 아가씨들이 근무하고 있다. 배에는 필리핀, 러시아인들이 고용되어 있다.
⑥ 온정각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공연하는 모란봉교예단. 마지막 장면에서는 ‘반갑습니다’를 관중들과 합창한다.
⑦ 금강산 입구
⑧ 현대가 운영하는 온정각, 이 곳은 별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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