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키스의 클레멘스, 구속 아직도 시속 100마일
지난시즌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놀라운 피칭을 보였던 뉴욕 양키스 투수 로저 클레멘스가, 이번 시즌에도 예의 폭발적인 강속구를 과시할지 벌써부터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 칼슘축적이 저해되고 근육이 약화되면서, 어쩔수없이 다리와 어깨의 폭발적인 움직임이 둔화된다.
이런 노화현상은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팔을 들어서 앞을 향해 힘차게 뿌리고 후속동작을 취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팔동작의 움직임이 둔화되면 공의 스피드도 떨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양키스의 트레이너 진 모나한은 지난시즌, 로저 클레멘스가 시애틀 메리너스와의 플레이오프 전에서 보여준 피칭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인체의 노화 프로세싱을 잘 알고 있는 모나한의 눈에 비친 클레멘스의 피칭은 경이 그 자체였다.
지난해 10월에 벌어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 4차전에서, 38세의 클레멘스는 초구를 시속 96마일로 던지더니 경기중반까지 계속 비슷한 속도를 유지했다. 그는 마치 어른 선수가 리틀리그 선수들을 상대하듯, 글자그대로 매리너스 선수들을 압도해 버렸다.
모나한은 클레멘스가 5회를 마치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잘해야 한 두 이닝을 더 버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클레먼스는 6회에서 시속 99마일의 강속구를 뿌리며 두 명의 타자를 삼진아웃 시키더니, 7회 들어서야 상대팀에게 첫 안타를 허용했다. 모나한은 내심 이제 클레멘스가 강판할 때가 됐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모나한의 속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8회를 넘겨 9회까지 완투하며 변하지 않은 강속구를 뿌려냈다. 그는 이 경기에서 무려 15개의 삼진을 뽑아냈다. 40세 생일을 앞둔 선수의 피칭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경기후 모나한은 이렇게 평가했다.
"한마디로 기록적인 현상이다. 클레멘스는 소위 말하는 노화과정을 잠시 유보시켜 놓은 것 같다"
클레멘스의 활약은 월드시리즈에서도 계속됐다.
메츠와 벌인 지하철 시리즈 2차전에 선발출전한 클레멘스는 마이크 피아자에게 부러진 방망이를 집어 던짐으로써 옥의 티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이 경기에서도 시속 100마일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리며 메츠 선수들을 철저히 농락했다. 4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시속 100마일 가까운 강속구를 뿌린 투수는 클레멘스 외에는 놀란 라이언이 유일하다.
양키스의 피칭코치 멜 스토틀마이어도 말한다.
"40세 가까운 나이에 그런 강속구를 뿌리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또, 한 때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클레멘스와 함께 활약했던 투수 톰 시버스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클레멘스는 육체적 견본과 같다"
시버스는 메이저리그 통산 삼진 3,640개로 역대 3위이고, 클레멘스는 현재 3,504개로 8위에 랭크되어 있다. 하지만, 클레멘스가 이번 시즌을 무사히 마치면 역대 3위로 도약할 것이 확실시된다.
흔히 공의 속도가 투수의 능력을 재는 척도로서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 투수의 능력은 공의 속도 못지 않게 컨트롤과 체인지업 구사능력에 크게 좌우된다. 물론, 어떤 투수가 예외적인 강속구에다 제구력과 체인지업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타자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능력을 30대 중반 이후의 투수들에게서 기대하기는 무리다.
공의 속도는 신체부상이 없어도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줄어든다.
보통 2, 3년만에 시속 2내지 3마일씩 줄어든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31세에 시속 95마일로 던진 투수라면 36세에는 시속 90마일로 던지는 것이 상식이다. 이 나이가 되면 강속구는 결정구라기 보다는 하나의 잠재적인 피칭수단으로 격하된다.
노련한 투수들은 공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만회하기 위해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노하우를 발휘한다. 게중에는 공에 약간 흠집을 내거나 물을 묻혀서 구질변화를 도모하는 속임수를 쓰는 경우도 더러 있다.
클레먼스는 40세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음 몇가지 이유 때문에 아직도 변함없는 강속구를 뿌릴 수 있다.
클레멘스의 첫 번째 비밀은 그의 투구동작이다.
그는 마운드에서 셋포지션 순간 몸을 굽히지 않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다. 6피트 4인치의 신장에 230파운드의 거구인 클레멘스가 몸을 세운 동작에서 위에서 밑으로 뿌리는 공은 그만큼 위력이 배가될 수 밖에 없다.
클레멘스는 자신의 신체구조에 대해서도 정통하고 있다.
그는 수시로 포수와 투수코치에게 자신의 신체적 체크포인트를 점검해 달라고 요청한다. 양키스의 포수 호르헤 포사다가 경기도중 수시로 클레멘스에게 모션을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클레멘스의 또 다른 비결은 그의 DNA 특성에서 기인한다.
그의 독특한 DNA 형질 때문에 팔의 스피드를 높이고, 폭발적인 강속구에 필수적인 근육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클레멘스는 강하고 육중한 다리근육의 소유자다. 클레멘스는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전적 특성을 바탕으로 신체의 밸런스를 유지하며 폭발력을 발휘한다.
클레멘스의 마지막 비밀은 성실함과 강도높은 훈련이다.
그는 스프링캠프에서도 훈련벌레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양키스 선수들 중 훈련장에 가장 먼저 나와서 1시간 동안 심박동 및 근력운동을 한다. 아침식사 후에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2시간 반동안 팀 정규훈련에 참여한다.
오전훈련을 마치면 사워를 하고 오후 5시까지 골프를 친다. 또 저녁에는 뜻이 맞는 몇몇 선수들과 함께 체육관에 가서 90분간 육체미 훈련을 한다. 클레멘스는 타고난 성실함과 강도높은 훈련을 통해서 늘어가는 나이를 상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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