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간 한미정상회담은 클린턴행정부때의 긴밀하던 한국, 미국, 북한간 상호관계를 180도 바꿔버렸다. 3자간 모든 관계가 현재 경직되어 있다. 본보 논설·편집위원 좌담을 통해 한미정상회담의 파장과 앞으로 남북관계, 미북한 관계를 살펴본다.
▲옥세철 논설실장 -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3주 이상 지났는데 아직도 그 여운이 길게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최근 한국정부의 개각에서 외교 통상부 장관이 경질된 것도 그 여파로 보아야될 것 같습니다. 한미 양국은 오랜 동맹관계란 점에서 정상회담 후 이번처럼 양국 정상의 의견 차가 적나라하게 공동성명에 표현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회담의 뒷이야기도 아직도 무성합니다.
▲권정희 편집위원 - ‘this man’이란 표현이 한동안 논란이 되었지요. 부시 대통령이 김대통령을 지칭하면서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없이 이런 표현을 썼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를 두고 한국신문들이 시끄러웠습니다. 무례한 표현이다, 부시가 원래 소탈해서 그런 것뿐이다 말이 많았는데 정상회담 분위기를 되돌이켜 보면 김대통령이 제대로 대접을 못받은 것만은 확실한것 같아요.
▲박덕만 편집위원 - 부시대통령은 미국측 외교전문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정도로 김대중 대통령을 박대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부시가 주장한 대북한 정책의 재검토가 옳고 그르냐 하는 문제를 떠나 외교 의전상으로도 외국, 그것도 전통적 우방국가의 국가원수를 그렇게 대한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비난이 많았습니다. 외교적인 열차 정면충돌이라는 어휘를 사용한 전문가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민경훈 편집위원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완전한 실패였다는 게 대다수 관측통들의 평가인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가방위 미사일체제(NMD)와 관련, 느닷없이 러시아편을 들어 주는가 하면 김대통령이 방미 도중 그것은 실수였다고 자인하는등 정부안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도대체 왜 서둘러 정상회담을 하러 왔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외무장관은 그 후에도 외교 기밀에 관한 사항을 공공연히 밝히고 다니다 결국 해임되고 말았습니다.
▲옥 -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미언론의 시각은 비교적 뚜렷이 갈라져 보입니다.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해하려는 측면의 보도가 꽤 많았던 게 사실이지요. 북한은 결국 포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서 출발해 이런 점에서 볼때 DJ의 햇볕정책은 온당한 대북한 접근방식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진보세력의 시각으로 정리될 수 있겠습니다. 보수세력은 아주 상이한 평가를 했지요.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아주 회의적 시각이었지요.
▲박 - 부시가 취임후 자신의 집을 처음 찾아온 손님을 왜 그렇게 박대했느냐 하는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김대통령이 방미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전략미사일 제한협정(ABM)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ABM은 부시가 애타게 추구해온 NMD에 정면으로 상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부시가 자신의 뒤를 밀어준 보수세력과 방위산업체에 보답을 하기 위한 차원에서 NMD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권 - 한국이 미국에 정면 도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걸 한국정부도 잘 알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러시아의 힘을 빌어 북한과의 협상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측에서 보면 한국의 ABM 지지는 일종이 도발이었지요.
▲옥 - 그 부문이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잘 모르고 한 실수였다는 게 한국측의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부시 행정부 안보팀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 NMD 계획이어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문인데 한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러시아편에 서서 NMD계획에 반대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는 게 진짜라면 이건 너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혀 문외한들이 한 국가의 외교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보아야겠지요.
▲박 - 부시가 예상보다 지나치게 대북한 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NMD 때문입니다. NMD라는 것이 누군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대가 있어야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NMD 구축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북한을 ‘깡패국가’로 몰아세우고 있는데 세계 안보의 책임을 맡고 있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옥 - 하여튼 아시아의 혈맹인 한국 정부가 NMD 계획에 정면 반대한다는 것을, 그것도 러시아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한 점에 미국의 조야는 상당히 쇼크를 먹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진보세력의 대변지라 할 수 있는 뉴욕타임스도 이 문제를 대서특필하고 나섰으니까요. 보수 논객들은 ‘한국 정부의 심중이 의심스럽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지요. 또 DJ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사실을 상당히 시니컬한 입장에서 다루기도 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 ‘미국서는 노벨 평화상 약발이 안 통한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처럼 들립니다. ‘노벨상이 방탄조끼가 될 수 없다’는 식의 표현이 그런 거죠.
▲권 - 김대중 대통령이 너무 서둘렀다는 인상이 점점 분명해집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플로리다 이변이 터져 클린턴의 방북길이 막히고, 대북관계도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서둘러 뭔가 추진해보고 싶었던 것같습니다. 부시행정부 측은 아직 준비가 안됐으니 더 있다 만나자는데도 김대통령측이 무리를 해서 워싱턴을 방문했다는 후문입니다.
▲박 - 김대통령 측에서 보자면 부시 당선되자마자 "한 건 올리겠다"는 욕심에 서둘러 방미했다가 한방 얻어맞은 꼴입니다. 가뜩이나 국내 상황도 안 좋은데 외교적 성과로 만회해 보려던 것이 오히려 혹을 붙이고 돌아갔으니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실무적 차원에서 충분한 접촉을 통해 의견을 조율한 다음에 정상회담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당연히 손을 들어주려니"하고 안이한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민 - 그래서 그런지 부시 행정부도 우왕좌왕했습니다. 파월 국무장관이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해 오던 대북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만에 부시 대통령이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하자 파월은 서둘러 이를 번복해야 했습니다.
▲권 - 행정부내 강경·온건파 갈등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지요. 체니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의 강경노선과 파월 국무의 온건노선이 사사건건 부딪히는데 부시는 강경쪽에 기울어 있다지 않습니까. 앞으로 대북관계가 쉽지 안겠어요.
▲민 - 대북정책이 공화당내 강경파에 의해 주도될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아직 뚜렷한 대북정책을 수립한 것 같지는 않지만 ‘북한과 김정일은 믿을 수 없다’는 인식만은 확고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북한이 거저 미국 원조를 받기는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옥 - 한 시사 주간지는 현 부시 행정부 외교 안보팀이 과거 군사정권시절 한국정부 지도자들과 가깝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현 DJ 정부 인사들에게 불신의 시각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지적도 했습니다. 어찌됐든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DJ 정부로서는 상당히 달갑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온 게 틀림없다고 보아야겠지요. 북한 정책은 물론이고 국내 정치 일정에도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고 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북한 카드’가 현 DJ 정부로서는 최대의 카드인데 이게 빛을 잃게 되어서죠. 무슨 카드로 정국을 리드해 나갈지 모르겠습니다.
▲권 - 정국이 막히면 가장 쉽게 꺼내 드는게 개각 카드 아닙니까. 신임 외교, 국방장관들이 부시행정부쪽에 인맥 있는 인물들이라는데 인맥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이지요. 인맥으로 대화의 문은 열수 있을 지 몰라도 국가의 정책방향까지는 바꾸기 어렵지 않을까요?
▲민 - 부시 행정부가 DJ와는 사실상 공조를 중단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워낙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큰데다 DJ가 이미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쪽에서 “부시 행정부와 대북관이 너무 같아 사대주의자로 몰릴까 걱정”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관련 주목됩니다. 미국 쪽에서 은근히 한국의 정권 교체를 바라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엿보입니다.
▲박 - 한국 보수세력에서는 "잘됐다"하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열었지요. 어느 보수신문은 ‘대북 원맨쇼에 걸린 제동’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 미 행정부와 대북한 정책 조율에 실패한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김 대통령의 대북 접근방식이 한국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민 - 앞으로는 탈북자 문제가 미북한 관계의 새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기아를 피하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인신매매단에 팔리거나 노동 착취를 당하는 탈북자들의 참상이 그 동안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란 명목으로 그늘에 가려져 왔습니다. 이들에게는 햇볕정책이 달빛정책이 되고 만 셈입니다.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봐도 당위성이 있고 돈 안들이고 북한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이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박 - 부시가 지금은 북한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고 있지만 결국은 클린턴처럼 ‘당근’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지요. 북한이 단시일 내에 무너질 리도 없지만 설령 체제가 붕괴된다고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등 주변 국가들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일단 북한을 살려놓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옥 - 정주영 회장의 별세도 타이밍이 묘하다는 느낌입니다. 햇볕정책에 대한 미국의 회의로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국내에서 별반 지지를 받지 못하던 현대의 금강산 관광등 대북 사업도 결국 시들해지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정회장이 타계해서 하는 말입니다. ‘실향’의 한은 아무래도 2세, 3세로 넘어가면 점차 엷어지는 법이고 거기다가 현대그룹의 사정도 사정인 만큼 앞으로 민간 레벨에서의 북한 접촉도 시들해지리라 봅니다.
▲민 - 이래저래 DJ정부는 코너에 몰려 있습니다. 경제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의약분업도 실패로 끝났으며 공교육은 무너진 지 오래고 유일한 업적이던 햇볕정책도 미국의 반대와 북한의 비협조로 좌초에 직면해 있습니다. 대통령 중임제 개헌론이 솔솔 나오고 있는 것도 현행 헌법으로 투표를 할 경우 정권을 유지할 수 없고 그렇게 될 경우 집권 5년간 한 일이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 가능성이 크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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