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LA 뮤직센터의 밤은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이날 하오 7시부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는 기라성 같은 가수와 지휘자들이 나온 가운데 플라시도 도밍고의 LA 오페라 예술감독 취임축하 겸 기금모금 잔치가 열렸다.
공연장은 레드 카펫에 암표(35~250달러의 표가 매진) 그리고 보우타이와 드레스의 물결을 이루었는데 LA의 유지들은 다 모인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파빌리언 앞 광장에 마련된 텐트디너 입장료는 1,500달러.
도밍고(60·사진 맨 오른쪽)는 LA 오페라가 창단된 1986년 시즌 개막공연에서 오텔로로 나온 이래 지금까지 이 오페라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현재 워싱턴 오페라의 예술감독도 겸하고 있는 도밍고는 매우 바쁜 사람이다. 오페라 감독뿐 아니라 테너로서 분주하게 무대에 서고(현재 메트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에 출연중) 또 오페라 지휘와 행정 등을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때로 동분서주하는 그를 보고 저렇게 바쁘면서도 양질의 음악을 낼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에 빠지게 된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친구들: 환영 콘서트 & 축제’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공연잔치에는 3명의 세계적인 젊은 지휘자들인 에사-페카 살로넨과 켄트 나가노 그리고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바톤을 잡고(게르기에프는 맨손) 돌아가며 LA 오페라 오케스트라(LA타임스 클래시칼 음악비평가 마크 스웨드로부터 소리가 나쁘다고 가혹한 소리를 들었다)를 지휘했다. 제4의 지휘자는 오스카상을 5번이나 탄 존 윌리엄스. 잔치는 윌리엄스가 자작곡 ‘올림픽 팡파르’를 지휘하며 시작됐다.
곡이 끝나자 긴 금발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상아빛 피부의 늘씬한 미녀가 나왔다. 저게 누군가 했더니 얼마전 남편 탐 크루즈와 헤어진 니콜 키드만. 키드만의 소개로 도밍고가 나와 메조 소프라노 프레데리카 본 슈타드와 함께 내년도 시즌에 공연될 프란츠 레하르의 ‘즐거운 미망인’ 중 2중창을 노래하며 축제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도밍고는 이 날 이 노래 외에도 내년도 시즌 개막작품인 차이코프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 중 아리아와 뮤지컬 쇼보트 중 ‘메이크 빌리브’(소프라노 루스 앤 스웬슨과 듀엣) 그리고 메조 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와 듀엣으로 부른 ‘브라질’ 등 모두 4곡을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와 함께 마누엘 페넬라의 ‘엘 가토 몬테스’ 중 듀엣을 부른 애프로 헤어스타일의 줄리아 미게네스는 프란체스코 로시의 오페라 영화 ‘카르멘’(84)에서 도밍고의 돈 호세를 유혹했던 카르멘이었다.
도밍고는 이날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본 슈타드, 캐서린 말피타노(메조 소프라노) 등과 춤까지 추며 신나게 잔치를 즐기고 연설까지 했다. 나는 평소 다소 답답한 느낌을 주는 도밍고의 노래보다는 성량 풍부하면서도 청아한 파바로티의 노래를 더 좋아하는데 이 날은 잔치분위기 때문인지 도밍고의 노래도 듣기 좋았다.
사회는 키드만 외에도 미라 소비노, 캐시 베이츠 및 셀라 워드 등 여배우들이 맡아 했는데 이색적이었던 것은 인기 라틴가수 릭키 마틴의 등장. 도밍고와 함께 노래 부르던 마틴이 자기 특기인 엉덩이를 돌리며 도밍고에게도 따라 돌려보라는 제스처를 보내 청중의 폭소를 얻어냈다.
또 다른 색다른 게스트는 귀먹은 타악기 주자 에블린 글레니. 그는 음의 진동을 잡으려고 맨발로 무대에 서곤 하는데 이 날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하비에르 알바레스의 음악 ‘테마스칼’에 맞춰 재즈악기인 마라카스를 흔들어댔다. 현대음악과 아프리카 무당음악을 섞어놓은 듯한 독특하게 매력적인 음악이었다.
이 날 참석한 유일한 남성 클래시칼 가수는 LA 팬들에게 잘 알려진 베이스 새뮤엘 레이미. 59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하긴 도밍고도 나이 60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정력적이고 신선했다) 그는 베르디의 ‘아틸라’ 중 아리아와 뮤지컬 ‘라만차의 사나이’ 중 ‘임파서블 드림’을 열창했다. 여자 가수중 인기를 독차지한 것은 본 슈타드. 노래도 잘 불렀지만 어찌나 애교를 부리며 연기를 잘 하는지 즐겁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LA 오페라와 작품 협력을 할 키로프 오페라의 감독인 게르기에프의 지휘는 이날 처음 봤는데 열 손가락을 사시나무 떨 듯 하는 정열적인 지휘였다. 축제는 내년 시즌부터 LA 오페라 상임지휘자로 활약할 긴 머리의 나가노 지휘로 가수들이 레너드 번스타인의 ‘캉디드’ 중 ‘메이크 아우어 가든 그로우’를 합창하며 끝났다. 원래 음악은 발췌로 듣는 것이 아니지만 이 날은 그저 잔치기분에 젖어 별들이 빛나는 밤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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