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주에 사는 딸네 집은 방문했을 때 딸아이는 매일매일 스케줄을 짜면서 그곳의 명소들을 구경시켜 주려 했다. 나는 타인에 의해 돌아가는 팽이가 된 것처럼 딸아이가 짜 놓은 스케줄에 나를 맡기며 그곳 관광을 즐겼다.
로키산맥 안에는 여러 개의 온천들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갔던 온천은 아이다호 스프링스라는 산골마을에 있는 동굴온천이었다. 이 동굴온천은 오래 전에 인디언들이 처음 발견한 온천으로 문명이전에 원초적인 자연 그대로를 즐기라는 의미에서인지 수영복을 입지 않은 나신으로 동굴 온천수에 들어가는 것이 규칙이었다.
딸과 함께 입장료를 내고 탈의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여직원이 당신들 한국인이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했더니 휴게실 벽에 붙어있는 주의사항을 읽어보라는 부탁이었다. 그러겠노라고 하면서 탈의실을 거쳐 휴게실로 들어서니 여러 명의 외국 여인들이 큰 타월에 몸을 감고 앉아 쉬고 있는 맞은 편 벽에 한글로 쓴 글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 산골에 한글(?)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으로 단숨에 내용을 읽어갔다. 동굴 온천 내에서는 절대 큰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는 것. 절대 때 수건으로 때를 밀지 말라는 것. 몸에 오일이나 얼굴 팩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고, 이상의 규칙 을 지키지 않은 시에는 퇴장시키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은 ‘절대’와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경고문" 이였다.
이 미국은 다민족이 함께 사는 나라이다. 동굴 온천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결코 한인뿐만 아니고 다른 민족 다른 동양인들도 태반일텐데 유독 한글로 쓴 경고문만이 턱 붙어있으니 한국인의 체면이 말이 아닌 창피를 당한 꼴이 되어 어이가 없었다. 경고문의 내용을 아는 외국인들이라면 한국인들을 향해 비문화인들이라고 저희들끼리 비웃음을 것이 뻔한 노릇이다.
한글로 쓰여진 경고문은 분명 국제적 망신이긴 하나 그런 경고를 받아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장소에서 어떤 한국인들은 도덕적인 비난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규칙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티를 내는 꼴불견들 연출해내니 무질서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경고문은 우리 스스로가 지은 업보 같은 것이다.
온천은 바쁜 도시인들의 스트레스 해소나 피로를 풀어주는 휴식처로서도 좋은 곳이고 특히 직업병이나 감기몸살이 있을 적에도 발열법으로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인기 있는 곳이다. 좋다는 것은 어떻게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한국인의 속성이라 인기 있는 온천수에 떼를 지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신 때문일까 한국인들은 무엇을 해도 뭉쳐서 다시 말해 떼를 지어서 한다. 혼자 있을 때는 조용하던 사람도 일단 무리를 짓게 되면 집단 심리랄까 없던 용기가 생겨 시끄러워지며 눈에 확 띄게 상황이 달라진다. 우스운 것은 떼를 지어 우르르 온천으로. 사우나탕으로 몰려다니는 떼 목욕족들이다.
목욕이란 원래 마음 닦는 수심의 의미에서 홀로 육신의 더러움을 닦아내는 수행차원이라고 했는데 왜 뭉쳐서 발가벗고 다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일에까지 떼를 지어 몰려다녀야만 하는 것은 그 만큼 현대인들은 외로운 것이 아니면 그놈의 정 때문에 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디서나 들리는 세계화, 세계화란 큰 것이지만 작은 것부터 남의 입장을 볼 줄 알아야하는 것일 것이다. 공동장소에서 적은 규칙을 잘 지켜 나가는 사람이 세계화대열에 낄 수 있는 성숙한 문화인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명심하자. 세계질서에 맞는 체질 개선을 하려면 각자 이기심, 내 편리만을 고집하며 사는 그 이기심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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