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 밀레니엄 기행 (6) 라틴아메리카를 가다
▶ 멕시코 <하>
정복당한 아즈텍 문화유카탄 반도가 마야문명의 보고라면 멕시코 시티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은 스페인 이전의 멕시코의 마지막 지배자였던 아즈텍 문명의 중심지이다. 약관 34세의 스페인 문관 에르낭 코르테즈가 신대륙의 꿈을 안고 쿠바를 떠나 500명의 군사, 14대의 대포, 12마리의 말을 거느리고 멕시코 해안에 도착, 진군을 하자 소문을 들은 아즈텍 왕은 100명의 부하들에게 금은보화를 등에 지어보내 뜨거운 영접을 했다. 이를 받고 떠나라는 뜻의 감사 표시는 엉뚱하게도 쿠바에서 금은보화를 찾지 못해 실망해 있던 스페인군들에게 드디어 찾고 있던 금은보화를 찾았다는 침략의 초대장이 되고 말았다.
500명이 10만명 학살
스페인은 이같은 환대에도 아랑곳없이 유카탄 반도로부터 멕시코 시티로 진군을 하면서 한 마을에서만 전체 주민 5,000명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기이한 사실은 이같은 만행에도 불구하고 코르테즈가 멕시코시티에 도착했을 당시 20만주민, 특히 6만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저항을 하지 않고 환대했다는 점이다.
특히 아즈텍이 신대륙에서 가장 잔인한 인신공양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전투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기이하다.
그리고 코르테즈는 이같은 환대를 역이용해 아즈텍 왕 목테즈마 2세를 인질로 잡는데 성공하고 이를 무기로 아즈텍을 점령했고 인구의 절반인 10만명을 학살한 뒤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들과 다른 모든 전통적 종교의식, 생활양식 등에 대해 화형과 같은 가차없는 처벌을 가해 새로운 스페인을 건설했다. 인류사상 가장 잔인한 정복의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풍요의 땅 테호투어칸 스페인에 의해 모든 것이 파괴된 멕시코시티와 달리 멕시코시티 근교의 테호투아칸의 경우 그 유적들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다.
한때 3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신대륙 최고의 도시를 자랑하다가 8세기 중반부터 버려져 스페인이 도착했을 당시 잡초에 덮여 있었던 덕이다.
‘신이 태어난 곳’이라는 뜻의 이 도시는 기원전 1세기에 세워져 예수 탄생 당시 이미 1만명 인구의 발달된 ‘근대적’ 도시로 발전했던 곳이다.
이 도시의 상징은 ‘달의 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라는 한 쌍의 피라미드. 한 변의 길이가 무려 225미터에, 높이 63미터로 유럽 정복전 신대륙 최대의 건축물이었던 태양의 피라미드, 공방과 상점들이 양쪽에 빽빽이 들어선 폭 40미터, 길이 5킬로미터의 거대한 도로를 중심으로 빗물 등 물을 모아 배급하고 관리하는 정교한 수관리체제와 일종의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근대적 도시가 이미 4, 5세기의 신대륙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옥수수·감자등 유럽전파적은 노동력으로도 수확이 엄청난 옥수수는 같은 시기의 유럽 등 다른 지역들과 달리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같은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했던 바, 사실 신대륙 정복과 함께 옥수수와 감자 등이 유럽 등지에 전파되면서 인류의 식량 문제는 질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우리의 경우 바로 이 곳에서 전파된 고추가 아니었다면 현재의 김치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풍요한 땅에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멕시코의 고대 문명, 그리고 스페인의 정복사를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한마디로 균형 잡힌 시각의 필요성이다. 물론 강조되어야 할 것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특히 인신공양을 이유로 이들을 쳐부수어야 할 야만으로 단정한 뒤 이들을 박멸하고 강제로 기독교와 서구문명으로 전향시키려한 스페인의 야만적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나 이같은 서구 정복의 비판이 인신공양을 비롯한 전통 멕시코 사회의 문제들에 눈을 감고 모든 옛 것을 미화하는 전통 미화주의로 흘러가는 것 역시 문제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이질적인 두 문화의 평화적 공존, 그리고 건설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상대방의 장점을 흡수해 나감으로써 서로 발전해 나가는 전향적 상호침투이다.
멕시코의 옛 유적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질적 문화간의 상호작용이 가속화될 지구화 시대의 문화교류가 어떠한 모습을 띠어야 하는가에 대해 그 비극적 역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급성장 한인사회, 부작용도 엄청페루의 잉카 문명과 함께 미대륙의 양대 문명이었던 마야의 유적지를 찾아 유카탄 반도로 향하면서 문득 유학시절인 1980년 한 책방에서 발견한 ‘야만의 멕시코’라는 책이 생각났다.
1920년대 멕시코를 여행한 미국의 한 언론인이 멕시코의 비인간적인 상황을 보고 고발한 이 책은 유카탄 반도에서 사슬에 묶여 노예 같은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동양인을 만난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코리아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너무도 큰 충격이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한국의 아는 언론인 등에게 편지로 알려주었고 결국 그 이야기는 한 작가의 취재에 기초해 ‘애니깽’이라는 소설과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게된 바 있다. 그러한 사연이 있기에 유카탄으로 향하는 느낌은 남달랐고 비행기에서 유타칸 반도를 내려다보며 저 아래 어딘가에 우리의 조상들의 피눈물이 고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처럼 한인의 멕시코 이민은 미국 이민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멕시코 이민은 최근 들어 폭발세를 보이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침체, 이와 대조적인 멕시코의 상대적인 경제호황으로 남미지역의 교포들이 멕시코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멕시코의 경우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어권으로 적응도 쉽고 한국과 무비자 협정이 되어 있는 것도 한인들이 멕시코로 모여들고 있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 결과 몇 년 전만 해도 1,000명에 불과했던 교포수가 1만명대로 늘어났다. 이들 교포들이 주로 하고 있는 일은 남미에서와 마찬가지로 의류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처럼 한인 커뮤니티가 갑자기 팽창하면서 잡음도 커지고 있다. 얼마전 한 현지 유력 일간지는 ‘먼 이웃, 작은 서울’이라는 기사를 통해 건물들의 불법 개조, 노래방의 심야 가무행위 등을 지적하며 “한국인은 공존하기 어려운 민족”이라고 비판했다.
또 불법행위들이 늘어나면서 교포들의 범죄행위로 97년 무비자 협정이 취소된 칠레처럼 멕시코도 무비자 협정이 취소되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비관적인 탄식이 양식 있는 교포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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