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 밀레니엄 기행 <5> 라틴아메리카를 가다
▶ 멕시코 <중>
인디오와 자파시스타14세기 초 풍요의 땅을 찾아 헤매던 아즈텍은 텍스코코라는 거대한 호수를 도착, 이후 멕시코 국기가 된 선인장에 앉아 뱀을 먹고 있는 독수리를 목격했다. 이 호수가 자신들이 찾던 약속의 땅이라는 계시로 읽은 아즈텍은 여기에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그 곳이 멕시코시티이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해 놀란 것은 인구 2,000만의 이 도시가 원래 거대한 호수에 많은 섬들이 떠 있고 수로로 연결된 ‘미주 대륙의 베니스’였다는 사실이었다. 이 아름다운 호수를 스페인이 매립해 지금과 같은 추한 도시로 만든 것이다. 멕시코 인류 박물관에 전시된 매립 이전의 멕시코시티의 원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 배들이 떠다녀 ‘떠다니는 정원’이라고 불리는 조치밀코에 일부 남아 있는 수로를 꽃장식 배를 타고 한적하게 오르내리고 있노라면 스페인의 야만적 행동에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아즈텍신전 부셔 성당건축
멕시코시티의 중심인 독립 광장에 서면 오른 쪽으로 거대한 성당이 시선을 압도한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정복 후 어디에 가나 제일 먼저 이같은 광장을 지었다. 광장 정면에는 총독부를, 오른쪽에 성당, 왼쪽에 행정부 건물, 총독부 맞은 쪽에 상점 등 주요 민간시설을 세웠다.
이같은 형식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라틴 아메리카 주요 도시에 가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독립 광장이 특이한 점은 바로 그 옆에 이 도시의 원주인인 아즈텍의 부서진 신전 터가 초라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광장에 서면 현대식 건물들 역시 뒤로 보여, 아즈텍, 스페인, 현대 멕시코라는, 멕시코를 구성하고 있는 세 문명의 존재를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어쨌든 스페인이 아즈텍 신전을 부셔 그 돌로 성당과 총독부를 지었다니 우리가 문화 파괴로 분노해 온 일본은 양반이었던 셈이다. 즉 일본은 최소한 종묘를 부셔 그 돌로 그 곳에 신사와 총독부를 짓지는 않았다.
미주 대륙 최대규모의 광장에 걸맞게 웅장한 규모로 지어진 성당은 그 옆의 초라한 아즈텍 신전과 대비되어 승자와 패자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성당은 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가라앉고 있어 일년 내내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마치 그 모습은 남의 신전을 부셔 만든 야만과 파괴의 역사의 무게를 이기고 못하고 가라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톨릭성지 과달루페 성당
그 뒤에 위치한 과달루페 성당으로 향하자 많은 노점상, 걸인들로 발을 디디기가 힘들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가입 이후 가속화된 사회적 양극화의 결과이다.
멕시코시티에 스페인이 세운 최초의 성당인 이 작은 성당은 어느 날 한 인디오가 인디오처럼 검은 피부의 성모 마리아를 본 것으로 전해져 이후 인디오를 가톨릭으로 전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역사적 현장이다.
특히 이 모습을 그린 당시의 그림을 분석한 교황청이 이 이적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성지로 지명함으로써 그 명성이 더해지고 있다. 물론 이같은 결정이 1억명에 달하는 멕시코의 가톨릭 인구를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는 하다.
검은피부의 예수상정작 이 성당에서 흥미로운 것은 성당 뒤편의 두 조각이었다.
하나는 처음 멕시코에 도착한 스페인의 베르쿠르즈호를 기념한 배 돛대 모양의 하얀 조각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개종을 하고 있는 인디오들의 조각이었다.
놀랍게도 하느님의 피부색 역시 인디오처럼 검은 색이었다.
일각에서는 예수가 흑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아프리카와 동구에는 이같은 검은 예수상이 많다는 이야기는 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검은 피부의 예수상을 직접 보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성당을 나와 노점상을 비집고 나오다 한 노점의 진열대에 관광상품으로 내어놓은 눈에 익은 스키 마스크 복면차림의 한 남자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멕시코의, 아니 세계 좌파들의 새로운 전설이 되어버린 자파시스타 농민군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사진이었다.
세계가 소련 동구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로 평정이 되고 멕시코가 NAFTA를 체결하여 선진국의 꿈에 부풀어있던 1994년 자파시스타 농민군은 밀림인 남부 지역의 치아파스에서 반란을 일으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나프타 체결로 큰 타격 오랜 소외된 집단인 멕시코의 인디오들은 남부에 집중되어 수백년 동안 지켜온 옥수수 생산과 같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온 이들은 멕시코가 NAFTA를 체결하면서 주식인 옥수수시장을 개방하자 마르코스의 표현대로 “사망 선고”를 선고받고 만 것이다. 그 결과가 농민봉기, 피정복자 인디오의 반란이었다.
멕시코 혁명의 영웅인 자파타는 또 다른 농민군 지도자 판초빌라와 함께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멕시코 혁명을 성공시키지만 다시 농촌으로 내려가 새로운 정부를 상대로 농민들의 요구를 위해 투쟁하다가 멕시코 혁명 당시 동맹군으로 농민군 덕분에 대통령에 오른 카란자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다.
그 당시 자파타가 타고 다니던 흰말이 사라지면서 멕시코 농민들 사이에는 흰말을 타고 달리는 자파타를 보았고 자파타가 살아있으며 자신들이 어려울 때면 그가 다시 나타나 자신들을 구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바로 이 전설에 따라 자파타를 따르는 농민군이라는 뜻의 자파시스타 농민군이 탄생한 것이다.
21세기 혁명가 마르코스이후 농민군은 정부군의 공세에 밀려 밀림지역으로 후퇴하고 말았지만 남부지역의 농민문제는 아직도 심각한 멕시코의 화약고를 남아 있다. 또 검은 스키 마스크로 복면을 하고 별이 달린 전투모를 쓴 정체불명의 신비의 지도자 마르코스는 산간벽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주옥같은 글을 세계에 써 보냄으로서 21세기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혁명가로 인기를 끈 바 있다. 마르코스는 얼마 전 그간의 침묵을 깨고 71년만의 정권교체에 맞추어 “새로운 악몽이 다시 찾아오는 것인지, 아니면 드디어 여명이 밝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논평했다.
폭스 대통령 역시 취임사에서 자신의 취임으로 “멕시코와 치아파스에 새로운 여명이 열렸다”며 마르코스의 논평에 응답했다.
또 치아파스 지역의 도로 봉쇄를 해제하고 군을 철수시켰으며 인디오의 자치권 확대 등을 보장하는 개헌을 약속했다.
그러자 마르코스는 최근 농민군 대표를 이끌고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돈 뒤 직접 의회에 출두,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기관총을 내려놓고 대대적인 전국 버스투어를 한뒤 정글로 돌아갔다.
그러나 의회 소수파인 폭스가 개헌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이며, 근본적으로는 나프타 등 멕시코가 처해 있는 구조적 조건을 고려할 때 새 정부가 이들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더 더욱 의문이다. 역사의 패자 인디오에게도 진정한 여명은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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