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있는 한국인들은 한국인들의 학연 및 지연에 의한 사회적 구조가 망국적이라고 개탄한다. 정치인들은 학연·지연을 없애겠다고 약속한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대로 학연·지연이 국가나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집단 외의 사람들은 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지 않으며 더 나아가 경계한다. 집단 싸움이 많은 이유는 자신의 집단 외의 집단은 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바 등의 공공장소에서 모두 어울려 노래를 부르며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옆 테이블에 있는 다른 집단과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잘 성립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과의 동거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서로 다른 집단끼리도 어떤 고리가 발견되는 순간 적대감정을 버린다. 예전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주점에는 싸움이 잦았다. 그러나 두 집단에 어떤 고리가 발견되는 순간 두 테이블이 합쳐져 한 집단으로 화하기도 했다.
군에서 신병이 전입했을 때 고참병과 신병 사이에 어떤 것이든 공통의 고리가 밝혀지면 신병은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신병의 입장에서는 어떤 고리이든지 찾아내야만 한다. 고향이 같다는 것은 하나의 좋은 고리이다. 또는 학교 선후배 관계도 좋은 고리이다. 집안 친척이 고참병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럴 때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동원된다. 이렇듯 고리의 발견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한국인들에게 학연이나 지연은 고리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 이렇게 학연·지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강한 결속을 보이며 그 안에서 특별한 에너지를 생성하는 계기가 된다.
한국의 기업들은 많은 부분 학연 또는 지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창업하는 단계에서는 학연이나 지연은 큰 힘을 발휘한다. 창업을 하는 회사는 대체로 많은 희생과 봉사가 필요하다. 이럴 때 학연이나 지연으로 맺어진 구성원들은 과감하게 공헌한다. 그러나 어떤 고리도 없는 사람들은 주저한다. 이렇듯 학연이나 지연은 에너지를 일으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기업들은 많은 부분 어떤 학연이나 지연으로 구성되기를 원한다.
70, 80년대 중동의 사막에서, 세계 곳곳의 오지의 현장에서 한국이 오늘에 이르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건설의 역군들이 있었다. 당시 세계인들도 감탄한 오지에서의 건설, 한국인이 해낼 수 있었던 추진력은 학연이나 지연 같은 고리를 가진 집단이 만들어낸 에너지였다. 이렇듯 한국인들은 어떤 고리를 함께 한 조직 안에서 힘을 발휘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불운하던 시절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지연의 고리로 된 연결이 지탱하는 힘이었다. 동창회, 향우회, 군대 정우 모임, 취미모임… 유난히도 모임이 많은 민족이다. 이 모두 고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다. 한국인들은 종교 지향적인 성격, 고리를 가질 때 안도하는 국민성으로 설명될지 모른다.
그러면 왜 한국인들은 고리를 갖고 있을 때 안도하여 힘을 발휘하며 고리를 갖지 못할 때 불안해하는 것일까. 이는 한국인의 주택구조를 통해서 이해할 수도 있다. 한국의 전통적 가옥구조는 외부와 차단된 견고한 담으로 둘려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오면 방과 방끼리는 창호지만이 가로막고 있다. 인간관계도 같은 구조를 갖고 있어 외부의 집단과는 담으로 가르는 단절이지만 내부인 끼리는 모든 것이 공유될 수 있는 창호지 정도로 구분되는 사이가 된다.
한국인들이 담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학연이나 지연의 고리는 담 안으로 들어가는 가장 좋은 수단이며 방법이다. 우리말에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는 말이 있다. 한솥밥을 먹는 사이란 강한 결속을 나타낸다. 한솥밥이란 담 안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학연·지연 등의 고리로 이루어진 집단의 단점은 폐쇄성과 배타성이며 종종 집단이기주의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학연·지연이 망국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국인의 이러한 성질은 이미 유전자화한 것인지 모른다. 바꿀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좋은 면을 개발하여 에너지 화하는 노력이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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