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식으로 인류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순환론이다. 음양론을 비롯한 동양적 사고방식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또 하나는 전진론이다. 인류의 역사는 발전의 역사라는 생각은 유대-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서양식 사고방식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 인류가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역사를 냉정하게 살펴보면 뭐니뭐니 해도 장족의 발전이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먹는 것, 입는 것, 주거환경과 첨단 테크놀로지에 이르기까지 물질적인 면은 물론이고 인권과 민주주의등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의 역사가 순간의 퇴보도 없이 발전 일변도였던 것은 아니다. 서양사만 봐도 ‘로마의 평화’ 시대가 끝난 후 게르만족과 훈족, 바이킹족의 침공이 잇따르면서 수백년간의 암흑기를 거쳤다.
이런 저런 면을 감안한다면 역사는 전진하되 한 걸음 나갈 때마다 한바퀴 순환하며 발전한다는 나선형 역사관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나선형은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소라껍질에서 은하계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자연현상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다. ‘욥기’에도 절망에 빠진 욥이 극한적 고통속에서 하나님을 부르자 하나님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나타나 응답한다는 구절이 있다. 자연현상에서 찾을 수 있는 나선형의 모습은 그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나선의 커브가 황금분할을 그리며 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역사와 자연뿐만 아니라 경기와 주가도 나선 구조를 그리며 진행된다는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12일 하이텍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나스닥 지수가 130 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며 심리적 저지선인 2000선이 깨졌다. 이날 폭락은 작년 3월 10일 나스닥이 5000을 돌파하며 사상최고를 기록한 지 꼭 1년만에 일어났다. 불과 12개월 사이 60% 이상이 떨어진 셈이다. 이는 주가 평균이고 야후, 아마존을 비롯한 인터넷 주식들은 보통 90%에서 95%까지 주저앉았다. 이미 문 닫고 영업을 중단한 회사도 하나둘이 아니다.
나스닥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던 다우존스 산업지수마저 400 포인트가 넘는 하락세를 보였으며 미 주가 총액의 75%를 점하고 있는 스탠다드 & 푸어 500지수도 최고치에서 20%가 넘게 떨어짐으로써 미 증시가 본격적인 ‘베어 마켓’권에 진입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국과 홍콩등 아시아 주가도 곤두박질치고 유럽과 남미마저 급락세로 돌아서는등 미 증시파동의 여파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인 일본은 니케이 지수가 15년래 최저를 갱신하면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불황으로 재진입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1년전 나스닥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미 경기가 최고 호황을 구가했을 때 ‘첨단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경기 사이클은 옛말이 됐으며 하이텍주는 앞으로도 계속 오르고 미 경기는 끝없는 호황을 누릴 것’이란 분석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지난 1년간 나스닥의 역사는 이같은 진단이 허황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투자가들에게는 주가폭락이 걱정거리겠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다. 미 증시 총액이 GDP의 140%에 달하고 미국민의 60%가 주식투자를 하는 상황에서 주가가 계속 떨어질 경우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주가가 폭락을 거듭하면서 ‘이제 주식은 끝났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 주가가 역사적 평균에 비해 아직까지 과대평가돼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방적 낙관론이 잘못이듯이 지나친 비관 또한 옳지 않다. 미국 경제가 탄탄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터진 거품이 완전히 걷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조정 국면은 한번 거쳐야 한다.
언제까지 주가가 더 떨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바닥권에 가까워질수록 이제 미국 경제는 희망이 없다는 관측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거품과 주가 폭락은 희망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급속히 경제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다. 20년대 미국이나 80년대 일본, 지금의 한국이 그 예다.
일시적 기복에도 불구, 길게 보면 인류 역사가 전진의 역사였듯이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의 앞날도 비관만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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