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향은 마치 죽마고우처럼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객지 생활을 하는 재미한인들 마저도 뉴욕사람들은 뉴욕을, LA 사람들은 LA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는 것은 피치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거나 지진, 홍수 또는 범죄 등으로 살 수가 없게 된 경우, 또는 고향에서 나쁜 짓을 하여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견딜 수 없게 될 때 고향을 뜬다. 고향이 하물며 이렇거늘 고국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통과 통신이 어려웠던 고대나 중세에는 고향이나 고국에서 추방되는 것이 중한 형벌의 하나였다. 오늘날도 망명생활은 불우하고 힘든 생활로 여긴다.
이렇게 볼 때 고국을 떠나는 이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이민을 떠나게 된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또는 시대적이든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의 이민역사를 보면 그런 사정이 분명히 나타난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구한말의 이민은 주로 가뭄과 탐관오리의 수탈로 인한 기근 때문에 발생했다. 먹고 살기 위하여 두만강을 건넌 사람들이 만주의 간도지방과 러시아의 연해주에 정착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압제를 피하여 중국과 미국 등지로 떠난 사람들과 강제징용을 당해 일본으로 간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 새 나라와 새 시대의 희망이 부풀었던 시기에는 많은 이민자들이 고국에 되돌아 왔다. 중국에서는 40%, 일본에서는 75%가 귀국했다고 한다.
해방과 6.25를 통해 한미관계가 가까워지면서 미국이민의 시대가 열렸다. 때마침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이 새 이민정책으로 아시아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한국이 인구정책상 이민을 장려했기 때문에 미국이민이 급증했다. 그러나 미국이민이 이처럼 폭발적인 추세를 보인 이면에는 당시의 열악한 경제사정과 정치체제가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한국의 정치, 경제사정이 나빠질 때마다 사람들은 이민을 탈출구로 삼는 경향은 변함이 없었다. 유신시절의 이민 열기는 10.26과 5공 초의 정치불안기에 더욱 가열되었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정치환경이 좋아진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는 이민 행렬이 주춤해진 대신 보따리를 싸서 고국으로 되돌아가는 역이민 추세가 나타났다. 그리고 IMF사태가 발생하자 다시 이민 희망자가 늘어났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는 지나친 이민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주 이틀간 열린 해외이주 이민박람회와 해외유학 어학박람회에는 5만3,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민을 가겠다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여유있는 생활을 찾기 위해서” “자녀의 교육을 생각해서” “국내 정치상황이 싫어”라고 한다.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30대와 40대의 중산층 전문인력들인데 이민 이유는 한국의 현실이 싫어서 떠나고 싶다는 말로 요약된다.
한국은 작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민을 절대로 장려해야 한다. 이민이라는 타개책으로 인구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사람들의 생활환경이 점점 나빠져서 심각한 사회문제, 나아가서 정치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더우기 이제는 경제와 문화가 다국적화 하여 이민의 개념이 과거처럼 엄격하지도 않게 되었다. 한국이 해외로 이민을 많이 내보내는 것은 일종의 영토 확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와 한 사회의 중심세력을 형성하는 알짜배기 중산층이 정치환경과 교육환경이 싫어서 이민을 가겠다면 참으로 심각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와 사회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한국의 이민현상은 앞으로 더 중대한 고비를 맞이할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현재 진전되고 있는 대북 접근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이민물결의 봇물이 터지고 말 것이다. 그 파장의 심각성이 북한의 탈북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은 사회중심세력의 대붕괴, 대탈출 현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 이민이 싫어서 원망하면서 떠나는 조국이 아니라 멀리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그런 조국을 갖는 것이 이민자의 바램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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