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사엔 이변이 있기 마련이다. 흥행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제 아무리 관객 취향을 과학적으로 면밀히 분석, 검토한다지만 예상과 결과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세상이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기도 한다. 그 이변 때문에 세상살이는 더욱 재미있다. 최근 영화계에서 벌어진 이변 아닌 이변을 살펴본다.
◈ 모두 무시했으나 흥행 불꽃
작년 12월 30일 개봉한 <자카르타>는 영화인들의 뒤통수를 때린 작품이다. 세 팀의 강도들이 같은 시각에, 같은 금고를 노리는 내용으로 통렬하게 허를 찌른 것이 아니다. 흥행 결과로 영화인들을 비웃었다.
개봉 전 시사회에서 <자카르타>를 본 영화인들은 매우 어둔 표정이었고, 일부 친절한 사람들은 제작자에게 "마음 비우고, 다음 작품 잘 준비해라"고 걱정의 인사말까지 건넸다.
진심어린 걱정이었다. 제작진에서마저 ‘큰일 났다’는 듯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모두 참담한 흥행 결과를 예상했던 탓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자카르타>는 엉뚱했다. 개봉 당일부터 손님들이 줄을 잇더니 결국 두 달 넘게 상영되며 전국에서 80만 관객을 모았다.
◈ 족집게 도사이지만 내 건 몰라
<공동경비구역 JSA>는 서울 250만 9,320 명, 전국 579만 5,820 명으로, 한국 영화 사상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워낙 작품성과 흥행성이 뛰어나 모두 대단한 흥행작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쉬리>가 세웠던 엄청난 대기록을 불과 1년 만에 깰 줄 아무도 예상못했다.
단 한 사람을 빼곤.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하기 전 투자사 가운데 한 군데인 KTB 네트워크(사장 권성문)는 이병헌을 비롯한 배우와 제작자 등 영화 관계자 20여 명을 초청해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상금 100만 원을 놓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예상 관객 숫자 맞추기가 벌어졌다. 냉정한 분석을 곁들여 서울 50만 명을 부른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게만 된다면.’의 터무니 없는 꿈을 담아 300만 명을 외친 사람도 있었다.
이 때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는 247만 명을 예상했다. 실제 숫자와 3만 명밖에 차이나지 않는 족집게 예상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유 대표가 자기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예상을 전혀 못한다는 점이다.
◈ 두 달을 매일 처음처럼
현재 상영 중인 <번지 점프를 하다>는 희한한 작품이다. 17년 뒤에 재회하는 옛 사랑이 남자로 둔갑해 나타나는 내용이 희한하다는 뜻이 아니다. 흥행 곡선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번지 점프를 하다>의 개봉일은 지난 달 4일. 개봉 첫 주말 서울에서 3만 5,000 명 가량의 관객을 기록했다. 희한한 것은 지금도 그 스코어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어찌된게 스코어가 떨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확 불붙지도 않고 계속 첫 주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 결과 다소 위태롭게 보이던 <번지 점프를 하다>는 최소 서울 50만 관객을 동원할 태세다.
◈ 칸은 안돼! 그래도 나는 달라!
칸 영화제의 붉은 주단 밟는 것을 필생의 꿈으로 여기는 한국 영화인들이 많다.
그러나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유럽의 유명 영화제에서 상 받은 작품은 대개 세계 흥행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한다. 이들 영화제가 관객 기호를 무시한 채 워낙 편향된 때문이다.
칸 영화제 수상작 가운데 국내 흥행에서 비교적 재미를 본 작품으론 <패왕별희>와 <피아노>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봐야 웬만한 홍콩 영화 숫자보다 적고, 역대 외화 흥행 랭킹 50위 안에도 못들지만. 그래서 영화 수입업자들은 유럽 영화제 수상작을 매우 꺼린다. 심지어 미리 사놓은 외화가 칸 등 유명 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면 빈다. ‘제발 상 주지 말라’고.
작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했던 <어둠 속의 댄서>는 이런 상황에서 지난 달 24일 개봉해 흥행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대부분의 수상작이 5만 명에도 못미치고 극장에서 툭툭 떨어지는 반면 <어둠 속의 댄서>는 개봉 2주일 만에 전국 20만 명을 넘어섰다.
정경문 기자 moonj@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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