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한니발’에 작품 제공한 데이빗 페이지
볼티모어 소재 자기 집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구속복(straitjacket)과 합치를 이룬 작가 데이빗 페이지(38)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온갖 가죽 끈과 죔새,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예술가에게서 보이는 상냥함은 왠지 알 수 없이 R등급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준다.
"두려움과 욕망의 옷장에서(From the closet of fear and desire)"라는 이 작품에 관한 작가 페이지의 설명도 혼란스런 효과를 완화시키지 못한다. 페이지는 자신의 웹사이트 www.davidpageartist.com에서 이 구속복을 "무서운, 그러나 우아한 자켓... 높은 깃은 장엄함을 나타내는 한편 자주색 가죽은 캔버스와 강한 대조를 이루며 건축적 느낌을 부여하는 동시에 이를 피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적고 있다.
작가의 구속복과 가면, 조각된 인체기관들은 무서운 느낌을 일으킨다. 공포와 욕망, 주물과 기능, 억압과 표현의 미세한 틈새를 탐험하는 그의 ‘두개골 요람’같은 것들은 일반 실내 장식품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하니발(Hannibal)’ 촬영장에서 그의 작품들은 실내장식상의 선택의 자유를 무한대로 제공한다. 이 영화 관객들은 악몽같기도 하고 그림자 같기도 하게 찍은 카메라를 통해서나마 페이지의 작품을 일별할 수 있다. 렉터와 그의 피해자중 유일한 생존자 메이슨이 계단을 오를 때 그들 위에 걸려있는 10피트 너비의 날개가 달린 비행선 뼈대 ‘레오나르도의 장난’도 페이지의 작품이다.
그가 만든 아름다운 구속복 또한 창을 배경으로 실루엣으로 잠깐 등장한다. 지그재그의 각도에서 스탠드에 걸쳐진 또 다른 구속복은 잠재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메이슨은 렉터가 한때 썼던 페이지의 ‘격자머리’ 가면을 쓰기까지 한다.
영화 ‘하니발’에 대한 페이지의 기여는 매우 자연스럽다. 물론 그의 작품들은 감미롭게 메스꺼운 영화에 잘 맞지만 일이 그렇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페이지의 한 친구가 그를 영화의 제작 디자이너 크리스피언 샐리스에게 연결시켜 줬는데 샐리스는 그의 작품을 보고 "뒤집어졌다"고 페이지는 말했다. "저의 미적 관점과 딱 맞아 떨어졌으니까요"
페이지는 제작사에 작품을 무료로 빌려주는 대신 작품 사용과 관련한 창조적 통제권을 갖고 자문료로 1만달러 이하를 받았다. 페이지와 보석세공가인 부인 로렌 쇼트는 지난 8월 노스 캐롤라이나주 애쉬빌의 ‘하니발’ 촬영장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팀원들과 어울리고 메이슨역의 게리 올드먼을 포함한 배우들도 만났다. 어느날 ‘격자머리’를 써보고 올드먼이 너무나 좋아하자 리들리 스캇 감독은 놀랍게도 올드먼에게 하키 골키퍼 복장 같은 이 가면을 쓰고 회상 장면을 연기하라고 허락했다. 나중에 리들리 감독은 페이지에게서 ‘격자머리’와 또 다른 가면을 구입했다. 페이지는 감독이 올드먼
과 ‘하니발’의 주인공인 앤소니 홉킨스에게 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페이지는 메이슨과 다르다. 페이지는 가공 인물이지만 메릴랜드의 정육업 가문의 상속자인 메이슨은 "매우 뒤틀렸다"고 말한다. 페이지는 사교적이고 자기 주장이 확실하며 대갈못, 경첩, 나사, 자물쇠 등에 관해 이야기 할 때도 항상 활기에 넘친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매우 "불길하고 기분 나쁘게 섬뜩하다"는 것도 금새 인정한다.
한 미술 비평가는 페이지의 작품을 두고 "중세의 성, 고문실, 자학과 가학, 정신병원에 속한 것처럼 보이나 그중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페이지의 작업은 역사적 시간상의 친숙한 세상을 떠나 신화, 영원히 고립된 현재를 차지한다"고 서술했다.
페이지는 화랑 전시회에서 자기 자신의 예술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작가도 작품의 일부"라고 말하는 그는 케이블, 후크, 죔쇠와 긴 가죽으로 조립한 "레오나르도의 장난"에 긴 가죽 부리를 달고 박물관 관람객들 위에서 맴돈다. 날개와 대조시키기 위해 손을 뒤로 묶은 페이지는 ‘레오나르도의 장난’은 "인간의 날고자하는,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을
대변한다"며 "그 투쟁을 재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어린 시절 TV를 볼 수 없었던 페이지는 대신 만화책을 통해 대중문화와 만났다. 모든 것이 전기가 짜릿하게 올만큼 생생한, 작가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세상은 그를 매료시켰다. 페이지는 특히 싸우는 악한, 영웅들이 입은 정교한 갑옷과 투구, 인간으로 변형이 가능한 신비스럽고 소름끼치는 괴이한 장치들의 묘사를 사랑했다. 가면을 처음 만든 것은 케이프 타운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만화책에서 얻은 감성과 친척아저씨의 광대한 나이제리아 미술품 콜렉션이 영감을 부여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 와 기술을 완전히 습득한 후에는 오랜 갈망이던 구속복으로 돌아섰다. 정신병원등에서 사용하는 구속복을 몇점 구입해서 변형시켰고 알루미늄, 가죽, 캔버스와 망사로 가면을 만들고 지나치리만큼 꼼꼼하고 정교하게 황동 대갈못으로 조이거나 아마사로 꿰매어 가면도 만들었다.
그의 가면은 새, 펜싱, 파충류, 개인감옥, 수족이 절단된 생물을 생각나게 하는데 그는 작품을 주로 "사람들이 모험을 할 준비가 된" 런던, 호주와 미국내 비영리 공간에서 전시됐다. 그래도 한점에 1200달러 내지 1만4000달러쯤 하는 자기 작품을 팔아서 생활하는 전업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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