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가 급속도로 식고 있다는 보고서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대다수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인 커뮤니티에게 올해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뉴스는 없다. 본보 위원실 좌담을 통해 올 경기 전망과 경기 둔화가 한인사회에 미칠 영향 등을 진단해 본다.
▲민경훈 편집위원-새해 들어 발표되는 경제 뉴스마다 한결 같이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소비자신뢰 지수가 4년래 최저로 추락하는가 하면 구매 관리자 지수는 10년래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수년래 최저치를 기록하던 실업률도 반등세로 돌아섰고 대기업의 대량감원 사태가 잇따르는가 하면 1월 도매물가 지수는 1% 이상 뛰어 올랐습니다.
▲박덕만 편집위원-FRB가 단기금리를 0.5%포인트씩 두 차례나 내린 데 이어 또다시 0.5%포인트 인하한다고 하니 미국 경제가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한 칼럼니스트는 철강과 자동차로 상징되는 구경제에 인터넷접속 셀룰러폰, 고밀도 TV 등으로 상징되는 신경제가 접속하는 과정에 거부반응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 경기침체가 오게 됐다는 주장을 하고 있더군요.
▲옥세철 논설실장-최근 수개월 동안 미국 경제가 둔화된 것만은 틀림이 없어요. 당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2·4분기에 5.6%의 성장률을 보인 미국 경제가 지난 4·4분기에는 1.1%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철퇴맞은 인터넷, 닷컴 기업들▲권정희 편집위원-지난 2~3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꿈속에서 살았다고 봐야겠지요.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고 닷컴이다, 벤처다 하며 20대에 백만장자가 되고… 이제 꿈은 깨어지고 현실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대기업들이 무더기로 감원을 하고 주가는 ‘바닥 쳤다’고 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바닥입니다. 인터넷 주가는 지난 1년 사이 거의 80%가 떨어졌고 닷컴기업 감원은 지난 6개월 사이 600% 증가했습니다.
▲박-신경제의 도래에 흥분하던 미국인들이 냉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해석은 불경기를 겪는 동안 신경제가 좀더 거부감 없게 다듬어지면 다시 호경기가 온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미국경제가 불경기 공항에 착륙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모양인데 충격이 큰 경착륙이냐 충격이 덜한 연착륙이 될 것이냐가 의문입니다.
실물경제 나쁘지만은 않아▲옥-그런데 실물경제에 들어가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아요. 미 자동차업계의 올해 전망을 봅시다. 업계는 올해가 사상 세번째 최상의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1999년과 2000년 수치와 비교하는 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두해는 사상 최고의 호경기를 구사한 해입니다. 올 판매 예상치를 예년에 비교하면 좋은 편인데 지난해와 그 전해의 실적과 비교하면 판매둔화 예상이 나오는 거죠. 말하자면 사상 최고의 호경기 뒤에 오는 경기둔화인데 무슨 불경기나 오는 것처럼 보아서는 안될 겁니다.
▲권-전반적 경제도 경제지만 한인들은 부동산 경기에 관심이 많지요. 지난해 주가 폭락으로 한바탕 열병들을 앓고 났는데 이번에는 부동산 경기가 증시의 뒤를 잇는 게 아닌가 많이들 불안해합니다.
▲박-캘리포니아만 보면 아직 괜찮은 것 같습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주 주택 소유율이 57.1%로 사상 최고라는 발표가 나왔지 않습니까. 1999년보다 1.5%포인트가 늘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택판매 중간가격이 20만9,000달러로 1999년보다 13%나 올랐다는데도 말입니다. 스탁옵션이 주택소유율 상승에 기여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특히 35세 미만의 청년층의 경우 다운페이먼트 저축이 힘들어 주택장만이 어려웠는데 벤처기업의 활성화로 스탁옵션을 받는 청년층이 늘어났고 그 결과 청년층의 주택구입 능력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민-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주택경기도 밝지 않습니다. 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신규주택 판매가 10% 이상 급감하고 주택 값도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경제를 둘러싸고 요즘처럼 나쁜 뉴스가 쏟아지기는 90년 불황이래 처음인 것 같습니다. FRB가 한달 사이에 1%포인트나 금리를 내린 것은 80년 불황 이후 처음입니다. 그만큼 경기침체가 심각한 상황이란 얘기죠.
▲권-캘리포니아에서는 에너지 위기가 겹쳐 기업경영 압박이 가중되었지요. 실제로 LA에서는 에너지 경비를 감당 못해 한인운영 대형 섬유업체가 파산을 하기도 했어요. 앨런 그린스펀이 금리조정의 묘기로 미국경제를 안정적 성장세로 잘 몰아왔는데 그린스펀의 조정력도 이제 한계에 부딪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특히 주식시장에는 금리인하 약발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어요.
침체기미 아직 없는 타운경제▲박-미국경제 사정도 침체기로 접어들고 한국도 제2의 IMF를 우려한다지만 한인타운 경제사정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들 합니다. 가장 좋은 예가 은행 아닙니까. 작년에 한인은행들이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고 그에 따라 직원들에 대한 보너스 지급도 사상 최대규모였다고 합니다. 저녁에 술집들도 잘된다고 하더군요. 소매점들도 재미를 보고 있고 관광업계도 스키여행 등으로 겨울 특수를 보았다고 합니다. 안 된다고 하는 곳은 다운타운 지역인데 그쪽의 불경기는 구조적인 이유에서 온 것이지 계절적인 것은 아닙니다.
▲옥-우스갯소리가 있지요. LA에서 근 30년을 산 분인데 한번도 경기 좋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주변의 장사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맨날 장사 안 된다는 이야기만 했지 잘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대요. 그런데 장사 안 된다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벤츠만 몰고 잘 산다는 것이지요.
▲박-한인타운 경기가 미주류사회 경기나 한국경기보다 한 박자쯤 늦는 탓도 있을 것입니다. 90년대 중반 미국경제는 호경기를 구가하고 한국경제도 괜찮은 편이었는데 이곳 한인타운은 불경기에 허덕였던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미국경제나 한국경제 불경기의 파도가 아직 한인타운까지 미치지 않은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부터 모두들 불경기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권-한국의 경기침체가 미주 한인경제에 나쁜 영향만 주는 것도 아닐 겁니다. 한국의 기업들이 구조조정 하느라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한국 친척들로부터 이곳 상황에 대한 문의를 받은 한인들이 주변에 많이 있지요. 중견간부로 물러난 사람들이 퇴직금, 집 판돈 들고 미국으로 온다면 코리아타운 경기가 오히려 활성화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옥-사실 한국이 불경기라고 해서 한인타운도 불경기라는 법은 없습니다. 한국이 IMF 사태를 맞았을 때 미주 한인 경제도 얼어붙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했었지요. 그런데 반대 현상이 일었어요. 일종의 자본이동 현상과 함께 LA 한인업계에는 새 업종의 새 비즈니스가 더 많이 생겼지요. 미국경제가 다소 둔화되고 한국경제도 약세를 보인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난은 구조조정 진통▲박-한국경제가 언론에서 말하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현재 어려운 것은 군사정권 때부터 정경유착의 고리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성장해온 기업의 정상화를 이룩하는 과정에 생기는 진통 때문이며 현재의 구조조정만 제대로 이뤄지면 정상궤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 가운데 수출분야 종사자들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고 국내 소비분야의 종사자들이 어렵다고 합니다.
’불황’ 심리적 요인 많이작용▲옥-요즘 미국경제와 관련해 나오는 말 중에 재미있는 표현은 "불황, 불황 하는데 불황이 어디에 와 있느냐"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말이 불황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경기가 후퇴한다는 전망도 심리적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 이유로 많은 미국인들이 주식을 보유한 사실이 지적됩니다. 미국의 가정중 주식을 소유한 가정은 50%가 넘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일부 계층만 관심을 보이던 다우존스지수다, 나스닥지수다 하는 주가동향이 근 한시간마다 주요 뉴스가 됐습니다. 문제는 주가동향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하게 된 겁니다. 가령 주식 값이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당장 불경기가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이는 경기 후퇴를 가져오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민-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경제분야는 같은 뉴스를 놓고도 두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금리 인하만 해도 FRB가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너무 갑자기 금리를 내려 불안심리를 조장시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 14년간 미국 경제를 잘 이끌어 온 그린스펀이 설마 미국 경제가 심한 불황으로 빠지는 것을 방치하겠느냐는 낙관론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낙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맬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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