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곧이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약속을 식은 죽 먹 듯 깬다. 반대로 그 사람의 말이라면 꼭 믿어도 될 사람이 있다. 세상살이에서 누구한테나 신의가 중요하지만 공인에게는 그것이 목숨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는 후보들의 주요 선거공약을 자세히 검토한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도 부시와 고어가 내걸었던 공약의 초점에 맞추어 투표했다. 왜냐하면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경우 주요 공약만큼은 거의 예외 없이 실행되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터득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첫 주부터 맨 먼저 하는 일이 의회에 공약을 기초로 하는 법안을 순서대로 상정하는 것이다. 새로 뽑힌 대통령과 국민, 그리고 의회사이에 밀월관계가 유지되는 취임 100일 동안에 앞으로 4년 행정의 틀부터 짜 놓기 위해 서두른다.
한국의 교육정책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점 하나는 학부모들이 믿고 거기에 따라서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정책의 일관성 결여라고 평소 느껴왔다. 특히 한국처럼 교육 열의가 높은 나라에서는 교육정책은 바로 사회정책인 셈인데 수많은 시행착오만 거듭할 뿐 밝고 합리적인 원칙 한번 제공하지 못한 것이 지난 반세기동안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국 대통령 후보들의 교육정강이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신물이 나게 들어왔던 각종 교육제도 개선책보다는 차라리 교육 책임자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임기보장 약속 한마디만 선거공약으로 내 세우는 후보를 내심 밀기로 했다. 지난 1997년 선거에서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김대중후보는 ‘다른 장관들은 몰라도 교육부장관만큼은 나와 임기를 같이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천명함으로서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리던 임기 보장을 약속하였다. 나는 당연히 한국 교육문제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지도자의 탄생을 기뻐했었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 하나만은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최근 청와대는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여섯 번째 교육 책임자가 새로 임명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어떤 교육부장관은 취임 3주3일만에 퇴임하는 등 평균 7개월쯤 지나면 물러선 셈이다. 한심한 일이고 심히 우려할 일이다. 정신이 바로 든 주인이면 집안 청소부라도 반년 일 시키고 갈아치우지는 않는 법이다. 자녀 교육에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있는 부모들은 앞다투어 자녀만 보따리를 챙겨서 해외로 내 보내거나 아니면 아이와 함께 어머니가 미국으로 와서 순전히 자녀교육 때문에 10년 이상씩 부부가 갈라 사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본다. 청와대는 이들을 교육노예로부터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통일과 경제문제도 중요하지만 자녀교육을 지상과제로 받아들이는 학부모들에게는 교육만큼 중요한 국사는 없다.
한국인들에게는 교육이 가장 큰 공동 관심사이다. 책과는 아예 담쌓고 술이나 골프에서 소일거리를 찾는 국회의원들도 잠꼬대처럼 교육의 중요성을 부르짖는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선량도 입버릇처럼 교육만 외울 줄 아는 앵무새가 되면 당선은 쉽다. 그러나 교육만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임을 깨달아야한다. 행정 책임자 이름이나 바꾼다고 될 일은 더욱 아니다.
이런 식으로 장관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해치우다가는 서울은 머지않아 전직각료들로 득실거리는 사회가 되고 말 것 같다. 각료 후보 군들은 반년 짜리 입각도 감지덕지할 일이 아니라 적어도 5년 임기를 보장하지 않는다면‘No’라고 할 정도의 용기는 가져야 자격 있는 사람이 아닐까.
미래의 승부는 그 나라 교육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 학생들은 부산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시애틀과 뉴델리 학생들과 두뇌를 겨루고 있음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교육현장은 노름이나 실험대가 아니다.
한국 교육이 바로 잡히는 길은 교육부 책임자 자리를 종신제로 만들어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그것이 안되면 적어도 대통령 임기 두 차례에 해당하는 10년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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