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시자 조셉 스미스 출생지 팰마이라 관광붐
이슬람 교도들의 평생소원은 메카 순례다. 또, 해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찾아간다.
그런데, 몰몬교들은 뉴욕주 북부의 작은 시골타운 팰마이라를 찾는다.
팰마이라는 1820년, 14세의 한 시골소년이 동산에서 하나님과 예수를 보았다는 곳이다.
조셉 스미스 주니어라는 이 소년은 훗날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 즉 몰몬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나중에 종교적 박해를 피해 서부로 향했으며, 현재의 솔트레이크 시티에 정착했다. 그로부터 180년이 지난 오늘날, 로체스타 동남쪽 20마일 지점에 위치한 몰몬교의 발상지에는 해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아든다.
방문객들은 ‘세이크리드 글로브’라고 알려진 동산을 따라 걸으며, 복원된 조셉 스미스의 통나무 생가를 둘러본다. 또, 최초의 몰몬경이 인쇄됐던 집과 방문자 센터도 필수코스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의 최종목적지는 얼마 전 거룩한 동산 위에 신축된 몰몬교 성전이다.
수많은 몰몬교도들이 이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 수주일 전부터 예약을 한다.
예약없이 찾아간 사람들은 허탕을 치기 쉽상이다. 특히, 성전내 지성소에는 공인된 몰몬교 신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약 100여개의 몰몬교 성전이 있는데, 그중 단연 주목을 받는 것이 이곳 팰마이라 성전이다.
팰마이라는 인구 8,000명도 안되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몰몬교의 급격한 교세팽창에 힘입어, 팰마이라는 이제 주요 관광지로 부상했다.
팰마이라에 거주하는 몰몬교인들 자체는 수백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가는 곳마다 몰몬교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가게마다 몰몬교 관련상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타운의 식당이나 숙박시설들도 많은 몰몬교인들로 북적댄다. 타운의 중앙로 사거리는 미국내 정통 4대 교단인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및 성공회 교회로 둘어싸여 있는데, 그 한가운데는 몰몬교 성지를 알리는 대형간판이 서 있다.
타운의 수퍼바이저 데이빗 리온은 팰마이라가 몰몬교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말한다. 감리교 신자인 리온은 말한다.
"몰몬교 영향으로 우리 타운이 지도에 표기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덕을 보고 있다. 단, 술집과 담배가게들은 예외다"
몰몬교에서는 술과 담배 및 도박은 물론이고, 차와 커피까지 엄격히 금지한다.
조셉 스미스는 훗날 팰마이라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스미스는 초창기에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팰마이라 일대는 정통 기독교의 영향이 다른 어느곳 보다 뿌리깊은 지역이었다. 수차례나 기독교 부흥의 물결이 이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불에 데워진 지역’이었다. 그런 만큼, 조셉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곳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몰몬교에 따르면, 소년 스미스는 동산에서 하나님과 예수를 만난지 3일후, 천사 모로나이로부터 땅속에 묻혀진 금판들의 위치를 계시받았다고 한다. 그 금판들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뉴욕주는 물론 미국내 다른 어느 곳도 고대 이스라엘 문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어쨌튼 스미스는 그 금판을 책으로 옮긴 후 천사에게 돌려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 번역본이 몰몬교의 경전인 몰몬경이 되었다. 당시, 타운 주민들은 그것을 ‘황금성경’이라고 조롱했다. 그리고, 스미스는 사기꾼으로 정죄된 채 반년도 못되어 서부로 피난길을 떠났다. 이후, 몰몬교도들은 교세확장 과정에서 갖은 핍박을 받았고, 스미스 자신은 1844년에 살해되었다.
스미스 사후 몰몬교는 몇몇 분파로 나뉘었으며, 그중 브리검 영을 추종한 최대 분파가 훗날 솔티레이크 시티가 된 지역에 정착했다. 오늘날, 몰몬교는 전세계에서 가장 급속히 성장하는 종교집단 가운데 하나다.
전체 신도수가 1,100만명에 육박하고, 그중 절반이 미국에 있다. 뉴욕주에서만 몰몬교도 숫자가 6만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지난 10년간 51%나 늘어난 수치다. 몰몬교의 급속한 교세확장 비결은 신도들의 열렬한 전도활동인 것으로 여겨진다.
몰몬교는 1907년에 이르러 팰마이라 일대의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몰몬교가 윌라드와 레베카 빈스 부부를 선교사로 이곳에 파송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초창기 빈스 부부의 선교활동은 엄청난 저항에 부딛혔다. 이웃사람들은 그들에게 유타로 돌아가라며 고함쳤다. 또, 가게주인들이 물건판매를 거부하는 바람에 인근타운으로 쇼핑을 가야만 했다.
빈스 부부는 서서히 친구들과 개종자들을 얻기 시작했다. 부부는 심지어 자녀들의 이름에도 팰마이라를 넣었다. 빈스 부부의 딸인 팰마이라 빈 팩커는 "어머니는 항상,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좋게 대해라. 그러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고 가르치셨다"고 말한다. 85세의 패커는 현재 유타주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몰몬교는 팰마이라 일대에 984에이커의 부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4월에는 500만달러를 들여 새성전을 건축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몰몬교 기념행사는 해마다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가장 최근의 행사에는 한꺼번에 1만명이 되는 관중들이 운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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