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고픈 기분이지요’ ★★★★★(별5개 만점)
▶ (In the Mood for Love)
로맨티시즘이 쏟아져 내리는 빗물이 되어 스크린을 창호지처럼 흠뻑 적시다보니 이야기 속 두 남녀의 그리움이 온 몸에 묻어나 가슴이 아프다. 현기증이 나도록 아름다운 총천연색으로 흠뻑 묻은 영상 속에서 해서는 안될 사랑 때문에 주저하고 고민하는 두 사람의 사랑하고픈 무드가 몽환과도 같이 머무적대며 유혹한다.
천성이 로맨틱인 홍콩의 왕 카와이 감독은 자신의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추억의 아름다운 잔상들을 아스름하니 재생시키고 있다시피 이 영화는 구식 로맨스 영화다. 사랑의 영화요 불륜의 영화로 접촉은 없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공간과 감정과 감정 사이의 여백이 있을 뿐인데 이같은 떨어져 있고 비어 있는 공간 때문에 그 사랑이 더욱 간절하니 느껴진다
작중 인물인 차오가 “감정이란 살금살금 휘감겨 드는 것인가 보다”라고 말했듯이 사랑의 분위기가 스멀대며 끈끈하니 사로잡는 무드의 작품이다. 이런 무드는 두 남녀가 끌어당겼다 밀어냈다 하면서 춤을 추는 듯한 작품의 리듬에 실려 더욱 흐느적거린다.
두 사람의 내밀한 감정의 주고받음이 이야기나 대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응시와 엿봄 그리고 무드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다. 카메라의 영화라고 하겠는데 카메라(크리스토퍼 도일과 마크 리)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사람과 사물등 모든 대상을 나태하게 애무하면서 연모하고 아파하고 후회하고 또 그리워하고 있다.
1962년. 홍콩. 신문사 기자인 차오 모완(토니 륭)과 회사 사장비서인 수 리젠(매기 충)은 한 아파트의 이웃에 서로 세 들면서 첫 대면을 하게 된다. 복작거리는 셋방살이를 하는 둘은 좁은 복도와 국수 사러 가는 좁은 계단골목길에서 서로 스쳐 지나가면서 눈으로 자꾸 만난다(이 때 현들의 쿵작작하는 반주를 받으며 바이얼린이 로맨틱하면서도 비감한 멜로디를 쏟아내면 카메라가 둘의 스쳐 지나감을 느린 동작으로 담아내는데 여러 번 반복되는 이 음악과 촬영이야말로 로맨틱 무드의 극치라 하겠다).
그런데 두 사람은 우연히 자신들의 아내와 남편(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만남을 시작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기들의 남편과 아내가 처음에 어떻게 접근했으며 어디서 만나 무얼 먹고 또 마침내 어떻게 함께 잠자리를 하게 됐을까에 대해 마치 연극을 하듯 재현해 본다.
둘은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면서도 만남을 거듭하면서 어느덧 사랑에 빠진다. 차오는 평소 쓰고 싶었던 무협소설을 쓰면서 수에게 감수를 요청하고 둘은 말 많고 남의 일에 관심 많은 주인집과 동네 아주머니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호텔서 만나나 가십에 휘말리게 된다. 차오는 남편을 버리지 못하는 수와 가십에 지쳐 싱가포르로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차오와 수는 이별의 리허설을 한다(그들의 사랑은 이별을 위한 리허설이었는지도 모른다.) 싱가포르에서 일자리를 구한 차오가 어느 날 직장서 귀가해보니 재떨이에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가 남아있지 않은가.
둘이 헤어진 지 6년 뒤 수는 어린 아들과 함께 단둘이 옛집에 다시 세 들고(헤어스타일이 다른 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 차오는 오래간만에 옛 집주인을 찾아 홍콩을 방문한다. 주인이 이사갔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는 차오는 수가 살았던(그리고 살고 있는) 이웃 아파트 문을 잠시 그리움에 잠겨 응시한다. 그리고 차오는 캄보디아의 옛 사원 유적지를 찾아 바위구멍에 입을 대고 자신의 비밀을 토해낸 뒤 돌아선다. ‘마치 먼지 묻은 창을 통해 바라보는 흐리고 불분명한 기억처럼 모든 것은 지워지고 말리라.’이것이 에필로그다.
카메라는 차오와 수의 얼굴과 손과 팔과 다리 그리고 벽시계와 전구, 슬리퍼와 형광등과 담배연기를 문지방서 들여다보고 또 창과 커튼과 거울을 통해 엿보고 응시한다. 남의 불륜한 사랑을 몰래 숨어서 보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카메라가 좁은 공간에서 이 모든 것들을 포착하면서 자아내는 협소감은 차오와 수의 억누르는 감정을 대변하듯 해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영화의 감정적 무드를 마구 일렁이게 하는 것이 음악이다. 감독은 그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여기서도 옛 팝송을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 이번에는 스페인어로 부르는 냇 킹 콜의 노래가 나오는데 아름다운 중국 드레스를 입고 차오와 함께 물고기가 유영하듯 걸어가는 수의 뒷모습이 슬로모션으로 보일 때 같은 리듬으로 흐르는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가 달콤하기 짝이 없다. 감독은 냇 킹 콜의 노래와 음악을 절제해 가며 사용하면서 음악이 없을 때는 자연음을 넣어 감정적 효과를 더욱 북돋운다.
모든 것이 보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이 영화에서 가장 고혹적이요 우아한 것은 청삼(중국 고유 드레스)을 입은 매기 충의 모습이다. 틀어 올린 머리에 하이힐을 신고 온갖 강렬한 색깔의 꽃무늬로 수놓인 하이칼라의 청삼을 몸에 꼭 끼게 입은 모습을 카메라가 앞과 뒤 그리고 옆에서 정성껏 어루만지듯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몸에 끼는 청삼은 수가 억제하는 감정의 상징이 되고 있다(매기 충은 영화에서 10여벌의 매력적인 청삼을 입고 나오는데 이 영화 때문에 지금 중국에선 청삼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매기 충의 청삼처럼 인상적인 것은 토니 륭의 포마드 칠해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과 하얀 셔츠 위에 입은 단정한 신사복 차림. 이처럼 세련되고 깔끔한 신사숙녀의 모습은 불륜의 사랑의 반어처럼 느껴지는데 말끔한 신사복을 하나의 억지물처럼 입은 토니 륭이 알듯 모를 듯 고뇌하는 연기를 심오하니 보여준다.
지난해 칸영화제서 남자 주연상과 뛰어난 영상미에 주는 기술상을 받았다. 등급 PG. USA Films. 웨스트사이드 파빌리언(310-475-0202), 모니카(310-394-9741), 코스타메사 타운센터(714-751-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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