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말하는 내용을 보면 인간 됨됨이를 꽤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아버지가 종종 말씀하셨다.
낮은 수준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것도 보통 그다지 즐겁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 한단계 위에는 물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집, 비싼 자동차, 모피 코트 등. 더 높은 수준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올림픽 게임, 오케스트라 연주, 선거 등.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람들은 사상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다 진실, 아름다움,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 종교, 발견, 또는 발명의 중요함 등. 분명, 우리에게 대화거리가 바닥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사람에 대해 좋은 것을 말한다면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단서하에 나는 여러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몇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미세스 강 미세스 강의 남편인 강박사는 미국 최초의 한인 변호사였다. 1900년대에는 변호사를 구하는 한인들이 거의 없었고 미국법정에 자신을 대변할 사람으로 외국인을 택하는 미국인들도 드물었다.
강박사는 너무나 자만심이 강해 비천한 일을 할 수 없었으므로 미세스강이 중국인 세탁소에서 빨래하고 다림질해 다섯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다. 그녀 가족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견디어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삶이 어려웠음에도 그녀는 우리가 처음 미국에 당도했을 때 우리를 돌보아준 첫 한국인이었다.
우리 가족은 1940년 12월말, 시카고에 도착했는데 나는 봄옷을 입고 있었다. 자신의 교회 목사가 자녀들 겨울옷을 살 만한 돈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미세스 강은 길모퉁이에 있는 옷가게(그 상점이름이 ‘마크스’였음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나의 첫 겨울옷을 사주었다. 사실 나는 그녀 아들들 옷을 물려받아입고 자랐다.
미세스 강은 사려깊은 여성으로서 어머니가 미국의 새 환경에 적응하기에 어려운 시기가 있음을 알았으며 더욱이 시카고 작은 교회의 주민 교인들을 구성하고 있던 교육수준이 낮은 교인들의 비난을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
때로는 인간의 인내 한계를 넘는 정도까지 일했던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이 여성은 세 자녀를 대학에 보냈다. 선택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남편과는 달리 - 한세대 후에 - 아들중 한 명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로 성공적으로 일하다가 최근 은퇴했다. 딸은 일리노이주 블루밍튼에 있는 일리노이 웨슬리언대학에서 홈커밍퀸이었으며 한인 치과의사 남편과 함께 아직도 시카고에서 살고 있다.
미세스강은 열심히 일하고 남을 돕는 삶을 살았다. 인생 후반기에 그녀는기쁨과 좋은 건강, 훌륭한 가족들로 축복받았고 결혼 73주년을 기념할만큼 오래 살았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을 항상 베푸는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내게 매우 특별한 사람이며 여러분들에게도 알리고싶은 사람이다.
설리번 중위 설리번중위는 ‘해병중의 해병’이었다. 이 호칭은 최상을 칭할 때 쓰는말이다. 전투를 지휘하고 명령 받는 부하를 돌보는 법 등 모든 것을 미해병장교훈련학교를 통해서 배웠다. 내가 1952년부터 53년까지 한국에 있었을 때 첫 4개월간 그는 나의 소대장이었다.
우리는 38선을 따라 흐르는 임진강 남쪽 둑에 야영했다. 강 일부는 북한군이 건너올 수 있을 만큼 그 폭이 좁았다. 이곳은 또한 그들 박격포 포격이 건너편에 도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강을 건너올 가능성 때문에 그 지역을 지키도록 한 분대가 배정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박격포탄을 받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적군 포격 받는 것을 반겼다. 왜냐하면 규정에 의해 한달에 20회 이상 포격받으면 ‘전투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었다.
이 20회를 채우게 되면 설리번중위는 다른 분대를 이 지역에 보내 교체시켰다. 공식적으로는 일부 해병이 다른 해병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하려고 위험을 분산시킨 것이라고 그는 보고서에 기재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다른 면을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 지도자였다; 우리를 돌보았다. 우리는 그를 존중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지옥에도 가겠다는 정도였다.
어느날, 우리 소대는 열린 지역을 지나 반대쪽에 다른 벙커를 짓기 위해 무거운 목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이때 포격이 시작됐다. 보통때보다 더 심하게 박격포탄이 퍼부어졌고 중위를 비롯, 몇 명이 상처를 입었다.
전투에서 부상하면 ‘퍼플 하트’훈장이 수여된다. 부상 정도가 경미하든, 사망원인이 되든 훈장은 같았다. 그것은 아주 영예로운 메달이다; 해병이 국가와 신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걸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훈장을 받으면 군인자신의 기록도 좋아지고 가슴에 걸었을 때 보기에도 좋다.
상처가 미미할 따름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메달 받기를 거부했으나 그는 예외였다. 중위와 우리들사이가 즉각 냉랭해졌고 그 골이 깊어갔다. 그 일이 있고 수주일 동안 우리는 그의 명령에 복종했으나 종전 같지는 않았다. 한달 안에 그는 전근을 요청, 떠나가버렸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손실이었다.
돌이켜보건대 군복무에서 후회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인생 초반기였으나 내가 좀더 성숙하고 좀더 남성답고, 좀더 지도자 같았다면 다른 식으로 일을 처리했을 것 같다.
이러한 경험이 내 인성발달에 득이 되었다. 적시적소에 할 말을 하고 가능한 한 항상 바른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훗날 나는 깨달았다.
우리와 달리 그 중위는 직업장교 해병이었다. ‘퍼플 하트’훈장은 그의 기록에 빛을 더해줄 것이다; 그의 전투경험을 입증해줄 것이다. 승진에 중요할 것이며 이력서에 한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때때로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해병에서의 경력은 어떠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그는 좋은 장교였고 훌륭한 남자였으며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은 사람이다.
오박사 오공단박사는 방위분석연구소 연구원이며 브루킹스연구소의 고참특별회원이다. 그는 남,북한의 정치, 경제, 상호관계, 통일과 미국의동아시아에 대한 안보 및 외교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50여개 이상의 저술, 언론기사, 컨퍼런스보고서를 발간했다.
오박사는 서강대에서 동양사를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한국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UC버클리에서 아시안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2000년 11월16일, 시카고 외교관계위원회 발표장에서였다. 홍보책자에는 오박사가 ‘유리를 통해서 본 북한’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도록 되어있었다. 종전에 내가 그 위원회에 참석했던 것은 몇 년전, 김영삼 전대통령이 강연할 때였다.
발표장에는 참석자가 많았다. 실망스러운 것은 한인 참석자가 세명뿐인 것이었다.
그녀의 발표에 이은 질의 응답시간에 나는, 한반도통일을 위해 남북한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 클린튼대통령이 자신의 미미한 외교업적을 개선시키려교 북한을 방문하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이 북한과 접촉하면 남한을 무시하게 되어 그동안 진전된 한국인들의 통일 노력이 손상되며 어떠한 논의든 양측 당사자가 직접, 친숙하게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진정한 진전이 있을 것임을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나는 주장했다.
내 질문은 클린튼대통령을 몰아치려는 의도였는데 이로 인해 오박사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그는 미국정부 자문관으로서 클린튼대통령을 위해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질문에 반응하는 식으로 대답을 해 그 어떤 사람도 나쁜 평을 듣지 않게 했다. 북한이 한국을 무시하거나 통일진전에 필요한 것들을 무시하려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단지 북한은 한 번에 한가지 이슈이상을 다루는 외교적, 관리적 역량이 모자랄 따름이라는 것이다.
앞서 있었던 발표에서 한 나이든 신사가 그녀에게 좀더 천천히 말할 것을 요청했다. 오박사는 그 요청에 침착하고 유머스럽게 반응했다. 그는 노력해보겠노라고 말한 후 “내가 완벽하지 못한 영어로 말하지만 높은 수준의 브리핑에서는 어드바이저가 항상 우리에게 5분밖에 없다고 주지시키기 때문에 빠르게 말합니다.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5분안에 조언을 다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빠르게 말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지식과 인식, 유모어, 겸손 얼마나 훌륭한 결합인가. 오박사같은 사람 앞에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배우게 된다. 여러분도 나와 함께 청중들 속에 있었기를 바라며 그녀를 알게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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