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섹스 스캔들이 터졌을 때의 처신이다. 용서를 구하고 공직에서 물러난다. 그러면 공화당원이다. 속죄했다면서 버틴다. 민주당원이다. 르윈스키 성추문 탄핵정국 와중에서 물러난 사람은 클린턴이 아니다. 당시 연방하원의장 밥 리빙스턴이다. 자신의 혼외정사 사실이 들통나자 바로 사임했다. 제시 잭슨 목사의 섹스 스캔들이 폭로됐다. 은퇴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버티는 게 클린턴 민주당 식이니까"
’세계의 역사는 바로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다’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다. 지난 한 세기 미국을 이끌어온 역대 대통령의 면면을 살펴보면 칼라일의 이같은 주장은 옳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세기’ 20세기를 연 시오도어 루즈벨트, 대공황 시대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마샬 플랜’의 해리 트루먼, ‘위대한 사회’를 제창한 린든 존슨, 냉전을 승리로 이끈 로널드 레이건 등 대통령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바로 20세기의 미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마지막 대통령이 빌 클린턴이다.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 처음 2기 연임에 성공한 민주당 대통령이다’ ‘최장기 경기 호황의 업적을 이룩했다’ ‘WTO체제 확립과 함께 미국적 스탠다드를 전 세계로 확산시킨 세계화 정책에 성공한 대통령이다’ 클린턴에 따라 붙는 찬사들이다. 그뿐이 아니다. 민주당을 살렸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노조등 일부 좌파성 이해집단의 포로가 돼 있던 민주당을 중도주의로 혁신한 인물이 클린턴이라는 이야기다.
이같은 찬사와 함께 클린턴은 임기 말에 놀라울 정도의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지지율이 65%를 넘어 왕년의 레이건 지지도를 훨씬 웃돌았다. 그러면 이같이 높은 지지도를 클린턴에 대한 역사적 평가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는 경기 호황에 대한 미국민의 만족감 표시일 뿐이지 인간 클린턴에 대한 신뢰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사의하게 높은 클린턴의 인기 유지의 비결은 절묘한 표퓰리즘의 추구에 있었다. 바로 이 철저한 대중영합주의 때문에 클린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클린턴이 추구해 온 중도주의라는 것도 그 내용은 정치적 양다리 걸치기에 다름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웰페어 개혁이 바로 한 예. 웰페어 개혁을 반대하는 민주당 입장을 고수할 경우 재선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클린턴은 홀로 재빨리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재선됐지만 의회와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클린턴 평가에 있어 가장 부정적인 요소는 잇단 섹스 스캔들이다. "르윈스키 스캔들은 미국의 대통령직에 오점을 찍었다기보다는 대통령직 자체를 왜소하게 만들었다" "온갖 성추문으로 얼룩진 클린턴은 한가지 유산을 남겼다. 지도자에 대한 미국민의 기대 수준을 한껏 낮춘 것이다. 의회의 탄핵 시도가 일반의 호응을 받지 못한 원인은 바로 대통령의 위상이 낮아질 때로 낮아져 더 추락할 것도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클린턴 섹스 스캔들과 관련돼 나온 비판들이다.
이처럼 명암이 교차되는 양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클린턴 8년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무엇일까. 정치도, 경제도, 사회적 변화도 아닌 가치관의 변화다. 장기적 경기호황, 현직의 이점 등에도 불구하고 앨 고어가 패배한 것도 이번 대선이 가치관 전쟁의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클린턴 시대의 최대 패러독스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 중 가장 보수적인 클린턴이 보수 우파의 증오 대상이 되고, 또 풍요의 시대에 미국의 정치가 극단의 양극화로 치닫게 된 점이다. 이 역설적 현상은 바로 가치관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탐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공한 베이비 부머들이 그 변화의 주체다. 그들은 본질에 있어 물질주의자이고 자기 중심에, 권력에 굶주린 유형이다. 클린턴은 바로 이같은 인간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런 점을 시인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이 지닌 지적 오만 때문이다"
결론은 이렇게 날 것 같다. ‘클린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결코 호의적이 아닐 것이다’라고. 경제적 호황이라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는 별로 중요치 않다. 그러나 섹스 스캔들로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라는 기록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거기에 또 하나가 첨가됐다. ‘위증을 한 대통령’이리는 꼬리표다. 버티고 버티다가 대통령직 퇴임을 하루 앞두고 불기소를 조건으로 성추문과 관련해 위증을 한 사실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역사의 판정은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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