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서있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지난해 10월 7일,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던 다보 카니카는 정상에 선 순간, 세상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흔히, 등산가들에게는 하산길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그런데, 카니카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선 후 스키를 타고 하산했다. 그에게 있어서 에베레스산 정복은 모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카니카는 4시간 40분간 스키를 탄 끝에, 2만 9,028피트의 정상에서 1만 7,515피트 높이의 베이스 캠프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하산 스키모험은 헬멧에 부착된 카메라와 원격장치 카메라들에 잡혀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스키를 타고 하산하는 동안, 카니카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와 크레바스, 암석 등에 걸려 수없이 추락할뻔 했다. 또, 하산 도중 1996년에 조난당해 얼어죽은 사람의 시체를 발견하기도 했다.
38세의 카니카는 강인한 체력을 보유한 슬로베니아 인이다.
그는 스키를 이용한 하산이 목숨을 담보로 한 무분별한 행동이었다는 비난에 대해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모험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카니카는 말한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조국 슬로베니아인들은 이런 카니카를 영웅시하고 있다.
카니카의 인생역정을 듣고 나면 그의 말이 이해가 된다.
그는 지난 18년간 에베레스트 정복을 준비해 온 사람이다. 그의 형 루카는 1997년, 고향의 산악지대에서 등반훈련 도중 사망했다. 또, 동생 드레첵은 1995년 히말라야 안나푸루나 등정중 카니카와 함께 스키를 타고 하산하다가 동상에 걸려 발가락 8개를 절단했다.
카니카 자신도 1996년 참가했던 악명높은 에베레스트 등정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동상으로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당시, 이 등반사고는 무려 12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등반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존 크라카워가 이 사고를 소재로 집필한 "희박한 공기 속으로"라는 체험기는 베스트셀러가 된바 있다.
산의 유혹은 오랫동안 카니카 삶의 일부였다.
알프스산맥 기슭 고향 예제스코에 살던 그의 부모는 두 사람 모두 열렬한 등산가이자 스키광이었다. 부모는 여름철에 산중턱에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통나무 별장을 운영했다.
등산과 스키에 대한 카니카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혼자 스키연습을 하다고 아침에 학교에 가곤 했다"
카니카의 스키강사였던 빈코 테피다는 전한다.
대학시절 카니카는 스포츠학을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슬로베니아 알파인 스키팀 코치로 일했다.
그러나, 타고난 모험기질 때문에 학업을 완료하지는 못했다. 대학시절부터 끊임없이 각종 모험을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1995년 동생 드레첵과 함께 참여한 2만 6,504 피트의 안나푸푸나봉 등정이 포함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의 모험일생 중 최대의 위기는 1996년 에베르스트 등정이었다.
등반팀은 히말라야 북벽 티벳쪽 코스를 선택했다. 그런데, 등반도중 갑자기 날씨가 험악해졌다. 하지만, 코니카는 베이스캠프에 무전연락을 취할 목적으로 장갑을 벗었다. 손가락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았지만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는 손가락 두 개를 절단했다.
카니카는 결국, 정상정복을 포기하고 일곱시간 동안 살인적인 폭설과 강풍을 뚫고 하산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그런 상황에서 서둘렀다가는 큰일 난다. 언제 추락할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지점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다. 잠들면 그걸로 끝장이다. 그 상황에서 잘못된 선택은 죽음을 의미한다"
카니카는 최악의 상황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베이스 캠프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캠프에 도달하자마자, 그의 머리속에는 재도전하겠다는 마음부터 생겼다. 형제들이 당한 사고도 동료대원들의 죽음도, 손가락 절단도 그의 투지를 가로막지는 못했다.
마침내, 작년 10월 4일 그는 에베르스트 정상을 향하여 베이스캠프를 다시 출발했다.
다행히도 날씨가 양호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스키를 타고 하산하기가 더 문제였다.
그는 정상에서 불과 몇분간 체류한 후, 남쪽코스를 따라 스키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 2,000피트의 하산길은 스키를 즐길만큼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힐러리 스텝 부근에 이르자 기상이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힐러리 스텝은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영국 등반가 힐러리 경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지명이다. 폭설과 눈사태가 그를 위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2만 7,000피트 지점에서 눈속에 삐져나온 죽은 사람의 두 다리를 발견했다. 나중에 이 시신은 1996년 원정대 대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시신을 보는 순간, 정신을 집중해서 기어코 하산에 성공해야겠다는 집념과 투지가 타올랐다"
카니카는 말한다.
10월 7일 오후 12시 45분, 카니카는 무사히 베이스 캠프에 도달했다.
카니카는 각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한 후 스키를 타고 하산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카니카가 가족들에게 스키등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산이 하나 있다. 그것은 험난하기로 소문한 히말라야의 제2봉인 K2봉이다.
"가족들과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카니카는 이렇게 말하며 씩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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