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AN-TV에서 방영되는 ‘아줌마’라는 드라마 때문에 ‘남편들의 거짓말’이 요즘 주부들 사이에서 화제다. 드라마에서 교수인 남편은 대학시절 여자친구와 바람을 피우면서 고졸 학력의 알뜰 살림꾼 아내에게 시종 거짓말을 한다. 이런 저런 말로 둘러대는 모습이 너무 낯익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것이 여성들의 주된 반응이다. 극중의 남편은 다른 여자와 있을때면 으레 휴대전화를 꺼놓는데 “우리 남편도 곧잘 전화를 꺼놓는다”며 흥분하는 여성도 있다. 남편과 같이 드라마를 보다가 과거 남편이 했던 수상쩍은 행동들이 생각나서 괜히 남편이 미워지더라는 주부도 있다.
남녀공학의 대학을 졸업해 남자동창이 많고 신문사 동료 역시 대부분 남자들이다 보니 ‘남편들의 거짓말’을 목격할 기회가 많다. 우리가 아직 젊었을 때 부인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내게 ‘협조’를 부탁하던 남자선배도 있기는 했지만, 대개는 악의없는 애교스런 거짓말들이다. 정말 심각한 거짓말이야 남에게 말할리 없으니 알수가 없고 보통 남편들의‘비행’의 수준은 고등학교때 ‘학생입장 불가’ 영화를 몰래 들어간 정도로 보인다.
남자동창·동료들이 무용담처럼 털어놓는 거짓말들을 종합해보면 ‘남편들의 거짓말’은 십중팔구 돈, 귀가시간, 여자와 상관이 있다. 아내 몰래 용돈을 좀 챙겼다가 야금야금 쓰는 재미, 친구들과 밤새 술마시거나 당구치고 ‘회사일’핑계대는 아슬아슬함, 어떤 경로로 알게된 호감가는 여성과 저녁이라도 같이 했을 때의 스릴… 이런 것들이 바탕은 착하지만 ‘곁길’에 대한 호기심을 버릴수 없는 우리의 ‘철없는’ 남편들의 마음상태이다.
돈과 관련한 거짓말중 가장 흔한 것은 ‘보너스’. ‘보너스 나왔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현금으로 바꿔 쓰는 것이다. 40대 초반의 남자후배가 그 사정을 말했다.
“수표로 나오는 봉급 빤하지 않습니까? 보너스라도 챙기지 않으면 마음놓고 술 한번 마실수가 없어요”
술김에 호기를 부렸다가 뒷수습하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도 흔히 보는 케이스. 크레딧카드 명세서에 나온 수백달러의 술값을 아내에게 들킬까봐 그 부분만 가리고 새로 복사해 명세서를 ‘위조’하는 재주꾼도 있다.
남편들이 거짓말의 요행을 빌리는 때는 또 적정한 귀가시간을 넘겼을 경우. 한국에서는 ‘상갓집 밤샘’이 단골메뉴이지만 미국에서는 그도 안먹히니 머리를 써야 한다. 당구치다 새벽을 맞은 한 후배는 타이어 펑크를 조작했다. 양손과 옷에 타이어 검정을 묻히고는 “프리웨이에서 타이어가 터져 엄청나게 고생했다”는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렇게 아내가 무서우면 애초에 잘못을 하지 말거나 아니면 이실직고할 일이지 비겁하게 거짓말은 왜 하느냐” 여기에 대한 남자들의 대답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업무상 여성들과 자리를 같이할 때가 있습니다. 전혀 개인감정 없는 모임이지요. 하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하면 아내는 신경과민이 됩니다.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지요”
적당한 거짓말은 필요악이라는 의견이다. 행동심리학계에도 비슷한 연구보고가 있기는 하다. “선의의 거짓말은 대인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사교기술”이며 그래서 너무 고지식한 사람보다는 적당히 둘러대기를 잘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집안의 평화’는 그런 거짓말들이 성공한 때문인가. 아내가 감쪽같이 속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한 50대 주부의 의견은 다르다.
“결혼생활 10년 넘으면 남편이라는 사람을 왜 모르겠어요? 눈빛만 봐도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알게 되지요. 크게 잘못된 일 아니면 대충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에 따지지 않는 것이지요”
남편의 행동반경을 너무 속박하려들면 오히려 남편의 거짓말 기술만 늘게 만든다는 것이 선배 주부들이 젊은 주부들에게 하는 조언이다. 선배 남편들이 젊은 남편들에게 하는 조언도 있다. 거짓말을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오도가도 할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악의없는 거짓말도 반복되면 불신의 싹이 된다. 거짓말쟁이의 비극은 ‘진실을 말해도 남들이 거짓말로 아는 것’이라는 탈무드의 가르침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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