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종목 스포츠에서 특정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포지션으로는 단연 풋볼의 쿼터백을 들수 있다.
쿼터백은 순간순간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여 패싱을 함으로써, 소속팀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포지션이다.
미국사회의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프로스포츠 세계에서도 오랜 인총차별적 관행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오늘날 NBA의 선수들 대부분은 흑인들이지만, 팀의 감독들은 대부분 백인이라는 사실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몸으로 뛰는 일은 흑인들이 잘하지만, 인지능력과 리더십을 요하는 자리는 백인들의 몫이라는 암묵적 사고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프로 스포츠계는 대부분 흑인선수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NBA는 말할 것도 없고, NFL에서도 흑인선수의 비율은 거의 7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세월 동안, 쿼터백 포지션 만큼은 흑인선수들에게는 금지된 성역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차별적 관행도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NFL은 현재 대망의 수퍼보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들에 소속된 12명의 스타팅 쿼터백 중 흑인선수가 5명이나 된다. 또 이번 시즌 전체를 놓고 볼 때, 모두 14명의 흑인 쿼터백들이 적어도 한 게임 이상 출전했다.
지난 80년대만 해도 흑인선수가 쿼터백이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당시에도 풋볼선수들의 절반 정도을 흑인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흑인 쿼터백 선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팀의 핵심 리더십 포지션인 쿼터백 만큼은 "뭔가 다른" 자리라는 인식이 지배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재능있는 흑인 쿼터백 선수들은 NFL에 진출하드라도 다른 포지션으로 전향하는 것이 관례였다.
흑인선수는 코너백, 리시버, 러닝백 같이 몸으로 떼우는 포지션에 적합한 운동선수라는 인식이 강했다. 당시, 백인 위계질서 구조가 고착된 풋볼세계에서, ‘운동선수’라는 말은 이런 흑인선수의 위상을 표현하는 용어로 통했다.
촉망받던 흑인 쿼터백들이 대부분 포지션을 변경해 NFL에 진출한 것과는 달리, 찰리 워드 선수는 아예 NFL 진출을 포기한 케이스다.
워드는 1993년, 플로리다 주립대 소속 쿼터백으로 하이스만 트로피까지 차지한 탁월한 선수였다. 그러나, 어떤 NFL 팀들도 그를 쿼터백으로 지명하지 않았고, 이에 위드는 NFL 자체를 포기해 버렸다.
워드는 농구에도 출중한 재능이 있었던고로, NBA 1라운드에 지명되어 현재 뉴욕 닉스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 중이다.
이 일과 관련, 워드는 지금도 이렇게 아쉬워한다.
"나는 NFL에 먼저 찬스를 주었지만, 그들은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완고했던 인종차별적 관행이 최근 수년간 급격히 무너지게 된 원인은 무었일까.
첫째는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인식변화를 들 수 있다.
60년대 민권운동을 기점으로 모든 분야에서 흑인들의 활동기회가 넓어졌고, 이는 풋볼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둘째,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을 꼽을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스포츠의 본질은 상대팀을 이겨야 하는 경쟁이다. 그러다 보니, 각 팀의 코치나 매니저, 심지어 구단주들까지도 승리할 수만 있다면, 흑인선수라도 쿼터백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NFL 역사상 최초로 쿼터백으로 출전한 흑인선수는 윌리 스로어다.
그는 1953년, 시카고 베어스 팀에서 쿼터백으로 단 한경기에 출장했다. 그때 이후 흑인 쿼터백 선수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1968년, 두 번째 흑인 쿼터백이 등장한다. 오클랜드 레이더스가 흑인선수 엘드리지 딕키를 1라운드에서 쿼터백으로 지명한 것.
그러나, 딕키는 2라운드에서 지명된 백인 쿼터백 켄 스테이블러 선수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결국, 딕키는 1라운드에 지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는 거의 출전치 못하고 벤치에서 재능을 썩히는 비운의 선수가 되었다.
현대풋볼 역사에서 실제적으로 NFL 쿼터백 생활을 한 흑인선수는 1968년 덴버 브롱코스에 입단한 말린 브리스코가 가장 처음이다.
브리스코는 애당초 코너백으로서 브롱코스에 드래프트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라커룸에 들어가자 15번 유니폼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15번은 쿼터백이 착용하는 유니폼이다. 브리스코는 대학때는 유명한 쿼터백이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코너백으로 지명된 NFL 루키였다.
"15번 유니폼을 보는 순간, 내가 방출된 것으로 생각했다"
브리스코는 아찔했던 그 순간을 회상한다.
브롱코스의 기존 쿼터백들이 계속 극심한 부진을 보이자, 구단측에서 할 수 없이 브리스코을 쿼터백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그 밖에, 전 미시건 주립대학 쿼터백으로서 대학풋볼사상 최고의 쿼터백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지미 레이도 인종적 장벽 앞에서 무릎을 꿇은 케이스다.
그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질을 살리지 못하고, NFL에 진출할 때 디펜시브 백으로 포지션을 전환했다. 레이는 대학시절, 전미 대학풋볼 리그의 유일한 흑인 쿼터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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