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권택 인터뷰
▶ 외국서 더 유명 ‘거장’으로 불려
임권택(65)은 한국에서 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고 또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비평가들은 그를 ‘매스터’(거장)라 부르며 가장 한국을 잘 대표하는 감독으로 여긴다. 이것은 그가 한국적인 것에 애착을 갖고 그것을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영상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 몸담은지 38년동안 100편에 가까운 영화를 만든 임감독은 처음에는 사이비 할리웃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그래봐야 할리웃영화를 따라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국사람만이 만들수 있는 것을 만들어 할리웃영화와 차별화를 두면서 외국영화제와 비평가들의 눈에 띄게 됐다. ‘축제’, ‘태백산맨’, ‘서편제’, ‘아제 아제 바라 아제’, ‘씨받이’, ‘길소뜸’, ‘만달라’ 및 ‘족보’ 등이 그런 영화들이다.
지난해 9월 토론토와 뉴욕영화제에 출품된 ‘춘향뎐’ 홍보차 LA에 들른 임권택을 웨스트 할리웃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특유의 짧은 머리에 소박한 인상을 풍기는 그는 조용한 음성으로 기자의 물음에 답했는데 영화에 대한 정열이 가슴 속에서 끓어 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춘향뎐’의 미국극장 상영에 대한 소감은.
▲영화의 본고장에서 미배급사가 정식으로 수입해 일반극장에서 상영하는 최초의 한국영화라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좋은 성과를 이뤄 후배들을 위한 길잡이 구실을 했으면 하고 바란다.
-판소리 춘향가를 영화로 만든 까닭은.
▲우리 민족사와 문화적 개성이 뚜렷이 담긴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뤄보고팠다. 또 판소리를 영상과 결합시켜 판소리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팠다. 해외관객을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세상은 이제 하나의 지구촌인데 거기서 한국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리 조상의 것을 밖으로 내보내 세계인과 공유시키는 것이라는 욕심이 들었다. 영화제를 따라 다니며 보니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모두 호응을 받았는데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한국서 흥행실패 이유는.
▲14번째 춘향전이라는 것과 선전의 실패, 그리고 어려운 판소리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동안 외국영화제 결과를 보면 미국인 관객들의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 한편으로는 미국인들이 자막이 있는 영화를 기피한다는 얘기도 들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개봉 첫주말 흥행여부에 따라 상영기간이 연장되기 때문에 첫주말 한국인들이 많이 봐주기 바란다. 보면 내 영화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조상현씨의 판소리 장면을 삽입한 까닭은.
▲처음에는 모두들 그것을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러나 춘향전은 소리판으로 공연돼 온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또 판소리의 멋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춘향의 얘기는 인위적이요 동화같은 것으로 나는 그 사실을 카버하기 위해서도 판소리를 사용했다. 그러면서 작품의 격조도 높이고자 했다.
나중에는 학계와 성균관 등 각 방면에서 굉장한 성원을 받았다. 영화속 현판과 병풍 등은 모두 일류전문가들이 쓰고 만든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영화 더 이상 안 만들겠다고 했는데.
▲동족간 살상이라는 비극을 겪은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은 양쪽으로 갈려져 이데올로기를 지킨다면서 결국 그 어느쪽도 제대로 자신들이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하고 희생만 가져왔다. 이데올로기 영화를 안 만든다기 보다 그 어느 한 편에 서서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끼리 서로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근의 남북관계의 화해무드는 반가운 현상이나 이것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해선 안될 것이다.
-좋아하는 장르는.
▲선호하는 장르는 따로 없다. 평소 늘 관심을 가졌던 것에서 소재를 선택한다. 영화란 봐줘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업성과 예술성이 조화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한국영화가 외국에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려운 질문이다. 한국영화가 예전보다는 해외에 잘 팔리고 있고 또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영화를 잘 만들어 장래가 밝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젊은 감독들이 주관객인 10-20대를 목표로 영화를 만들어 관객의 연령층 폭이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폭넓은 연령층의 관객이 볼 수 있는 영화라야 해외에도 팔리고 또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 우리나라 영화가 산다.
‘쉬리’가 할리웃영화의 아류라는 지적은 당연하나 긍정적인 면은 그것이 할리웃의 엄청난 힘과 겨루어 이겼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바람직한 것은 한국사람이 아니면 못 만들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나이 먹은 감독은 나 혼자로 몹시 외롭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LA를 비롯한 미주 동포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다시 한번 ‘춘향던’을 많이 봐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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