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텍사스가 이겼지만 풋볼에서는 테네시가 이겼다. 크리스마스날밤 먼데이나잇풋볼로 치러진 2000 NFL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테네시 타이턴스가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31대0으로 완파, 고어의 분풀이를 했다.
풋볼은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등 4대 메이저 스포츠중에서도 미국인들이 가장 ‘죽고 못사는’ 종목이다. ESPN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29%가 NFL팬이라고 답했다. 메이저리그 야구팬 18%, NBA팬 15.6%에 단연 앞선다. 비록 게임수에 있어서는 한시즌 162게임을 치르는 야구의 10분의1, 82게임을 치르는 농구나 하키의 5분의1에도 못미치지만 열기만은 다른 어느 스포츠에 비해 뜨거운 것이 풋볼이다. 풋볼은 단순히 인기 스포츠가 아니다. 풋볼이 미국을 지배한다.
’풋볼과부’라는 말이 있다. 풋볼시즌인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주말이면 맥주와 팝콘을 벗삼아 하루종일 TV앞에서 꼼짝않는 남편들 때문에 생겨난 단어다. TV에서는 토요일 아침9시~밤11시까지 대학풋볼, 일요일엔 아침10시~밤9시 그리고 월요일 오후6시~9시30분까지 NFL 풋볼을 쉬지 않고 중계한다. 미국 TV사상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100대 프로그램중 29개(25대 프로그램중 18개)가 수퍼보울 중계였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38위가 최고였고 야구경기는 56위가 고작이다. NFL중계 시청인구는 한주일 평균 1억명에 달한다.
그쯤은 약과다. 구장을 쫓아 다니는 사람들은 ‘팬’을 뛰어넘어 ‘광’의 범주에 들어간다. 몇년전 UCLA와 위스컨신대학이 로즈보울에서 맞붙었을 때 패사디나의 로즈보울 구장에 UCLA 응원단보다 위스컨신 응원단이 더 많았다. UCLA팬에 배정된 티켓을 매디슨에서부터 차를 몰고 LA까지 불원천리 몰려온 위스컨신팬들이 웃돈을 주고 사들였기 때문이다. 당시 매디슨 인구의 절반이 LA에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방 소도시에 가면 대학풋볼 풋볼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밤샘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고교풋볼 경기의 열기도 대단하다. 얼마전 히트한 영화 ‘타이턴스를 기억하라’가 바로 고교풋볼을 소재로한 것이었다.
스포츠 상품 판매에서도 NFL은 연매출액 27억달러로 최고다. 스포츠리그중 최초로 지난95년 선보인 NFL 웹사이트에는 지난9월 한달 방문자가 650만명으로 같은기간 페넌트레이스 막판열기로 뜨거웠던 메이저리그 웹사이트 방문자를 훨씬 상회했다. 도박에 걸리는 판돈도 풋볼이 가장 많다. 지난번 34회 수퍼보울때는 라스베가스에서 합법적으로 걸린 판돈만 7500만달러로 사상 최고였다.
미국내에서도 풋볼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 텍사스다. 텍사스에서는 아들을 하나도 못낳으면 큰일난다. 집안에서 풋볼선수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들을 라인백커로 키울지 와이드리시버로 키울지를 놓고 부부간에 다툰다. 고교풋볼 선수로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꿈을 접은 버드 핀레이슨이 쓴 자서전 ‘머스탱 컨추리’를 읽으면 텍산들의 풋볼열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핀레이슨의 아버지는 아내가 진통을 시작한 분만실 밖에서 풋볼 티켓을 들고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아내가 아기를 낳자마자 한번 안아주는둥 마는둥 하고는 풋볼구장으로 달려갔다. 위로 딸 둘을 낳은 뒤 풋볼선수로 키울 첫 아들을 낳았다는 경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클랜드와 세인트루이스로 각각 빼앗긴 레이더스와 램스가 올시즌 나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도 아쉬움을 느끼지 못하는 앤젤리노들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기야 올 NFL 정규시즌 최고성적을 거둔 타이턴스도 휴스턴 사람들이 멤피스에 빼앗긴 팀이지만… 그래도 휴스턴 사람들은 LA와의 경쟁에서 이겨 신생팀을 확보했으니 텍산의 체면유지에는 성공한 셈이다.
사족 하나 붙이자. 텍사스에 있는 대학으로는 아들을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 풋볼에 빠져 학업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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