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애팔래치아의 천사’라고 부른다.
76세의 랠프 바이팅은 애팔래치아 산자락의 3개 타운을 교구로 삼고 있는 천주교 신부다. 바이팅 신부는 또 비영리 자선단체인 ‘크리스천 애팔래치안 프로젝트(CAP)’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CAP는 연간예산으로 7,500만달러를 집행하는 거대한 자선단체로 발전했다.
이 단체는 성인교육, 직업훈련, 주택수리, 응급구조, 보건지원, 아동발달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총 70여 가지의 각종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CAP 예산의 73%는 건축자재를 포함한 각종 구호활동 재료비로 투입되었다.
"바이팅 신부는 다른 어느 사람보다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목회하는 감리교 밀턴 바트램 목사의 말이다.
바트램 목사는 "가톨릭 신자들은 다 지옥에 간다"고 배우며 성장한 골수 반가톨릭주의자였다.
캔터키주의 애팔래치아 지역은 개신교의 침례교 교세가 압도적으로 강한 곳이다.
바이팅 신부가 50년전 이곳에 부임했을 때, 대부분의 지역민들도 바트램 목사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초기에는 욕설도 듣고 토마토 세례도 받고, 심지어 체포된 적도 있었다"
바이팅 신부는 어려웠던 날들을 회상한다.
한 번은 젊은이 한 명이 손목에 쇠사슬을 감고 빙빙 돌리며 그를 위협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바이팅 신부가 "예수 이름으로 말하노니 그 쇠사슬을 내려 놓으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그 젊은이가 쇠사슬을 내려 놓는 것이었다.
여하튼 지역민들의 반가톨릭 정서는 광범위하고도 뿌리가 깊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노상설교를 하기 위해 인근의 주택 소유주에게 전원사용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에, 바이킹 신부가 "내가 당신에게 예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 달라고 하면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계속해서 바이팅 신부는 "그렇다면, 예수 이름으로 당신 전원에 마이크를 연결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는 마지 못해 응하면서 "만일, 설교도중 가톨릭 이야기가 한 마디만 나오면, 즉각 전원을 끊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다. 그날, 남자는 바이팅 신부의 설교를 끝까지 경청한 후,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는 자기 집의 전원을 평생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바이팅 신부는 주민들의 냉대에 주저않기 보다는 이곳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겠다고 다짐했다.
이 지역은 가톨릭 불모지였던 관계로 처음에는 별도의 성당건물이 없었다. 주교가 그를 파송하면서 예배처소로 지정한 곳은 허름한 콜로니얼 주택이었다.
그는 첫 미사에 모인 몇몇 신도들의 잡담을 통해서, 주민들이 가난에 찌들어 있음을 대번에 간파했다. 나중에 그는 교인들을 심방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가난이 자신의 짐작보다 훨씬 더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캔터키주 뉴포트로 가서 음식물과 옷가지를 비롯한 구호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고향사람들은 상황을 전해 듣고, 바이팅 신부의 취지에 적극 협력했다. 그는 형편닿는 대로 트럭에 구호품을 날라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때부터 "바이팅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자"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바이팅 신부는 그 자신 가난을 겪으면서 자란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음씨 착한 목수였다. 그는 11형제의 장남으로서 대공황기의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는 성장기의 어려움을 통해 "도전의 시기에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터득했노라고 말한다.
바이팅 신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통해서 박애정신을 배웠다.
한 번은 이모가 야구글러브를 사라고 5달러를 준 적이 있었다. 소년 바이팅은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그 돈을 엄마가 동생을 분만한 병원에 기부했다.
"그 돈은 내 일생에서 가장 값지게 사용한 5달러였다"
그는 회고한다.
바이팅 신부의 아버지는 또 홍수로 이재민들이 생기면, 바이팅을 데리고 다니며 무료로 주택을 수리해 주었다.
한 번은 할아버지와 함께 파손된 교회 강대상 뒷부분을 수리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곳까지 신경쓸 필요가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벌써 나도 보았고 너도 보았고 하나님도 보신다"라고 조용히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바이팅 신부는 1957년부터 불우아동을 위한 캠프를 오픈했다.
2주 기간으로 오픈한 첫해 캠프에서는 수영과 양궁, 소프트볼 같은 활동들을 실시했다. 바이팅 신부와 그의 조력자들은 다음 단계로서 아이들의 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바이팅 신부는 주민들의 필요사항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이 무엇이든 충족시키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처음에는 주택수리와 병자들을 위한 심방부터 시작했다. 나중에는, CAP를 통해서 목장과 소를 사들이고, 정미소를 운영하고, 목제소, 그린하우스, 그리고 화환제작 비즈니스까지 진출했다.
CAP는 이들 비즈니스를 사들여 키운 다음,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저가로 판매하는 일을 계속했다. 구입자금이 필요한 구매자들에게는 무이자 대출까지 해주었다.
바이팅 신부는 CAP의 기본정신에 대해 "이 모든 활동들의 기본바탕에는 사람들을 자유케 하려는 예수님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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