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스닥 침체로 2만영명 실직, 스톡옵션은 휴지조각
서울의 테헤란로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벨리에도 금년들어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인터넷 산업의 거품이 걷히면서 관련회사들의 주가가 곤두박질한 까닭이다.
세스 바움은 UCLA에서 MBA를 취득한 후, 작년에 닷컴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는 유망한 애완동물 전자상거래 회사의 마케팅 부장으로 취직했다. 연봉 8만 5,000달러에 주당 20센트를 배당받는 5만달러짜리 스톡옵션을 받는 조건이었다.
시작은 매우 좋았다.
바움과 그의 동료들은 주당 100시간씩 일하면서 웹사이트를 디자인 하는 한편, 마케팅 협상들을 성사시켜 나갔다. 그런데, 얼마후 찬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애완동물 전자상거래 서비스간 가격경쟁에 불이 붙었고, 설상가상으로 이들 회사들의 주가도 곤두박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서, 바움이 속했던 Petstore.com은 1,000만달러의 투자손실을 보고, 아마존 닷컴이 지원하는 Pets.com에게 매각되었다. 바움의 스톡옵션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이로써 단시일내 떼돈을 벌려던 그의 꿈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는 최근, 한 인터넷 자문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요즘, 실리콘 벨리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는 바움처럼 일확천금을 노리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하이테크 종사자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올들어 발생한 하이테크 주가폭락으로 스톡옵션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그들의 꿈은 무참히 부서지고 말았다. 지난 수년간, 나스닥에 상장해 떼돈들을 번 경우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11개월간 실리콘 벨리와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닷컴 종사자 중 2만 2,000여명이 직장을 잃었다.
얼어붙은 나스닥 시장의 침체로 인해, 올해로 계획됐던 209건의 기업 상장은 아예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닷컴 종사자들이 주택이나 고급차 구입계획을 포기하고, 구직을 위해 이력서를 새로 꾸미고 있다.
전 휴렛 패커드의 중역 프랭크 소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상황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초기의 계획을 수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현재, 벤처기업 상대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닷컴 기업보다는 컴퓨터 및 반도체 주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런 발빠른 행보 덕분에, 올들어 대부분의 투자회사들의 자산이 크게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사자산은 50%나 급증했다. 하지만, 그 역시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집과 고급차 구입 및 정원보수 계획을 유보했다.
최근, 실리콘 벨리의 주름살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실리콘 벨리내 하이테크 관련 300여개 회사의 종업원들 중 3분의 2가 고연봉 대신 스톡옵션을 선택했는데, 그 중 70% 이상이 주가하락으로 무용지물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톡옵션의 타격은 또, 실리콘 벨리의 부동산 가격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닷컴 종사자들이 얇아진 주머지 사정을 감안, 주택구입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년간, 이 지역의 부동산 구입건수는 8% 하락했고, 주택가격 자체도 떨어졌다. 실리콘 벨리의 부동산 가격하락현상은 80년대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불과 1년전만 해도, 닷컴종사자들은 스톡옵션의 수익을 예상하고 돈을 물쓰듯 했었다.
그만큼 인터넷 관련주가들이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올해는 손에 현금을 쥐지 않는 한, 소비를 자제하는 짠돌이가 되고 있다.
이들의 투자패턴도 일년 전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졌다.
작년만 해도, 인터넷 관련주식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일반적이었고, 한번 투자한 돈을 빼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투자대상을 물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채권과 머니마켓은 물론, 부동산 같은 보다 안전한 투자분야들이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요즘 직업소개 창구들은 이력서를 지참한 첨단 구직자들로 북적댄다.
최근, 산호세 컨벤션 센터에 마련된 직업소개 코너에도 수많은 구직자들이 몰렸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인터넷 관련기업에서 최근 1년새 해고된 전문인력이었다.
실리콘 벨리의 구직난은 지난 80년대 말 이후 처음 있는 현상이다.
그 때는 컴퓨터 판매저조와 일본회사들과의 반도체 경쟁이 심화되면서 많은 인력이 해고됐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올해는 그 때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진단한다.
나스닥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리콘 벨리의 경제는 불경기를 능히 견딜만큼 기초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실리콘 벨리내 입주한 7,000여 첨단기업들의 연매출이 1,000억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을 그 증거로 든다.
또, 캘리포니아 노동국에 따르면, 100만여 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실리콘 기업들의 실업율 역시 사상최저 수준인 1.7%를 기록중이다.
관점에 따라 현황분석은 다를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실리콘 밸리가 과거같은 호황일변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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