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칩 발명한 올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10일 저녁, 스톡홀름에서는 거짓말같은 일이 벌어진다. 수학시험 성적이 모자라 MIT를 낙방하고 정식 과학 공부도 하지 못한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것이다. 사실 잭 세인트 클레어 킬비는 물리학자도 아니지만 스웨덴왕립과학원은 그런 사소한 일은 기꺼이 무시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킬비야말로 지난 50년간 이 세상에 나온 발명품중 가장 가치있는 것인 ‘반도체 집적 회로’, 다시 말해 ‘마이크로칩’을 발명한 사람으로 그의 아이디어 덕분에 지구상에는 비로소 정보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요즘 쓰이는 모든 디지털 기기의 심장에 자리잡은 작은 실리콘 칩은 원유 이후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이것 없이 PC도, 셀폰도, 우주개발도, 인터넷도, 심장박동기도, 플레이스테이션도 존재할 수 없었다. 온 세상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전구나 전화, 자동차만큼이나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지만 그것을 발명한 사람은 에디슨이나 벨, 포드만큼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노벨상 덕분에 이제 나이가 77세나 되어서 처음으로 업적에 걸맞는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오늘날 초소형전자제품은 전세계적으로 3천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칩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지만 1958년 여름에 키가 크고 말수가 적은 캔자스 출신 청년이 댈라스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사 본부 반도체 연구실에 들어 올 때까지 그런 것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당시 34세로 처음 직장다운 직장을 잡아 기뻐하던 킬비는 캔자스주 그레이트 벤드 출생으로 아버지가 지역 전기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자기도 당연히 전기엔지니어가 되려고 했다. 엔지니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MIT를 목표로 SAT도 없었던 1941년에 기차를 타고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로 시험을 치러갔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무려 60년이 지났고 자기 이름으로 된 특허가 60개나 되며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자기 사진이 에디슨 바로 옆에 걸려있고 전세계의 엔지니어에게 주는 상이란 상은 거의 모두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당시 실패의 아픈 기억은 킬비에게 새롭다. 자기가 틀린 대수 문제까지 기억하는 그가 받은 수학 점수는 497점. 500점이 넘어야 합격할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온 몇 달 후에 세계 제2차 대전이 시작됐고 입대한 킬비가 배속된 곳은 인도 북동부 차농장에 자리잡은 육군 무전기 수리센터였다. 종전후 ‘GI 빌’로 일리노이대학에 진학한 그는 전기공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3명의 미국인들이 최초의 중요한 반도체장치인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1947년 무렵 일리노이대학에는 퀀텀 이론이나 반도체 회로에 대한 강의가 개설됐었지만 물리학 전공이 아니면 들을 수 없었다.
졸업 후 조그만 전자부품 회사에 취직했다 몇 년후에 보낸 지원서가 채택돼 자리를 옮긴 1958년에 이미 대기업이었던 TI의 엔지니어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전자장치에 사용할 회로를 디자인하고 있었지만 전세계 커뮤니케이션 네트웍을 돌릴 초고속 컴퓨터라던가 달까지 갈 로케트 같은 야심찬 하이텍 제품들은 종이 위에만 존재했지 만들 능력은 아직 없었다.
전자회로 만드는 일은 문장을 만드는 일과 같아서 단어들을 배열해 뜻이 통하게 하는 것처럼 기본 부품들을 어떻게 줄로 연결하여 특정 목적에 알맞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하나만 연결이 잘못돼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데 1950년대쯤에 이미 회로 디자인은 너무 복잡해져서 전세계의 엔지니어들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 잭 킬비에게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강점이 하나 있었다. 즉 그 분야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반도체 연구소에 가만히 앉아있던 킬비에게 대담한 해결책이 떠올랐다. 너무 많아져 골치아픈 와이어를 아예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회로의 모든 기본 부품들을 동일 물질, 즉 실리콘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모든 부품이 같은 물질이라면 따로 만들지 말고 하나의 실리콘 칩에 적절히 배치하여 새기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이 생각을 실험노트에 갈겨 쓴 그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엔지니어답게 상사에게 자기의 ‘집적회로’ 테스트 모델을 만들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봐 동의를 받았다. 1958년 9월 12일, TI의 높은 사람들까지 모두 반도체연구실에 모여 잭 킬비가 만든 이 새 칩이 과연 작동하는지를 지켜봤고 그 날로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보다 6개월이 채 못되어 또 다른 미국인 로버트 노이스도 같은 해결방법을 찾아냈고 그의 방법이 킬비의 모델보다 제조하기에는 더 쉬운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킬비와 노이스는 ‘마이크로칩의 공동 발명가’로 기술됐다. 흔쾌히 그 명칭을 받아들인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의 공헌을 치켜세웠다. 전 세계 PC에 쓰이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거의 모두 만드는 인텔을 공
동창립한 노이스가 살았으면 물론 같이 상을 받겠지만 그는 1990년에 타계했고 노벨상은 죽은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잭 킬비는 큰 돈은 벌지 못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자기는 엔지니어, 문제 해결사로 우주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계속 풀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사실 그는 칩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최초의 중요 소비제품중 하나인 휴대용 계산기도 발명했고 지난 10년동안은 값싸고 성능좋은 태양열 전지 발명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댈라스에서는 요즘에야 ‘텍사스의 에디슨’으로 통하며 제법 저명 인사가 됐지만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잭 킬비에 관해 전혀 몰랐다. 노벨상 덕분에 세계인의 일상생활을 바꿔놓은 이 진정한 국가적 영웅의 이름이 알려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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