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노래는 대중들에게 직접적으로 어필하는 힘을 지녀 오래 전부터 정치가들은 이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또 탄압해 왔다.
레닌이 공산혁명 후 “모든 예술 중에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다”라고 말한 것도 이 예술매체가 민중의 마음과 가슴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중의 가슴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화나 음악은 다른 한편으로 권력에 대한 대중의 저항 수단으로 쓰여지면서 독재자들은 이것들을 검열하고 금지해 왔다. 비틀즈의 반전 노래들인 ‘레블루션’과 ‘파워 투 더 피플’ 그리고 조운 바에즈 등 많은 포크싱어들의 애창곡인 ‘블로잉 인 더 윈드’등이 모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금지 당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베트남전 영화 ‘현대 묵시록’이 수십년간 한국서 상영 금지됐던 것도 마찬가지 까닭에서다.
머리가 길다고 파출소에서 강제로 머리를 깎아주고 미니스커트 길이가 짧다고 잡아가면서 국민을 지독히도 못살게 굴던 박정희 시절에는 방송윤리위라는 게 생겨 온갖 이유를 붙여서 수백곡의 국내외 노래들을 금지시켰었다.
나는 당시 이들이 컨트리 싱어 자니 캐쉬가 부른 ‘링 오브 파이어’를 내용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금지시킨 것을 보고 그 위원들이 참으로 무식하고 한심한 자들이로구나 하고 코방귀를 뀐 적이 있다.
지금 웨스턴과 베벌리 코너에서 ‘초이스 레코드’를 운영하는 명D.J. 최동욱씨는 “당시는 제대로 내용도 모르고 노래 제목과 가사가 맘에 안 들면 닥치는 대로 금지시켰었다”고 회상한다. 최씨도 위원회의 일원이었는데 그는 동료위원들이 금지시킨 노래들의 해금에 앞장서 애니멀즈의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창녀촌 이야기), 앤 마그렛의 ‘슬로우리’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키스 미 퀵’(선정적)과 팜 존스의 ‘왓츠 뉴 푸시 캣’(제목) 등이 최씨가 해금시킨 곡들.
최씨는 “조운 바에즈가 노래한 ‘도나 도나’는 공화당 로고인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면서 머리 위에 나는 제비를 보고 자유를 그리워한다는 내용 때문에 금지됐었다”며 웃는다.
한국 가수로 위원회의 밥이 됐던 가수는 김민기와 신중현.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친구’는 내용이 반정부적이라는 까닭으로 금지됐었고 신중현의 ‘미인’은 그가 대통령 찬가를 작곡해 달라는 제의를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가 최근 지난 18년간 상영 금지해 온 ‘위험한 삶의 해’(The Year of Living Dangerously)를 자카르타 국제영화제용 단 1회 해금해 화제가 됐었다.
호주의 피터 위어가 감독하고 멜 깁슨과 시고니 위버가 주연한 이 영화는 1965년 수카르노 집권 말기의 인도네시아의 빈곤과 질병, 기아와 국민저항 그리고 수카르노의 국정에 대한 무감과 그를 무너뜨린 수하르토의 무자비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현지에 파견된 호주 라디오 방송기자와 자카르타 주재 영국 대사관 직원간의 불타는 사랑을 삽입한 로맨틱 정치 드라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이 영화가 나라의 인상을 너무 어둡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상영금지 조치를 풀지 않고 있다. 영화제를 위한 해금도 단 1회 상영이라는 조건을 붙여 상영 불과 7시간 전에 단행했다.
그런데 현 인도네시아 정국이 1965년 당시와 비슷해 이 영화가 앞으로도 당분간 해금될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고 이같은 뉴스를 전한 LA타임스는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지금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압두라만과 1998년 집권 30년만에 권좌에서 쫓겨난 독재자 수하르토의 지지자들 간의 세력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검열위원회 수지안토 부위원장은 “현 상황에서 이 영화를 개봉했을 경우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해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국민들은 자기들이 보는 대로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상영금지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한 영화 제작자는 “영화는 온통 미치광이 수카르노와 빈곤에 관한 것으로 수하르토가 영화 상영을 허락했다면 오히려 자기 이미지 고양에 득이 됐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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