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끌었던 웬호 리 스파이소동 영향으로 나는 두가지 정서 갈등속에 지치게 됐다.
그가 반공산주의 타이완 출신의 중국인이고 나는 반공 한국 출신의 코리언 아메리칸이지만 메인스트림 미국의 시각으로는 나 역시 웬호 리 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의아해질 수 밖에 없다.
웬호 리 사건은 황색인이 1850년대 골드러시에 캘리포니아라는 적대적 신세계의 험난한 해안에 당도한 이후 미 언론과 대중이 느껴온 황색 위험 공포의 주기적 물결, 그 최신판 소동일 따름이다.
또 다른 고통스런 질문은: 웬호 리 박사여 여태껏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이다
이 핵과학자는 자신의 직업과 사업에 성공한 미국산 테크노 중국인의 새로운 계층을 대표하고 있다. 그는 혼란한 도심지의 다른 아시안 아메리카에서 새 이민자와 난민의 무리들이 허덕이는 것과는 멀리 떨어져있다. 유태인, 흑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동 농장노동자였으며 작가인 칼로스 불로산은 냉정한 사회에서 아시안 이민자가 되는 운명에 대해 그의 저서 “미국은 그 가슴에 있다”에서 깊이 갈파했다.
“내가 미국에서 망명자의 한 사람임을 가슴 깊숙이 인식한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즉 내가 저지르지 않았던 범죄로부터 멀리 도망가는 범죄자로 느껴지며 그 범죄란 바로 내가 필리피노라는 사실이다.”
쓰라린 추수기의 영원한 상징 인물인 불산은 동족 마농이 겪었던 일들에관해 말했다. 대공황기에 언론과 노동조합, 진보적인 백인 정치인들의 삼위일체적 학살이나 다름없는 공격하에 필리피노 농장노동자들은 평생 결혼이 금지되었었다.
필리피노들이 당한 것은 그 전에 있었던 맹렬한 반중국인 선도, 폭력, 배척의 후속편에 불과하며 그것은 또한 모든 일본인들을 황폐한 수용소로 유폐시키는 것으로 이어졌었다.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은 허스트와 매클래치 체인이 이끄는 캘리포니아 언론이 아시안 이민자들 표적으로 공격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좁혀가는 퍼시픽림의 시대이고, 세계적인 인터넷 시대에 그런 수난의 과거는 아주 먼 옛날 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연약해보이는 타이완태생 중국인이 지난 3월 FBI 요원들에게 이끌려 손목에 수갑채여 감옥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불로산의 그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 다시 들려왔다. 그것은 웬호 리가 공산 중국 스파이 주요 혐의자라며 고상하고 진보적인 뉴욕타임스가 9개월간이나 언론 폭력을 휘둘렀던 다음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뉴욕타임스는 웬호 리의 반역으로 인해 미국이 핵 대학살의 위험에 놓이게 됐다며 자사의 칼럼니스트가 경고함으로써 의도적으로 그의 인격을 파괴하고 전국적인 소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얼마 지난 후 격분한 담당판사가 행정부가 전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며 질타라자, 클린턴대통령은 법무부와 동력부의 웬호 리 처리가 “좀 문제 있었다”고 밝혔다. 그것이 전부였다.
언제나 수동적이며 참을성있고 공손한 아시안 아메리칸은 의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내면화된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어 그 고정관념을 다시 강화하는 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황색위협’ 게임이 재발할 것임을 알고 있다.
죄없는 사람을 재판정에 세워 비밀경찰이 하듯 다루는 것을 봐도 개의치 않는다. 이 나라와 언론은 자기 훈계라는 예식을 치룬다음 새 천년에 들어서도 구태의연한 아시안 질타를 행하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정상 상태로 돌아간다.
나 자신 놀랍게도 내가 저지르지 않았던 범죄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내가 백인 언론에서 저널리스트로 거의 반세기동안 일했지만 웬호 리의 곤경을 백인세계의 이방인 입장에서 보게될 만큼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불로산은 식민지섬 필리핀에서 온 교육받지 못한 농장 노동자인 반면 웬호 리는 전문직으로 성공한 댓가를 누리고 있는 전형적 아시안 아메리칸 엘리트다.
이처럼 확연하고 대조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이방인 존재로 간주하고 있는 오리엔탈, 후에는 아시안 아메리칸이라고 불리우는 인종분류에 속해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리 되었을까?
캘리포니아와 서부 주에서 아시안들이 겪은 험난한 여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과거 여러차례의 경제 곤란, 아시안 국가들과의 무역전쟁, 지난 반세기동안 2차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등 미국이 참전했던 전쟁으로 인해 미국 문화속에 황색 위협의 병적 공포가 깊이 뿌리내린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좋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아메리칸들에게는 진정으로 수월하지 않는 시기다. 아시안 아메리칸들에게 있어 한가지 영구적인 아이러니는 미국에 아무리 오래 살았고 성취를 위해 피와 땀을 아무리 많이 흘렸더라도 그들은 이 땅에서 귀찮은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내가 웬호 리인가? 이것은 새천년 아시안 아메리칸의 곤경이며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챕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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