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와 ‘인랑(人狼)’ 을 보면 일본의 코미디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왜 강한지를 알 수 있다. 기발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코미디는 지극히 사소하다. 애니메이션 역시 화려한 테크닉이나 규모를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섬세하고 치밀하게 손질을 한다.
그것이 모험을 가능하게 한다. 빤한 주제를 새삼스럽고 더 소중하게 느끼도록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R드라마 생방송 소동 웃음속에 인생이 담겨
때로는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NG 장면’ 이다. 성룡은 그래서 영화 끝에 항상 양념처럼 촬영 도중 실수한 모습을 따로 넣어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2’ 까지 일부러 ‘NG장면’ 을 만들어 넣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NG가 없다. 인생은 생방송이니까. 맘에 안든다고, 잘못 시작했다고 중단할 수도 없다. 어떻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끌고가야 한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감독 미타니 코기)는 바로 인생 같은 라디오 드라마 생방송에 관한 소동이다. TV와 멀티미디어 시대에 대부분 귀 기울이지 않는 존재가 돼 버렸고, 더구나 극본과 달리 제멋대로 고쳐진 라디오 드라마이지만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트럭 기사 한 사람이 열심히 듣고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공모에 당선된 신인작가(스즈키 교카)의 드라마 스페셜 ‘운명의 여인’은 여주인공 역을 맡은 왕년의 스타 노리코가 방송 시작 한시간 전에 극중 이름을 메어리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면서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스타를 기용해야 광고주를 만족시킬 수 있는 프로듀서는 이에 굴복하면서 영어식 이름에 무대까지 시카고로 바뀐다. ‘미스터 맥도날드’는 상대 역을 맡은 남자 성우 (호소카와 도시유키)가 햄버거 포장지를 보고 즉석에서 생각해낸 것이다.
예정에 없던 기관총 소리, 댐 붕괴의 효과음을 내기 위해 후배 PD는 기계에 밀려 이제는 경비원으로 근무중인 왕년의 효과담당을 찾아 허둥대고, 작가는 만신창이가 돼 가는 자신의 작품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그의 남편은 드라마가 아내의 감춰진 사랑의 고백이 아닌가 의심하고, 디렉터는 제멋대로 대본을 고쳐 맥도날드를 우주비행사로 만든다.
인물들은 희화적이고 중구난방 같지만 영화는 이런 계산된 소동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너무나 재치있게 풀어 놓는다.
방송사의 생리, 인간적인 것에 대한 향수, 작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꼬집고, 자극하고, 소중히 한다. 처음 참을 수 없는 호들갑에 어이없어 하다가도 어느새 웃음에 빠지고, 재미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본 코미디의 ‘힘’ 이다. 1998년 일본 아카데미 12개 부문을 휩쓸었다.
<인랑>
애니메이션에서 ‘판타지(환상)’ 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유치한 만화적 디테일만 앙상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인랑’ (감독 오키우라 히로유키)은 다르다.
섬뜩하리만치 생생한 이야기와 메시지와 충격이 있다. 실사영화를 보는 듯한, 실사영화로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환상’을 걷어낸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은 탄탄하고 현실적이며 긴장감이 팽팽한 이야기 구조 때문이다. ‘인랑’ 은 지난해 만들어졌으면서도 그 흔한 컴퓨터 그래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100% 셀(종이로 그린)애니메이션이다. 약간은 어둡고 정적인 그림이 1960년대 음습한 일본사회, 실업자의 과격시위가 도시를 우울하게 했던 시대를 더욱 현실적인 느낌의 세계로 끌어 들인다.
시위대에게 사제 폭탄을 나르다 진압대에 적발돼 자폭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참담한 현실로 느끼게 한다.
’인랑’ 은 ‘섹트’ 라고 불리는 과격 도시게릴라를 진압하기 위해 수도경이 만든 특기대(케르베로스)를 제거하는 자치경찰의 인간늑대를 말한다.
자치경찰과 수도경의 세력암투가 복잡하게 얽히지만 영화는 1960년대 시대상황을 날카롭게 응시하며 인랑인 후세와 섹트 산하 ‘빨간 두건단’ 일원인 아름다운 여성 케이의 비극적 운명을 묘사한다. 후세는 케이를 자폭한 소녀의 언니로 알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거세당한 인간의 감성이 살아나면 날수록 후세가 마지막으로 치뤄야할 고통이 크다는 것이 이 영화의 흐름이다.
여자는 남자의 외로움을 보며 희망을 느끼고, 남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탈을 쓴 늑대로 살아가야 하는 남자는 비밀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처참하게 죽이고 울부짖는다. 둘은 영화의 흐름에 맞춰 여자가 들려주는 그림 형제 동화의 소녀를 잡아먹는 그 늑대와 소녀의 운명이었다.
마이니치 신문의 평처럼 "실사영화로는 재현 불가능한 시대를 무대로, 또 하나의 전후사를 대담하고도 모험적으로 그려낸 하나의 사건" 이다.
더구나 SF애니메이션의 걸작인 ‘공각기동대’ 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가 기획하고 원작을 쓰고 각본까지 맡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포르투갈국제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과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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