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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세의 의족장애인 휘태커, 에베레스트 정복
톰 휘태커는 1998년 해발 2만 9,000피트 높이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그가 에베레스트에 오른 이유는 좀 특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나이 50세였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것은 휘태커가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낀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휘태커는 자신의 에베레스트 등정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했다.
"나에게 있어서 에베레스트 정복은 무엇보다도 인생의 거대한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했다. 내 앞에 닥친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다 보니, 에베레스트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원래, 휘태커는 영국출신이지만 모험스포츠의 꿈을 펼쳐보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왔다.
미국에 온 후, 그는 알래스카의 맥킨리 산과 엘 캐피탄을 등정했고, 카약을 타고 그랜드캐년 계곡의 급류를 완주했다. 또, 캐나다 로키산맥의 얼음폭포를 오르기도 했다.
열정적으로 모험을 즐기던 휘태커가 아이다호주의 하이웨이를 주행하던 중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20년 전의 일.
휘태커는 이 사고로 그의 두 발 및 오른쪽 무릎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당했다. 결국, 그는 오른쪽 발을 절단해야 했다.
그러나, 휘태커는 거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재창조해야 한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성취하겠다. 나는 뭔가 큰 일을 하려고 미국에 온 사람이다"
그는 구두수선 가게를 새로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나무박스를 깎아 부목을 만든 다음, 탄력밴드로 다리에 붙이고 살았다.
그 어려웠던 시절 휘태커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자신의 꿈을 불신하는 주변의 냉소적 시각이었다. 심지어, 모험스포츠를 계속하겠다는 휘태커가 정상이 아니라고 수근거리는 사람마저 있었다.
그는 점차로 야외활동의 영역을 넓혀갔다.
먼저, 아이다호의 스네이크 강을 카야킹 했고, 돈을 모아 성능좋은 의족을 구입한 후부터는 배낭을 메고 등산을 재개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했고 ‘장애자 옥외활동 협력그룹’이라는 단체도 창설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느낀 휘태커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1차 목표는 요세미티 계곡의 ‘아우터 리미츠’ 도전이었다. 140번 하이웨이 근처에 있는 이 등산코스는 험하기로 소문난 코스다. 이번에도 친구들은 터무니없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휘태커는 결국 정상에 올라서고 말았다. 이 등정은 휘태커가 ‘할 수 있다’는 강철같은 의지로써 주위의 모든 의심을 떨쳐낸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제, 그의 다음 목표는 에베레스트 등정이었다.
에베레스트는 지난 100년간 1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최고봉이다. 중도에서 하산한 사람들도 수 없이 많았다.
등반가들은 시속 100마일의 엄청난 폭풍우, 영하 140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체감온도, 희박한 산소 등 최악의 자연조건과 싸워야 한다.
휘태커는 1989년,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길에 나섰으나, 정상을 앞두고 2만 1,500피트 지점에서 폭풍우를 만나 중도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하산길에 그는 조난당한 다른 원정대 대원 5명을 구조했다.
1995년, 휘태커는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정상을 불과 1,500피트 남겨둔 지점에서 폭설과 눈사태에 밀려 퇴각했다,.
그러나, 그는 재도전을 다짐했다.
이번에는 등산팀의 멤버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등산대를 조직하고 대장이 되기로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원정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약 30만달러의 예산이 필요했다. 그는 기업 스폰서들을 찾아다녔으나 하나같이 퇴짜를 맞고 말았다.
1996년에는 에베레스트에서 6명이 사망하는 등산사고가 있었다.
기업들은 장애자가 이끄는 등정팀의 후원자로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가 날 경우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휘태커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모금활동을 계속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몇몇 기업들의 공동후원하에 원정대가 구성되었다.
1998년 5월, 휘태커는 원정대를 인솔하고 세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다.
1차 등정은 실패로 끝났다. 원정대는 시속 100마일의 폭풍우에 휘말려 텐트와 장비를 잃고 퇴각했다. 휘태커는 허파에 물이 차는 폐수종 현상을 보였다. 의사는 상태가 크게 악화될 수도 있으니, 등산을 포기하라고 강력히 종용했다. 그러나 휘태커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행히, 폐수종 증상이 진정되었고, 그는 2차 등정길에 나섰다. 1998년 5월 27일 오전, 마침내 휘태커는 꿈에 그리던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섰다. 세계최초로 의족을 한 장애인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요즘 휘태커는 더 이상 등산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기업체들의 동기부여 강사로 활동하면서,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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