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민권운동가 케리 케네디 쿠오모는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 및 상원의원의 딸이다. 또, 그녀의 남편은 전 뉴욕 주지사 마리오 쿠오모의 아들이자, 현 연방 주택 및 도시개발 장관으로 재직중인 앤드루 쿠오모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인권운동가가 될 숙명을 안고 성장했다.
백부인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이어 아버지 로버트 케네디마저 일찌감치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의 피속에는 인권운동 및 총기반대운동의 열정이 흐르고 있다.
그녀는 어린 딸들의 놀이시간에도 인권운동사상을 주입시키려 노력한다.
최근, 그녀의 집 응접실에서는 어린 세 딸이 동화놀이를 하고 있었다. 딸들은 한 노인과 정원에 관한 이야기놀이를 하다말고, 한순간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엄마가 무슨 중요한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몸속에 아주 나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단다. 나쁜 유전자들이 서로 물어뜯고 할퀴는 바람에,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지. 그 사람의 이름이 뭔지 알겠니"
이 질문에 다섯 살난 딸 마리아가 ‘피노체트!’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대부분의 유치원생들은 칠레의 유명한 독재자 피노체트보다는 피노키오라는 이름에 더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케네디 쿠오모의 딸들은 다르다. 그녀의 딸들은 식탁에서 인권운동에 관한 동화를 들으며 성장해 왔다. 엄마가 로버트 케네디의 딸이자 마리오 쿠오모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일도 아니다.
그녀는 최근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말하라’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51명의 인권운동가들을 집중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또, 퓰리처상 수상 사진작가 에디 애덤스가 찍은 인권운동가들의 사진을 담고 있다. 케네디 쿠오모는 이 책이 전세계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케네디 쿠오모는 지난 2년간,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전세계 40여개국을 방문했다.
그중에는 데스몬드 투투주교, 달라이 라마같은 유명인사도 있고, 가나의 민권운동가 쥴리아나 덕베지같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덕베지는 어린시절 노예로 팔렸다가, 현재는 가나의 노예관습 폐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이다.
케네디 쿠오모는 어려서부터 영웅들은 순교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네 살때 큰아버지인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당했고, 5년후인 1968년에는 아빠마저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케네디 쿠오모는 아직도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신조를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아빠는 각 개인에게 사회의 변화를 이끌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신념을 물려주었다. 이 책에 수록된 사람들은 그걸 보여준 사람들이다"
그녀는 말한다.
케네디 쿠오모는 아빠로부터 공공봉사 및 종교적 신앙도 물려받았다.
그녀의 형제자매 11명은 모두 철저한 신앙적 가르침 속에서 성장했다. 케네디 쿠오모가 모든 가정적 불행을 꿋꿋하게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그녀의 신앙이었다.
그녀의 형제 중 오빠 데이빗은 1984년 28세의 나이에 약물과용으로 사망했고, 마이클은 1997년 39세의 나이에 스키장 사고로 사망했다.
"가정적 불행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신앙과 남은 가족들은 나에게 큰 힘의 원천이 되었다"
그녀는 술회한다.
케네디 쿠오모는 어려서부터 홀로서는 법을 배웠다.
자신보다 큰 오빠들과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기 몫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약자들을 위한 정의’라는 의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브라운 대학 재학중 여름학기 동안 엠네스티 인터네셔널(국제사면 위원회)에서 인턴십을 할 기회를 가졌다.
당시 그녀는 미국 이민국이 엘살바도르의 정치난민들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인권운동가가 되기로 작심한 것도 그때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그녀는 1986년 보스턴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로버트 케네디 기념 인권센터’를 만들었다.
이 센터는 전세계 인권운동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활동상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이 센터는 또, 의회와 정부를 상대로 각종 인권관련 로비를 벌여왔다.
케네디 쿠오모는 미국내 문제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100만 엄마행진’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나는 여덟 살 때 아빠를 잃었다. 당시, 우리 아빠를 암살했던 범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총기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잔인한 도구다"
케네디 쿠오모는 이렇게 역설했다.
케네디 쿠오모의 중심적 활동무대는 엠네스티 인터네셔널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33개국에서 40여건의 임무를 성공리에 수행했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자기집안의 유명세가 큰 도움이 되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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