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만 듣던 내가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미국에 와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71)을 봤을 때였다. 토마스 만의 소설이 원전인 이 영화는 예술가의 영원한 미에 대한 집념을 그린 것인데 주인공인 작곡가 구스타프 폰 아쉔바하는 말러를 모델로 했다는 설이 있다. 아쉔바하로 나온 작고한 영국 배우 더크 보가드의 모습이 말러를 많이 닮았는데 영화도 좋았지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작품 전체에 흐르던 말러의 제5번 교향곡 제4악장 아다지에토의 가녀리고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그 뒤로 말러의 음반들을 사서 듣고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연주회장을 찾으면서 나는 어느새 말러의 팬이 됐다. 내가 말러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 가늠할 길 없이 심오한 종교적이요 철학적인 음악성이 주는 압도감이다. 나는 또 그의 운명적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이런 어두운 기운이 말러 특유의 눈부신 금관합주로 부서질 때면 그야말로 승천감에 젖곤 한다. 근본적으로 염세적인 말러의 음악은 나로 하여금 영적이요 진실하고 또 아름다운 것에 대한 탐구의 욕망을 일깨워 주곤 한다.
최후의 낭만파로 시들어가던 교향곡 장르를 부활시킨 말러(1860~1911년)는 죽음에 몹시 집착했던 사람이다. 그는 음악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감과 회의를 천착하면서 아울러 믿음과 구원, 부활과 영원에 대한 열망으로써 이런 어두운 것들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결국 그의 음악은 끊임없는 삶과 죽음의 고찰이다.
말러의 교향곡들이 사후 근 반세기 동안 외면을 당했던 까닭도 그것이 우리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너무나 진실되고 또 적나라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레너드 번스타인은 말한 바 있다. 번스타인은 60년대 말러를 대중에게 접근시킨 장본인.
말러의 음악은 낭만파의 순수미의 한계를 벗어나 어렵고 과장됐고 또 너무 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9개의 교향곡(제10번은 미완성)은 짧은 게 1시간짜리 이며 멘델스존이나 베를리오즈의 음악처럼 아름다운 멜로디로만 짜여져 있지도 않다. 그보다는 마지막 희열을 찾아 고행하는 수도자의 마음을 요구하는 음악이다.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강렬하고 정열적이며 또 장엄하고 영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제2번 ‘부활’ C단조이다. 이 곡은 말러가 “마지막 한점의 숨과 한 방울의 피를 써서라도 표현할 것은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 작품으로 말러의 내면세계의 음악적 여행이다.
삶과 죽음과 정화와 부활의 이클을 그리고 있는데 1888년에 작곡을 시작해 6년 뒤에야 완성됐다. 대규모의 악기 편성과 함께 소프라노와 알토 그리고 합창이 있는 연주시간 83분짜리로 말러가 “다시는 이런 깊이와 높이에 다다를 수 없다”고 말한 작품이다.
말러는 이 곡을 짓기 전만해도 지휘자(특히 오페라)로 더 유명했는데 제2번 교향곡으로 비로소 진정한 작곡가의 생애가 시작됐다. 이 교향곡의 중간부분은 1893년 말러의 여름 휴양지인 잘츠부르크 인근 슈타인바하 암 아터제에 있는 여관의 호숫가 작은 오두막에서 작곡됐다. 이 당시 모습은 영국의 켄 러셀이 감독한 영화 ‘말러’(Mahler?74)에서 매우 생생하니 묘사돼 있다.
현들이 어둠의 다발로 엄습해 오는 제1악장은 ‘장례식’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원래 이 부분은 말러가 따로 교향시로 작곡한 것이다. 처음부터 감정적으로 강렬히 붙잡아 놓는데 이어 제2악장과 제3악장은 감미롭고 밝고 또 경쾌하고 활달하다.
제4악장에서는 알토가 ‘태초의 빛’을 영혼을 환기하듯 노래하고 제5악장은 소프라노와 알토와 합창이 종소리와 금관악기가 하늘 문을 여는 듯한 환희를 뿜어내는 가운데 궁극적 구원과 승천을 노래한다.
‘오, 고통이여, 모든 것 중에 가장 스며드는 너로부터 나는 승리했도다! 오, 죽음이여, 모든 것의 주인인 너는 이제 다스림을 받게 됐도다! 내 스스로 이겨 얻은 날개를 달고 사랑의 격렬한 몸부림 속에서 나는 위로 날아오르리, 그 누구의 눈도 여태껏 오르지 못한 빛을 향해’ 경외로우리만치 감동적이다. ‘부활’ 교향곡이 주빈 메이타의 지휘로 24~26일 뮤직센터서 연주된다. (323)85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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