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대에는 테레핀 유가 담긴 피클 항아리에 페인트 붓이 꽂혀있고 옆에는 접착제를 따뜻하게 유지시키는 기구가 놓였다. 구석의 붐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만이 침묵을 깨뜨린다. 데이먼 그레이는 바이올린 위로 몸을 굽힌채 조심스레 톱질을 한다. 칼날의 짧은 움직임으로 그는 우아한 F형 패턴을 조각한다. 바이올린의 F홀, 소리 공명 장치인 두 구멍이다.
29세인 그레이는 바이올린 제작자다. 신시내티 다운타운의 창고건물 3층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는 전문가와 학생을 위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를 수제작한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것은 지루하고 지치는 일이다. 단 한번의 잘못된 칼질, 급격한 움직임, 조그만 돌출이라도 있으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레이는 악기제작의 모든 공정에 관계하며 자신이 찾는 소리가 어떤 것인지 확고한 개념을 갖고 있다.
그의 작업은 수세기전 아마티, 스트라디바리와 구아르네리 등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출신의 거장들이 앞서 해온 오래된 예술이다. 음악과 목공예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 연주자가 현을 따라 움직이는 활에서 끝나는 작업이다.
신시내티 교향악단(CSO)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신시내티 실내악단의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브레이드는 그레이의 재능이 경이롭다고 믿는다. 브레이드는 그레이가 팔아도 전문가용으로 팔아도 될만하다고 생각했던 첫번째 바이올린을 구입하고 두 개를 더 주문했다.
브레이드는 “정말 좋은 악기는 첫날부터 소리가 좋고 점점 더 좋아진다”며 “내가 데이먼의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것은 힘과 풍부함, 뛰어난 품질 때문이며 시간이 감에 따라 소리도 좋아진다”고 평가했다.
CSO의 비올라 주자이며 최근 그레이에게서 악기를 구입한 스티븐 로젠은 “그레이는 진실로 겸손하고 잘난척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묘사한다. 그는 “그레이에게서 비올라를 처음 받았을 때 그가 쓴 ”지지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쓴 쪽지도 받았다. 그레이는 자신이 만드는 것에 모든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며 그의 악기는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했다.
CSO 바이올리니스트로 그레이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에릭 베이츠는 “그저 상자에서 꺼내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즐거움”이라고 그레이의 악기를 묘사했다. 그는 지난 시즌 교향악단과 함께 이 악기로 솔로 연주를 마쳤다. 이탈리아제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던 베이츠는 야외연주용으로 두번째 바이올린이 필요했는데 값이 싸서 그레이에게 제작을 주문했었다. 베이츠는 “결국 그레이 제품이 첫번째 악기가 됐다. 요즘 바이올린으로서 훌륭한 수준을 자랑하는 좋은 솔로 악기라고 생각한다”고 그레이 악기를 칭찬했다.
그레이의 공예는 완전히 수작업이다. 각각의 악기는 나무 토막으로 시작, 두달여가 걸려 완성된다. 혼자 일하기 때문에 그레이는 한해에 겨우 8-1개 정도의 악기를 만들 수 있다. 그는 종종 나무를 만져보거나 귀 가까이에 대고 음색을 듣기 위해 윗판 (악기의 ‘배’부분)을 두드리느라 작업을 멈춘다. 그레이는 “악기를 만들 때 추구하는 것은 연주도 쉽고 손에서도 좋은 느낌을 주는 악기가 되게 하는 것”이라며 “만들 때 느낌이 좋고 반응이 좋은 악기가 대개 소리도 좋다”고 말했다.
바이올린 제작은 고도의 지식과 정확함, 재능을 요구한다. 공장에서도 만들어지지지만 세계 최고의 제품은 여전히 손으로 만들어진다. 스트라디바리나 구아르네리우스 처럼 희귀한 17, 18세기 이탈리아 악기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현대 바이올린 제작은 부흥기를 맞았다. 그레이는 구식 장인정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요구될 것이라고 믿는다. 전문 연주자들은 수십, 수백만달러를 들이지 않고서도 콘서트장에서 연주할만한 수준의 악기를 찾기 때문이다.
요즘 수제작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대개 대당 1만2,000-2만달러에 팔린다. 첼로는 4만달러 수준이다. 비즈니스 시작 초기인 그레이는 대당 6,000달러에서 1만달러에 판매한다. 반면 한때 CSO 수석바이올리니스트 에밀 헤어먼이 사용했던 유명한 “태프트” 스트라디바리는 5월 경매에서 130만달러에 거래됐고 지난 가을 희귀본인 구아르네리 델 제수 바이올린은 600만달러에 팔렸다.
그레이의 현악기 제작은 자신이 연주자 출신이라서 많은 이점을 가진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출신인 그는 신시내티 대학 음대에서 첼로를 공부했다. 오하이오주 피니타운의 ‘바로크 바이올린점’에서 악기수리와 대여악기 청소를 하며 대학원까지 마친 그에게 악기 수집가이며 아마추어 바이올린 제작자인 BVS의 주인 폴 바텔은 바이올린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그레이는 결국 제작에 매료되어 진로 선택 시점에서 열심히 첼로를 연습해서 오디션을 볼 것인가 악기 제작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 악기 제작을 선택했다.
그레이는 국내 바이올린 제작의 중심지인 솔트레이크시티의 미국바이올린제작학교에서 바이올린 제작자 폴 하트 아래 1년간 도제과정을 마쳤다. 3년전 처음으로 자기가 만든 물건을 판매한 뒤에야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떤 악기를 쓰느냐는 질문에 ‘그레이’라고 대답한 것을 잊지 못한다. 바텔은 “그레이는 정열이 있고 재능도 있다”며 “그의 악기가 진보를 계속함에 따라 그레이의 명성도 자라날 것”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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