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2월, 엘살바도르의 한 시골마을 골목길에서는 무장한 국가수비대원들이 네 명의 미국 수녀들을 급습한 사건이 발생했다. 군인들은 수녀들을 유괴하여 겁탈한 후, 각각 머리에 총을 쏴 사살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12년에 걸쳐 7만 5,000여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엘살바도르 내전의 서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플로리다 주 웨스트 팜 비치 연방법정에서는 20년전 발생한 그 사건과 관련, 두 명의 전직 엘살바도르 고위 군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두 명의 피고인들은 수녀 살해사건의 지휘책임 및 사건은폐기도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피고인 중 한 명인 전직 엘살바도르 국방장관 호세 가르시아 장군은 행한 법정증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장군인들에 의한 잔학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배심원단 증언을 통해, 당시 자신은 잔학행위를 금지시킬만한 현실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건은폐 혐의부분에 대해서도, 자신은 철저한 사건수사를 지시했으나 부하들로부터 ‘군작전 중에 발생한 불상사’라는 보고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건당시 국가수비대 총책임자였던 카를로스 카사노바 역시, 살해사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완강히 부인했다.

이번 재판은 두 사람의 전직고위 군장성이 수녀 살해사건과 관련, 미국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된 최초의 케이스다. 엘살바도르에서는 1984년, 사건에 가담한 4명의 수비대원들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재판은 살해당한 네 명의 수녀들의 친척 및 친지들에 의해서 민사재판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

원고인단은 이름조차 생소한 ‘고문희생자 보호법’에 의거, 두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 및 징계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 10월 9일 시작된 심리에서, 원고측 변호사 밥 몽고메리는 살해된 수녀들의 사진을 프로젝터로 비쳐준 후, 그들이 당시 엘살바도로 정부의 인권유린 행위를 공공연히 비판한 댓가로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80년대 엘살바도르 군간부들은 전통적인 수녀복을 한 수녀들은 ‘좋은 수녀들’로 분류한 반면, 보다 캐쥬얼한 복장을 하고 좌익 게릴라들에게 동정적 태도를 보인 수녀들은 ‘나쁜 수녀들’로 분류하고, 소위 나쁜 수녀들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또한 이번 재판은 과거 공화당 행정부의 대남미 정책에 대한 논란을 재연시키는 도화선도 되고 있다.

엘살바도르 내전이 진행되는 동안, 레이건 및 부시행정부는 남미의 좌익 게릴라 퇴치를 위해 70억달러를 지원했었다.

이번 재판은 또, 세계의 여러 분쟁지역에서 인권유린 및 전쟁범죄에 가담한 혐의가 짙은 사람들의 망명천국과도 같은 미국의 현주소를 새롭게 조명해 주는 계기도 되고 있어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권변호사협회의 로버트 바레닉 변호사는 주장한다.
"이번 재판은 미국이 더 이상 인권유린자들의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

의회에는 현재 정치적 살인 및 고문혐의가 있는 사람들의 미국이민 불허를 골자로 한, ‘인권범죄자 책임법안’이 계류되어 있다.

"이 법의 통과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가르시아와 카사노바에 대해 반드시 인권유린 책임을 물어야 하며, 그들의 이민자 자격도 박탈해야 한다"
살해당한 한 수녀의 오빠인 윌리엄 포드는 이렇게 분개하고 있다.

이번 재판과는 별도로, 1993년에 작성된 U.N. 진상위원회는 가르시아와 카사노바가 80년에 살해된 4명의 수녀들 뿐 아니라, 기타 수 천명이 희생된 사건들의 은폐를 지휘했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가르시아는 다음과 같이 발뺌하고 있다.
"나는 현직 시절 휘하의 정규군인들이 민간인 살해사건에 광범위하게 관련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번 재판에서는 또, 수녀살해 사건으로 투옥됐던 한 수비대원의 옥중인터뷰 내용 일부가 공개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이 인터뷰는 수녀살해 사건의 행동대장격이었던 수비대원 루이스 콜린더스의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수녀들 살해사건이 나의 명령하에 이뤄졌지만 수사과정에서 상부의 지시여부에 관한 질문은 전혀 받지 않았다"
콜린더스 진술의 일부내용이다.

한편, 콜린더스를 포함한 5명의 수비대원들은 엘살바도르에서 열렸던 재판에서 각각 30년형을 선고받고 84년부터 투옥되었느나, 1998년에 교도소시설 부족을 이유로 모두 가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