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표의 힘이란 묘한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A라는 후보가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B라는 후보가 268표를 얻었다면 두표 차이로 A가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보통 자리가 아니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직책이다. 두표 차이로 한 사람은 세계 무대의 정상에 오르게 되고 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지난 4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3표 차이로 당선된 사람이 있었지만 그건 국회의원이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이 3표에 의해 당락이 좌우된다면 이것은 지나친 운명의 장난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원칙에 의해 운영된다. 다수의 원칙이 민주주의 제도의 원리다. 그래서 한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한표 차로 당선된 사람은 지배자가 되고 낙선한 후보는 피지배자가 된다. 이긴 사람의 생각대로 정책이 펼쳐지고 국민들이 이에 따르게 된다. 마음에 안 들면 4년을 기다려 투표로 갈아치우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다수의 원칙은 승자가 다 가지는 게임이다. 그 다수가 비양심적이고 비정상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사이비 종교 지도자인 짐 존스가 신도 900명을 모아놓고 “독약을 먹고 자살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투표에 부친 결과 451명이 자살에 찬성하고 449명이 반대했다고 하자. 자살에 반대하는 449명은 죽기 싫은 데도 죽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다수의 횡포다.
물론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이지만 미국 역사에서 다수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 남부의 흑인 노예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 때 다수의 남부인들, 특히 부유하고 양심적으로 불리던 지식인층까지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다수에 속해 있었다. 그 결과 흑인들은 노예라는 신분의 인간 이하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원칙을 존중해야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다수는 윤리적으로 하자가 없는 다수라야 한다. 비윤리적인 다수가 정권을 잡을 경우 마이너리티는 예상외의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다. 마이너리티가 공화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공화당지지 세력에 이성을 잃은 극우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거는 선택이다. 유권자가 마음에 드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는 민주·공화 양당제도다. 두사람 중에 한 사람을 고를 수밖에 없다. 두 후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데도 억지로 한 사람을 골라 찍어야 한다. 엄밀하게 표현하면 미국 선거제도는 ‘자유의 선택’이 아니라 ‘제한된 선택’이다. 한 후보는 코가 비뚤어지고 다른 후보는 입이 비뚤어졌을 경우 유권자가 선택할 자유는 코 비뚤어진 사람을 선택하느냐, 입 비뚤어진 사람을 선택하느냐의 결정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두 후보 모두 마음에 안들 경우에는 기권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기권자가 40~50%에 이르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양당 제도에서는 마이너리티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전당대회에서 지명을 받아야 하는 데 이 관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마이너리티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길은 부통령 후보로 지명받아 당선된 다음 케네디처럼 대통령 유고 시에나 가능할 뿐이다.
더구나 미국선거는 선거인단 제도다. 이기는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마이너리티 후보는 여러 주를 장악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가장 열린 선거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묘하게 닫혀 있다. 고어나 부시가 정말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유능한 후보였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유능한 인재들이 많은데도 미국의 선거제도 때문에 국민은 최선을 택하지 못하고 차선을 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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