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처럼 공룡을 좋아하는 국민도 드물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주라식 팍’은 공룡의 피를 빤 모기의 화석에서 DNA를 검출해 공룡을 재탄생시킨다는 다소 황당한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상 최고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아이들은 더하다. 유치원에 들어 가기전부터 날아 다니는 ‘프테로댁틀’, 가장 흉폭한 육식공룡‘티라노소러스’등 어른도 모르는 이름을 줄줄 외고 다닌다. 보라빛 공룡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바니’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의 하나다.
공룡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2억3,000만년전으로 추정된다. 그후 1억년이 넘게 ‘지상의 왕’으로 군림하던 이들은 6,500만년전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크기로나 힘으로나 적수가 없던 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이유는 한동안 지질학자들 사이 수수께끼였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공룡이 사라진 지층에서 이리디움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이리디움은 지구상에는 희귀한 물질이지만 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소혹성에는 흔하다. 이리디움이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세계에 고루 분포돼 있으며 발견된 지층연대가 6,500만년전이라는 사실은 공룡멸종이 소혹성 충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문제는 그 정도 영향을 미칠 운석이라면 크기가 직경 10km는 돼야 하고 그러면 지표면에 직경 200km 정도의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그런 곳을 찾을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 연안에서 석유시추 작업을 하던 탐사선이 해저에서 운석 충돌 현장을 찾아 내면서 주어졌다. 운석의 크기는 물론 떨어진 시기도 공룡 멸종과 일치했다. 이제는 소혹성 충돌로 인한 기후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 공룡이 사라진 주 원인이라는 것이 학자들 사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AT&T는 미국에서 가장 공룡과 닮은 기업이다.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벨이 1877년 세운 벨 텔레폰사를 모체로 한 이 회사는 12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과부와 고아들도 안심하고 투자할수 있는’ 튼튼한 회사의 표본이었으며 통신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70년대까지만도 총직원 100만명에 총자산은 GM과 모빌, 엑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전세계 최대 기업이었다. 그런 AT&T가 최근 본사를 4개 기업으로 분할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대기업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AT&T의 분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2년 연방법원은 미국 통신 시장의 독점권을 인정받고 있던 AT&T에게 산하 로컬 전화회사를 분리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후 지난 18년간은 AT&T에게 고난의 세월이었다. 장거리 전화시장이 개방되면서 MCI, 스프린트등 신흥기업과의 경쟁에 시달려야 했고 무선전화, 케이블, 광통신, 인터넷등 하루가 달리 바뀌는 통신혁명에 적응해야 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가 쌓아 놓은 네임밸류와 풍부한 자금을 무기로 새 삶을 개척해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랜 독점에 익숙한 간부들은 어떻게 경쟁에 대처해 나가야할지 몰랐고 겹겹이 싸인 관료주의 때문에 순발력 있는 상황 판단과 결정이 불가능했다. 이것 저것 투자하는 데마다 이익은 나지 않고 주력업종인 장거리 전화요금마저 기하급수적으로 싸지면서 빚만 늘어갔다. 10여년전 분당 3달러씩 하던 한국과의 전화요금이 이제는 7센트선으로 떨어진 것만 봐도 AT&T의 고민을 짐작할수 있다. 96년에는 장거리 전화기구 제조부문을 독립시켜 루슨트라는 회사를 차렸으나 이 또한 통신시장의 흐름을 잘못 판단, 주가가 70%나 곤두박질치는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AT&T의 분할 결정으로 이제 이 회사는 소비자 장거리, 비즈니스 장거리, 무선 통신, 초고속 통신등 4개 회사로 나뉘어지게 됐다. 덩치를 작게해 각자 자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남을수 없다는 계산 끝에 나온 고통스런 결단일 것이다.
진화론의 기수 다윈은 “대자연에서 살아남는 것은 가장 크거나 힘이 센 종자가 아니라 가장 적응을 잘 하는 종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AT&T의 몰락은 아무리 오랜 역사와 재력이 있는 기업도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자연과 사회 공통의 진리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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