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브루클린 소재 에라스무스 홀 고등학교는 많은 유명 풋볼선수들을 배출해 낸 스타의 산실이다.
이 학교의 졸업생들 중에는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소유주 알 데이비스, 1940년대 시카고 베어스의 명 쿼터백 시드 러크맨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9월 말, 에라스므스 고등학교는 돌연 풋볼팀의 해체를 선언했다.
시즌 첫 경기가 끝난 직후의 일이었다. 이 결정은 한 세기 넘도록 이어져 내려온 풋볼팀의 명맥을 단절시켰을 뿐 아니라, 당장 대학진학을 앞둔 3학년 선수들을 궁지로 몰아 넣고 말았다.
17세의 3학년생 미첼 오스틴이 대표적인 경우다.
신장 6피트에 300파운드의 거구인 오스틴은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풋볼선수이다. 예정대로라면, 그는 시라큐스 대학교에 풋볼장학생으로 진학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오스틴은 요즘 SAT를 준비하는 신세가 되었다.
공립학교의 풋볼팀 폐쇄가 비단 에라스므스 고등학교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많은 공립학교들이 사전예고 한마디 없이, 운동프로그램을 폐쇄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에 대해, 교육위원회는 운동프로그램 지원예산이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이번, 에라스므스 고등학교 풋볼팀 해체도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채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뉴욕시청이나 교육위원회도 이렇다 할 논평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관련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에라스므스 풋볼팀 만큼이나 전통과 명성이 높은 브롱스 과학고등학교의 ‘과학경시대회’ 프로그램이 이런 식으로 소리없이 폐쇄될 수 있겠는가"라며 크게 분개한다.
에라스므스 풋볼팀 해체는 사소한 문제가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지난 9월 22일, 학교측은 라커웨이 고등학교와의 경기 직후 로버트 패넬 코치를 전격 해임했다. 사유는 패넬 코치가 선수들의 헬멧 안에 안전패드를 넣지 않음으로써, 안전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6일후 학교측은 아예 풋볼팀을 해체시켜 버렸다.
이에 대해, 패넬 고치는 규정위반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헬멧의 안전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팀 해체의 진짜 이유는 헬멧 때문이 아니라 예산문제였다고 주장한다.
올해,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에라스므스 고등학교에 배정한 운동지원금은 전체 2,600달러, 그중 풋볼팀에 할당된 예산은 670달러에 불과했다. 패넬 코치는 또, 시즌초반 학교측으로부터 200달러를 받았는데, 헬멧을 수리하는데만 700달러라는 돈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63세의 패넬은 지난 82년부터 에라스므스 풋볼팀을 지도해 왔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풋볼팀을 위해 7만 5,000달러 이상의 사재를 털어왔다고 말한다. 지난 해에도 그는 선수들의 운동복 전체를 자비로 구입했으며, 선수들을 경기장으로 실어갈 버스를 사재로 렌트한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패널은 또, 가난한 선수들의 훈련참여를 돕기 위해, 지하철 토큰까지 제공해주곤 했었다.
"나는 레인지 로버 짚차를 굴리는 것이 꿈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풋볼팀에 쏟아부은 돈을 모았다면, 레인지 로버 두 대쯤은 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씁쓸하게 농담조로 말한다.
에라스므스 풋볼팀이 폐쇄되기 직전까지, 패넬 코치는 아무런 문제없이 팀을 잘 지도하고 있었다. 선수들도 팀이 해체되리라는 낌새를 전혀 채지 못했다.
10학년 선수 매튜 홀리는 어이없이 말한다.
"우리는 팀운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다. 헬멧도 착용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사실, 우리는 시시콜콜한 헬멧규정 같은 건 신경도 안쓴다"
에라스므스 풋볼팀 해체는 외견상 명백히 예산문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내막을 알고보면 반드시 돈 문제만도 아니었다. 이 학교 동문들 중에 저명한 갑부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으니 말이다.
앞서 언급한 알 데이비스를 비롯, 시카고 화이트삭스 및 시카고 불스의 소유주 제리 라인스도프, 그리고 뉴욕 자이언츠의 소유주 로버트 티시도 이 학교 동문이다. 특히, 알 데이비스 같은 사람은 자신이 그동안 학교의 동문들을 꾸준히 접촉해 왔으며, 유사시 풋볼팀 운영에 필요한 돈을 충분히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페넬 코치는 이렇게 주장한다.
"진짜 문제는 학교 집행부의 풋볼 프로그램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그들은 풋볼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
평소 풋볼팀에 관심이 없었던 학교당국이 사소한 예산문제를 꼬투리 삼아 팀을 폐쇄시켰다는 것이다.
뉴욕시 공립학교 스포츠활동을 관장하는 ‘공립학교 운동리그’도 패넬의 이같은 주장에 공감을 표시한다.
"학교측의 이번 조치는 무책임의 극치다. 외부에서는 에라스므스 팀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학교내부에서 풋볼팀에 대한 헌신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제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입게 되었다"
학교당국의 태도를 개탄공립학교 운동리그의 한 관계자는 학교당국의 태도를 개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