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아 미국에 아시아 영화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일부 쿵푸 액션영화를 제외하고 아시아 영화들은 영화제서나 볼 수 있었는데 최근 들어 다양한 장르의 아시아 영화들이 미국 배급사들에 의해 수입돼 이미 개봉됐거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20편에 이른다.
올 들어 아시아 영화는 지난 9월에 열린 토론토영화제서부터 강세를 보였었다. 이어 10월에 열린 뉴욕영화제서도 아시아 영화가 인기를 누렸는데 출품작 25편중 10편이 아시아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지난달에 있은 AFI(미영화학회) 영화제서도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 뉴 클래식’이라는 이름 아래 임권택의 ‘춘향뎐’등 8편의 아시아 영화가 상영됐다.
전문가들은 1997년 일본의 타케시 키타노 감독의 ‘불꽃’이 베니스 영화제서 대상을 받은 것을 아시아 영화의 세계 영화제 지배의 분수령으로 본다. 이들은 또 많은 아시아 영화들의 미국내 상영은 이것들이 세계에서 가장 생명력 있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영화들로서 국제적으로 균질화되지 않은 예술형태로 번창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달 아시아 영화로 LA서 제일 먼저 개봉된 것은 현재 세계 각종 영화제서 상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이란 영화로 쿠르드족 소년 가장의 뼈저린 생존 투쟁을 그린 드라마 ‘술취한 말들의 시간’(본보 28일자 파트A 26페이지 연예면 참조)이다.
이어 10일부터 중국의 루 예 감독의 ‘수조우강’(Suzhou River) 이 상영된다. 상하이의 수조우강이 만유하는 운명처럼 흐르는 가운데 두 젊은 청춘남녀의 사랑과 집념과 죽음을 신비롭고 로맨틱하게 그린 아름답고 어두운 작품이다. 그리고 17일부터는 일본의 베테런 감독 나기사 오시마의 ‘금기’(Taboo)가 상영된다. 성적인 것과 폭력과 죽음에 집착하는 오시마의 14년만의 첫 영화로 19세기 사무라이들간의 동성애를 다뤘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영화인데 경제적 연출력이 돋보인다.
12월에는 대만 출신의 앙 리 감독이 홍콩 배우를 사용해 중국서 찍은 무술로맨스 영화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이 전국서 개봉된다. 주윤발과 미셸 요가 주연한 이 영화는 옛날 스타일의 흥미진진한 쿵푸 액션영화다. 같은 달 요즘 침체기에 빠져 있는 대만 영화계의 대표적 감독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Yi Yi)이 개봉된다. 후 시아오-시엔과 함께 신대만 영화의 기수라 불리는 양감독의 올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다. 중류층 중년부부를 중심으로 3대에 걸친 삶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렸는데 뉴욕타임스의 영화비평가 A.O. 스캇을 울리게 만든 좋은 작품이다.
12월에는 LA서 한국 영화도 두편이 상영된다. 먼저 한국서 외설시비에 말려들었던 장선우의 ‘거짓말’이 상영되고 곧 이어 이명세의 액션영화 ‘네멋대로 해라’가 선보인다.
내년 1월에 들어서면 임권택의 ‘춘향뎐’이 개봉되고 2월에는 왕가위의 정신없게시리 로맨틱한 ‘사랑하고픈 기분이지요’(In the Mood for Love·사진)가 개봉된다. 이 영화는 토니 륭과 매기 충이 주연하는데 자신들의 아내와 남편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서서히 접근해 가며 둘간에 또다른 사랑이 꽃피는 로맨스 영화다.
이어 4월에는 타케시 키타노가 미국 와서 만들고 주연한 야쿠자와 미국 갱영화를 짬뽕한 ‘형제’(Brother)가 상영된다. 또 1993년 ‘초록 파파야의 향기’를 만든 베트남계로 파리서 활동하고 있는 트란 안 훙의 ‘한여름’(At the Height of Summer)도 내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젊은이들의 유랑극단의 삶을 통해 80년대 중국의 사회 문화적 변화를 고찰한 ‘플래트폼’(Platform)과 엄청난 사고 후 살아남은 몇사람의 후유증을 그린 일본영화‘유레카’(Eureka)와 2편의 이란 영화 ‘순환’(The Circle)과 ‘장뇌의 냄새, 재스민의 향기’(Smell of Camphor, Fragrance of Jasmine)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UCLA 영화 & TV 아카이브는 12월2부터 10일까지 ‘뉴 차이니즈 시네마’라는 이름 아래 최신 중국영화 11편을 상영한다.
돈과 에너지의 활성화로 제2의 뉴웨이브를 맞고 있는 일본 영화계와 역시 자금의 재투입으로 활기를 다시 찾고 있는 홍콩 영화계의 기상변화를 이들 국가의 영화들의 미국시장 역습의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또 미국과 중국이 최근 무역을 정상화하면서 앞으로 중국 영화의 본격적인 미국시장 공습이 시도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단 붐을 조성하고 있는 아시아 영화들일지라도 관객이 외면하면 그 붐은 거품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미국내서 아시아 영화들은 아직 라틴영화나 게이영화 및 여성영화들처럼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홍보전문회사 MPRM의 부사장 로라 김은 "지금이야말로 아시아 영화가 미국내서 하나의 고유한 패턴을 형성할 호기" 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을 비롯한 아시안들이 ‘춘향뎐’등 아시아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밀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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