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대학시절에 친구중의 하나가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택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본어 강의가 있는데 안 간다고 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은 하나에서 열까지 한문으로 쓰고 일본어로 읽을 줄 아는데 자기 반 친구들은 一二三까지는 쓰는데 四와 五는 어려워서 쩔쩔매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똑똑하냐고 웃기는 것이었다.
한국학생에게는 한문이나 일본어를 유럽이나 북미대학에서 요구하는 외국어로 선택하여 공부하는 것은 아주 쉽다고 할 수 있다. 각 학교나 공부하는 분야에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나의 학생시절에는 유럽에서는 라틴어는 거의 필수 선택과목이며 누구나 시험을 쳐서 학점을 따야 하는 것이었으며 대학과정을 넘어서 대학원이나 Ph.D. 과정을 하는데는 제2외국어가 요구되는 것이었다. 라틴어 공부에 너무나 혼이 난 친구는 쉬운 길인 일본어를 택한 것이었다. 그것도 공부라고 학점을 따느냐고 놀리며 웃었던 생각이 난다.
잘 아는 교포 가정에서 대학에 들어가 첫 학기를 마치고 집에 가져온 성적표를 나보고 보라고 하면서 만족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성적이 우수하였지만 공부를 참 잘했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학생의 아버지가 성적표에 ‘KOR’이 무슨 과목이냐고 묻는 것이다. 성적표를 받아온 학생은 한국어를 잘 하는데 ‘KOR’ 즉 Korean(한국어)을 대학 1학년 첫 학기에 택해서 좋은 점수를 받은 이면에는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많은 사연이 있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못해서 학교 성적이 우수하지 못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중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니고 부모보다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대학에 진학해서 영어에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과목이 있다고 한다. 북미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를 배워보고 싶은 젊은이들이 등록해서 공부하는 학생 숫자와 한국에서 국민학교나 중학교를 다니다가 이민와서 한국어에는 큰 장애가 없는 학생들이 한국어 과목을 수강하는 숫자를 비교해 본다면 어느쪽이 더 많은지 궁금하다.
한국문화 및 역사를 이곳에서 자라는 2세 3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글을 종종 본다. 집의 큰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 가서 한국에서 발행한 책으로 불어나 또는 영어로 써 있는 소설이나 한국문화 또는 역사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지만 한 권도 없었다. 자식을 공부 시키려면 방대한 자료가 필요하며 공부할 수 있는 뒷받침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문화나 역사를 입으로 강조하는 따위의 헛소리는 나도 할 수 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어떤 책이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고 그 내용이 무엇이냐고 하는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과 똑같은 말인데 감기가 걸렸는데 당뇨병 약을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대학교 졸업반에 있는 막내딸이 국민학교 5학년 때 한국에 대해서 프로젝트를 했는데 나보고 도와달라고 하였다. 막내딸이 고심하는 문제점은 미국에서 동양인으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매년 2,000여명의 Ph.D.가 나오는데 그 중에 한국사람이 몇 명인지 자료를 정확히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사관의 교육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했더니 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 이렇게 세밀한 정보를 찾고 있다는 것에 감탄하면서 부끄럽게도 그러한 자료는 없다고 사과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본국에 알려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딸의 프로젝트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얼을 가르치고 한국의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 보다는 한국의 얼을 배울 수 있는 책이 무엇이며, 영어·독일어 또는 불어로 번역되어 있는가를 제시한다면 독자들이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말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면이 좋고 나쁘다는 글은 한국신문에서 찾아보기 거의 불가능한 글이라 하겠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우리 조상의 유산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민족의 혼을 심어주자’라는 글로서 간단히 이루어질 수 있는 뿌리가 짧은 것은 아니다. 반면에 한국에서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것처럼 영어로 또는 불어로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고 한국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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