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영웅이었던 잔 메케인 상원의원이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전 중반에 부지중에 베트남인을 깔보며 “Gook”(노란둥이)이라 언급해 아시안 아메리칸들을 분노케 했던 일을 독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혼줄이 난 그는 후에 “자신의 발언이 옹졸하고 무례했다”며 공식사과했다.
외국태생 아시안과 아시안 아메리칸이 모두 똑같아 보이는 주류사회 미국인들에게 “Gook”이라는 단어가 잡동사니 속어의 하나로 전락해가는 이 이상하고도 뒤죽박죽인 과정중 최근 사건에 내 개인 경험을 첨가하고자 한다.
인종차별이 공공연하던 시절, 내가 테네시의 작은 일간지의 풋나기 신문기자로 경찰/법원 취재중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었다. 그때가 1956년으로 몽고메리의 로사 팍스 여인이 버스의 백인석에 앉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인권운동이 시작되기 몇 년 전이었다.
흑인이 감히 흑백 라인을 넘어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인종분리 관습이 황혼기로 서서이 접어들고 있던 남부에서 나는 아마도 일간지 최초의 유일한 동양인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때때로 어른들로부터 법에 의해 유색인종 차별이 행해지고 있는 미국 남부에서는 그 관습을 따라야 한다고 충고받곤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그 충고를 따를 작정이었다. 킹포트 타임스-뉴스에서의 내 보도 임무중 하나인 시와 일반형사(카운티)법정의 월요일 재판은 주말동안의 음주, 다툼, 매춘, 취중운전 혐의로 붙잡혀들어온 건달 집단들로 뒤숭숭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의 부대에 파견됐다 막 돌아온 간수와 함께 눈빛이 흐리고 머리가 헝클어진 피고인 행렬을 지나갈 때 누군가가 “헤이, Gook(노란둥이), 이리 와봐”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그 말은 내 귀를 진동시켰다. 남부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차이나맨’, ‘칭크’라는 말을 듣는데는 꽤 익숙해져갔다. ‘차이나맨’은 고상한 사람들이 아시안들을 칭하는 말이었고 ‘칭크’는 비교적 덜 세련된 하층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었다. 나는 이런 속어에 익숙치 않았으므로 그 말들을 그냥 흘려버리곤 했다.
한국에서 떠들썩한 개구장이 소년들 무리에 쫓기던 일부 미군들이 성내며 G로 시작되는 말을 내뱉는 거리 광경을 종종 보곤 했으나 미국 남부에서는 마음놓고 있던 그 순간까지도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3년간의 한국전 군사행동후 인종을 칭하는 그 용어가 미국내에서 유행어로 점점 퍼져나갔음이 명백했다.
조소섞인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거의 자동적으로 돌아서며 나는 외쳤다. “너, 내게 하는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편집병적인 트레비스(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드 니로가 맡았던 역)가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거울을 보며 미친듯 중얼 거리는것 같았다.
“너, 내게 말하는 거야?”라고 다시 물었다.
“그래, 네게 하는 말아야, 노란둥이야”라며 인근 작은마을에서 온 감방 단골손님인 거무튀튀하게 생긴 사람이 더 크게 말했다.
“나는 노란둥이가 아니야, 한국사람이야”라고 나는 내뱉았다.
“그래, 너는 노란둥이야, 보이,---이리 와서 내 ----를 닦지.”
나와 동행했던 간수가 끼어들었다. “너, 이걸 그냥 넘길거야? 너, 겁쟁이처럼 될거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나는 기자로서 직무수행중이다. 비가 오나 진눈깨비가 내리나. 그런데, 교도소 싸움에 과연 내가 말려들어가야 하나? 긴장감 도는 공간을 칼로 깍아내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거기 있던 모든 무리들의 눈초리가 내게로 집중돼 있는 것이었다.
내 머리속에는 수천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내 내부에서는 “로마에서는 로마인들이 하는 걸 따라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 참전 용사는 무의식중에 나에게 동양인 체면을 살리라며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네가 고발을 내게 접수시킨다면 이놈을 공중모독혐의로 체포하겠어.”라고 그가 속삭이며 내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나는 단숨에 고발을 접수시켰다. 검사도 나도 ‘노란둥이’(Gook)라는 말이 공중모독이 아니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백인들의 일상 대화에서 흔히 쓰이던 ‘깜둥이’(N-word)라는 말 같은 속어였던 것이다. 또한 신이나 종교와도 아무 관련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런 건 문제되지 않았다.
큰 산타클로스처럼 빨간 코를 가진 담당 판사는 판사석에 앉아있는 절반이 얼근히 취한 상태였지만 그날은 정신이 말짱했다. 카운티검사가 이 건을 올렸을 때 나는 더 이상 방청인이 아니라 고발인이 된 셈이었다.
자기 사무실에서 잡담중이라면 자유롭게 N-word를 입에 올렸을 만한 판사가 G-word를 판결하는 자리에 앉아있게된 것 이었다.
“이 사람이 당신을 G-O-O-K이라고 불렀는가?”
“네, 그렇습니다. 판사님.”
간수 증인도 동조했다. 남부의 판사는 신속했다.
“내 법정에서 G-O-O-K이란말은 욕설이다.”라며 망치를 두들겼다. “유죄.” 이 이야기가 빨리 번져나가 사회부장 귀에 들어갔다. 근 1년간 금주를 굳세게 실천해온 금주가인 그는 “동네 술꾼들에게 경고하는 셈치고 잊지말고 그 이야기를 기사에 넣도록 해.”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아침 내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타임스-뉴스의 K. W. Lee기자가 처치 힐 거주 남자를 상대로 제기한 공중 모독혐의 고발에대해서 (지방형사법원) G. G. 길브레스 판사가 25달러 벌금과 추가비용을 부과했다.”
필자는 미국내 아시안 원로 언론인이며 본보 영문판 편집인을 지냈고, 금년 가을 UCLA에서 작녁에 맡았던 코스, “심층 조사의 언론記?痔适?커뮤니티와 캘리포니아 패시픽 림 모자이크,”라는 제목으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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