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화제
▶ ’검은장갑’ 시상식의 백인선수 노만, 아직도 호주 영웅
새 천년을 장식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2주동안 갖가지 기록과 화제를 만들고 지난 주말 화려하게 그 막을 내렸다.
올림픽 무대에서 육상 트랙경기를 주름잡는 선수들은 대부분 흑인들이다. 그 중, 남자육상하면 미국의 마이클 존슨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이번 시드니 올림픽 개최국 호주에는 200미터 달리기의 국가적 영웅 피터 노만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그러나, 노만은 현역선수가 아니다. 그는 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 남자육상 200미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었다.
당시, 백인선수가 육상 200미터에서 은메달을 딴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특히, 호주는 노만의 은메달 이후, 오늘날까지 올림픽 육상에서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만큼, 노만의 올림픽 200미터 은메달은 호주육상 역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노만이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비단 그의 은메달 때문만이 아니었다.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육상 200미터의 금메달은 미국선수 타미 스미스가 차지했고, 노만이 은메달, 그리고 또 다른 미국선수 존 카를로스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런데,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모두 흑인이었다.
세 선수는 경기직후 시상식 준비를 위해 선수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대기실에서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모종의 사건을 꾸미고 있었다. 시상대에 올라가 흑인민권운동 시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60년대는 미국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민권운동이 정점에 달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두 명의 흑인선수들은 흑인들의 열악한 생활여건을 상징하기 위해, 검정색 장갑과 검정색 양말을 착용했다. 그리고, 왼쪽가슴에는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라는 글귀가 새겨진 큰 뱃지를 달았다. 이때, 곁에서 두 흑인선수를 지켜보던 노만이, "혹시, 그 뱃지 하나 더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두 흑인선수들은 "하나 더 있으면 너도 달겠느냐"고 되물었고, 노만은 "기꺼이 달겠다"라고 대답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노만은 백호주의의 전통을 굳건히 지키고 있던 호주의 백인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만의 성장과정을 감안한다면, 사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노만은 ‘구세군 교회’의 5대신자로서, 평소 인권운동을 지지하며 살아왔었다. 그는 특히, 60년대 미국에서 불붙은 흑인민권운동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수도꼭지에서 물을 마실 수 없고, 같은 버스를 탈 수 없고,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불의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었다"
노만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쨌튼, 노만은 인권운동 뱃지를 왼쪽 가슴에 달고, 두 명의 흑인선수들과 함께 시상대에 올라갔다. 시상대에서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검정장갑을 낀 손을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 들었다. 그날의 시상식 광경은 올림픽 역사상 잊을 수 없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시상식 이후 호주의 일부 언론들은 노만이 백인들을 매도했다며 집중공격했다. 그러나, 세월히 지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오늘날, 노만의 영웅적인 행동은 호주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올림픽 기간에도, 시드니 다운타운에서 올림픽 파크에 이르는 철도변에는 그날의 인상적인 시상식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밑에는 "세 명의 자랑스런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 사건 이후 세 사람은 평생 친구가 되었다.
세 사람은 1993년,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서 재회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그들은 서로에게서 강한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수시로 e-메일을 주고 받으며, 상호관심사를 교환하고 있다. 진정한 유대감은 전장의 전우애와 스포츠 선수들의 동료의식이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 사이의 유대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카를로스는 노만이 멕시코 올림픽에서 보여준 행동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날, 노만의 행동은 하나님의 인도였다고 확신한다. 백인남성이 우리의 인권운동에 동참함으로써, 그 사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발휘할수 있었다"
58세의 노만은 요즘도 호주정부를 상대로 원주민 권리옹호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노만이 멕시코 올림픽 경기에서 작성했던 기록은, 지난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마이클 존슨이 기록한 200미터 세계기록에 불과 0.64초 못미치는 것이었다.
"멕시코 올림픽에서 나는 좋은 성적으로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그날 나는 내 인생에서 올림픽 이상의 값진 것을 얻었다"
노만은 술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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