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7일 시드니 올림픽 그레코로만 레슬링 수퍼헤비습 결승에서 무명의 미국선수 룰란 가드너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러시아의 레슬링 황제 알렉산더 카렐린은 메달 수여식이 끝난후 사진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할 때 어깨동무를 하려던 가드너의 팔을 뿌리치고 한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고개를 푹숙이고 있다가 꽃다발을 든 손도 뒤로 가린채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카렐린의 매너없는 행동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는 그에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나온 것이다. 카렐린은 도대체 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패배를 한 선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시드니 올림픽이 있기 전까지 지난 15년동안 국제대회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고 10년동안 상대방 선수에게 단 1포인트의 실점도 허용한 적이 없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에서 7연승을 했고 88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바르셀로나,애틀랜타까지 올림픽에서도 3연패를 했다. 이번 대회서 그의 4연패 달성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올림픽 기간중 상배를 당한 후안 사마란치 IOC위원장까지 그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카렐린이 패배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놓고 있었을리 없다.
33세의 나이에 러시아 국경수비대 중장 직위에 하원의원까지 겸하고 있는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인 카렐린은 대형냉장고를 번쩍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괴력을 지녔다. 그의 장기는 상대선수를 거꾸로 집어들어 메다꽂는 것이다. 이번에 금메달을 딴 가드너도 지난97년 폴랜드에서 열렸던 세계챔피언쉽대회에서는 카렐린에게 집어들려 머리부터 메다꽂힘을 당한 끝에 5대0으로 완패를 했었다.
이번 가드너의 승리에는 운도 작용했다. 우선 카렐린은 이날 결승전에 앞서 같은날 2차례의 시합을 했기 때문에 1차례의 시합을 치른 가드너에 비해 지쳐 있었다. 또 조르기를 하던 팔이 풀림으로써 1포인트를 빼앗겼으나 가드너의 팔도 거의 동시에 풀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명의 심판들도 서로 견해가 달라 90초동안 녹화테잎을 검토한후에야 가드너에게 1포인트를 주었다. 그러나 가드너 본인도 시합이 끝난후 자신의 팔이 풀렸던 사실을 인정했다. 카렐린에게 들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정규 6분,연장 3분의 경기시간 내내 수비로만 일관했던 가드너는 이 1포인트 덕분에 1대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지난80년 미국 아이스하키팀이 소련팀을 물리쳤던 ‘빙상의 기적’에 비유되는 가드너의 승리가 순전히 요행으로만 얻어진 것은 아니다. 가드너는 카렐린을 이기기 위해서 그동안 세심한 연구와 작전계획을 세워 연습을 해왔다. 카렐린에게 집어들리우지만 않고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 끈질기게 버틴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게된 것이다. 경기가 끝난후 가드너는 카렐린과의 대결이 마치 소나 말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어찌됐든 승리는 승리고 패배는 패배다. 알렉산더 카렐린의 15년 제위는 시드니 올림픽으로 끝난 것이다. 이번대회에서 침몰한 것이 비단 카렐린만은 아니다. ‘인간새’라는 별명이 붙은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부브카도 장대높이뛰기 예선에서 탈락했고 역도 62킬로그램급에서 올림픽 4관왕을 노리던 터키의 ‘포켓 헤라클레스’, 나임 술레이마놀루도 첫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10년을 넘기는 세도가 없고 10일을 넘기는 꽃이 없다는 옛말처럼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마라톤시합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끝까지 지킬 자신이 있을 때에만 선두에 나서라" 선두는 항상 공격의 목표가 되기 때문에 지키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나온 말이다.
NBA정상급 선수들로만 이루어진 미국농구 드림팀은 준결승에서 리투아니아와 접전 끝에 2점차 신승을 거둔데 이어 프랑스와의 결승에서도 종반 한때 4포인트까지 추격을 허용하는등 혼쭐이 났다. 4년뒤 아테네대회에서는 예선탈락하는 망신을 당할지도 모를일이다. 월드컵 쳄피언 미국여자 축구팀도 예선에서 중국에게 타이를 허용한데 이어 결승에서는 노르웨이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진리를 입증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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