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만 편집위원 - 이 달의 가장 큰 화제는 아무래도 시드니 올림픽이 되겠지요. 상업주의의 만연과 미국내 녹화중계로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4년에 한번 열리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잔치인 만큼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옥세철 논설위원 - 이번 올림픽을 일부에서는 ‘눈물의 올림픽’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우선 개막식 날의 이벤트가 우리에게는 눈물을 자아나게 했지요. 남북한 선수단의 동시 입장 말입니다. 스탠드의 관중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5분간의 남북한 통일’에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민경훈 편집위원 - 남북한 동시 입장을 놓고 미국 언론의 시각은 엇갈렸습니다. 대체적으로는 한반도 평화무드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요. LA타임스 같은 신문은 “인류를 하나로 묶는 스포츠의 힘을 분명히 보여 준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독재국가인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한국이 한팀인 것처럼 들어온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견해를 보였습니다. 수백만 국민을 굶겨 죽이는 나라가 무슨 올림픽에 참여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죠. 출전선수가 31명인데 이를 감시하기 위한 관리가 30명인 것도 비꼬았습니다.
▲권정희 편집위원 - 동서독 선수단이 처음 동시 입장한 것도 56년 역시 호주의 멜버른 올림픽에서였습니다. 호주에 무슨 화합의 기운이 있는 지도 모르겠군요. 남북한 선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들어오는 광경은 확실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연출하느라 한국이 또 너무 저자세였다는 불만이 한국에서 터져 나오더군요. 한국 돈 들여 단복 180벌을 부랴부랴 공수하면서, 북한과 숫자 맞추느라 남한 선수단에서는 입장식에 90명만 참석시키고 나머지 거의 200명을 뒷전에 물러나 있게 하고, 북한측에서는 선수가 모자라 물리치료사까지 입장 대열에 끼게 했다고 말입니다.
▲옥 - 아보리진, 즉 호주 원주민 출신인 여자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이 최종 성화주자가 돼 점화한 것도 감동적이었지요. 이 프리먼이 여자 400m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이번 올림픽의 하일라이트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원주민에 대한 차별을 무릅쓰고 인류의 축제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감개가 무량했겠지요. 과거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땄을 때 한국인들이 아보리진과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 - 한국은 금메달 10개 이상에 10위권을 노리고 있다는데 기대보다는 성적이 미흡한 것 같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메달순위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권 - 남북한이 통일돼 같은 선수단을 이루면 올림픽에서도 굉장히 유리할 것이란 말들을 많이 했지요. 그런데 이번 북한선수들 성적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아요. 사격에서라도 금메달 하나는 따지 않을까 했는데 너무 부진해요. 역시 체력이 국력인가 봅니다. 반면 운동에 따라 메달 노다지인 종목이 있는가 하면 메달 숫자가 너무 제한된 종목이 있어서 불공평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박 - 수영과 양궁이 좋은 예입니다. 28일 현재까지 미국이 딴 76개의 메달(금 32)중 절반 가까운 33개(금 14)가 수영에서 나왔습니다. 자기네가 강한 종목은 50미터,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1600미터에 배영, 접영, 자유형, 혼영 등으로 세분해서 메달을 많이 만들어 놓고 독식하면서 한국이 잘하는 양궁은 달랑 남녀 단체전, 개인전으로 제한하고 경기방식도 일대일 방식으로 바꿔놓지 않았습니까. 태권도는 한국이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국가에서 4체급으로 출전을 제한했답니다. 더욱이 수영은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 흑인이나 동양인은 맥을 못추고 백인들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의 의구심마저 들어요.
▲옥 - 올림픽 중계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상업주의라고 해도 너무하다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 미국인들의 관심에 맞추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하고 이해는 되지만 너무 일부 종목에 편중되고 또 미국 중심으로만 중계가 되는 것 같아요.
▲박 - 미국내 중계권을 딴 NBC가 전경기를 녹화중계로 하는 데다 중계시간의 절대적인 비율을 수영에 할애하고 있어 욕을 많이 먹습니다. 사실 수영이라는 것이 결과를 알고나면 허부적거리는 동작일 뿐인데 녹화중계를 봐서 재미있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도 NBC측은 미국선수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수영에 전력투구를 했습니다.
▲옥 - NBC 방송의 이번 올림픽 중계와 관련해 빈정거리는 말이 많이 나왔죠. ‘NBC 시간대’라는 말이 그 중 하나입니다. 시드니하고 시차가 상당해 중계에 어려움이 따르는 건 알겠는데 하루 전에 끝난 경기를 마치 방금전 시작된 경기인 양 방영하는 걸 보고 ‘NBC 시간대’로 제멋대로 방영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올림픽 경기의 명승부라든지, 인간 승리 드라마 같은 것은 국적에 관계없이 조명했어야 하는데 그런 자세가 아쉬웠습니다.
▲박 - 그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스포츠팬들도 불만이 많더군요. 올림픽은 미국선수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스포츠 스타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저 미국선수들만 쫓아다니다 보니 볼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번에는 녹화중계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선지 유독 선수 주변 이야기를 많이 보여주었어요. 어느 스포츠팬이 스탑워치를 가지고 재어봤더니 1시간 중계하는 동안 광고가 17분2초, 인터뷰와 주변 이야기 특집이 26분30초였고 정작 스포츠 이벤트 중계는 16분28초에 불과하더라는군요. IOC가 NBC에게서 중계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습니다.
▲민 - 올림픽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과연 올림픽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습니다. 공산권 국가는 국가 위신을 높이기 위해 선수들에 대한 혹독한 훈련과 약물투여 등을 서슴지 않고, 메달을 딴 선수들은 이를 이용해 돈벌 생각만 하고, 올림픽 관리들은 유치 희망도시로부터 뇌물을 상납 받는 일들이 반복되는 지금 순수한 아마추어 정신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거죠. 이에 대해 그런 부작용은 그리스에서 처음 올림픽이 시작됐을 때부터 끊이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권 - 올림픽 다음으로 관심을 모았던 소식은 남북한 관계였습니다. 6.15선언후 지난 3개월여 동안 남북관계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양측 교류가 이렇게 빠른 물살을 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옥 - 지난 24일자 신문이던가요.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북한군 장성등 대표단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한국측 장성의 영접을 받는 사진이 실렸지요. 남북 정상회담도 열렸고, 북한의 고위층이 수차례 서울을 방문해 남북한 당국자들이 만나는 모습이 이제는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심상’하게 됐는데도 막상 제복입은 남북한 군의 고위 당국자들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은 다소 쇼킹하게 느껴졌습니다. 인민무력부 최고 책임자가 서울을 방문하고 또 국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것은 남북관계가 새 국면에 들어갔다는 신호로 보아야겠습니다. 6.25때 침공군 입장에서 인민군 고위장성들이 서울에 온 이후 처음이지요. 남북관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권 - 모두가 바랐던 바이지요. 하지만 남북화해에 전력을 쏟는 김대중 정부와 민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남북화해라는 총론에는 찬성이지만 각론으로 가면 비판적 시각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너무 북한 중심이고 남한은 일방적으로 양보만 하니 매일 끌려 다니는 형국이라는 것이지요. 김대중 정부가 겉으로 내보이는 것, 드러난 실적에만 신경을 써서 그렇다고들 합니다.
▲옥 - 한국측만 서두르는 느낌입니다. 남북 국방회담에서도 한국측이 원하는 건 타결된 게 없어요. 남북한간 군사 직통전화나 상호 군사훈련 참관등 한국측이 당초 원했던 사항은 합의문에 빠져 있어요. 또 이와 별도로 진행된 2차, 3차 이산가족상봉 문제도 진전이 없습니다. 반면 한국은 북한에 60만톤, 1억달러 정도의 식량원조를 이미 합의해 준 모양입니다. 북한으로 보면 9억원 어치 송이버섯을 가져다주고 100배 이상을 얻은 격입니다. 북한은 가급적 지연작전을 펴면서 남한으로부터 얻을 것은 다 얻어내자는 작전인 것 같아요. 오죽했으면 DJ정부의 북한정책을 전폭 지지하는 한국의 모신문까지 정부가 어물쩍한 방법으로 북한에 식량원조를 해주기로 했다고 공격하고 나섰을까요.
▲권 - 남북화해에 남한국민들이 더 이상 크게 감동받지 않는 것은 경제에 대한 위기감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18일 경의선 철도복원 공사 착공식 때 한국신문들의 1면이 상징적이었습니다. 남북이 다시 이어지는 역사적인 대사건은 옆으로 밀려나고 주식시장 붕괴가 톱기사였습니다. 금융불안, 의료계 파업, 주가폭락등 근심거리가 많아지자 남북문제는 국민들 관심권에서 뒤로 밀려난 것이지요.
▲민 - 한국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급등하면서 한국 경제가 다시 IMF 사태를 맞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낙관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외국 분석가들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박 - 남가주 한인들도 걱정을 합니다. LA 경기는 한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한국 사정이 계속 나빠질 경우 LA에도 영향이 올 것이 분명합니다.
▲민 - 한국 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금융이라는 게 공통적 관측입니다. IMF 이후 금융 개혁을 한다고는 했지만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270억달러를 투입, 기초를 튼튼히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최소 그 두배는 들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들이 지고 있는 악성 부채는 규모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지만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관치금융으로 대출이 시장원리가 아니라 권력층 백과 연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지요.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무조건 꿔주라고 압력을 넣는 바람에 은행이 자율적으로 손익계산을 할 여지가 없습니다. 덕분에 한국 은행 총 대출액의 11%가 악성 부채이며 지난 1년간 17개 상업은행의 수익률은 -21% 수준입니다. 대우만 해도 900억달러의 빚을 지고 무너졌는데 정부가 압력만 넣지 않았어도 이처럼 손해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금융업계의 근본적 구조개혁 없이는 한국 경제 위기는 주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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