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을 거부하는 ‘태고’의 숨결을 찾아서
▶ 김영씨 부부, 선우중옥씨 가족
문명을 거부하는 오지로의 탐험여행이 새로운 해외여행 장르로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인사회에도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인간의 발길이 흔치 않은 미지의 세계로 찾아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문명에 훼손 당하지 않은 지구촌의 마지막 미답지를 답사하고 색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오지여행은 인간 내면 깊이 숨어있는 개척정신을 충족해 주면서 자녀와 함께 떠날 경우 매우 교육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비가 만만치 않으며 육체적으로도 매우 힘든 오지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최근 오지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밸리에서 가축병원을 운영하는 영 김(59)씨와 벤추라 카말리요에서 세탁업에 종사하는 선우중옥(60)씨의 여행담과 오지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보자.
●킬리만자로 등반기-김 영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는 그 높이가 19,340피트(5,895m)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제일 높은 산이며 세계 7대 정상의 하나다.
헤밍웨이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산은 항상 구름에 싸여 그 자태를 감추고 있지만 이따금 구름 사이로 드러내 보이는 만년설의 흰 봉우리는 장엄하고 우아하며 신비스럽기까지 하여 세계 등산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킬리만자로 등반의 꿈을 꾸기 시작한 후 그동안 하이 시에라의 봉우리를 수없이 오르내렸고 등산을 위한 해외여행도 몇차례 해오던 중 올 봄 시애틀의 한 등반회사에서 모집한 8월 등반팀에 가입함으로써 마침내 킬리만자로 등반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등반 전 4개월간은 저녁시간을 이용해 40파운드 배낭을 매고 한두 시간씩 언덕길을 오르내렸고 주말이 되면 주변 산을 돌아다니면서 등산을 했다.
틈틈이 등산 장비도 구입하고 예방접종, 비자신청 등을 마치니 어느덧 출발 날짜가 다가왔다. 지난 8월13일 집을 떠나 암스테르담과 나이로비를 거쳐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도착하니 꼭 이틀이 걸렸다. 여기에서 미국과 독일에서 온 다른 등반대원들과 합류했는데 총 14명의 대원(여자 3명)에 가이드, 포터, 쿡 등을 합치니 모두 50명이 넘었다.
킬리만자로의 등반 루트의 하나인 마차메루트를 따라 등반이 시작됐다. 여기서부터 정상에 도달하는데 6일 하산하는데 2일이 걸린다.
첫날은 열대의 정글 속을 걸었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키만큼 자란 짧은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걸었는데 고도가 1만4,000피트에 다다른 4일째부터는 나무 하나 없는 벌거벗은 산이고 낮에는 햇볕이 따가우나 해만 떨어지면 기온이 급강하하며 공기가 희박해지고 숨이 차기 시작한다. "풀레! 풀레!"(천천히 천천히) 가이드들이 되풀이 강조한다.
6일째 등반인 애로우 그레시어 캠프(1만5,300피트)에서 크레이터 캠프(1만8,500피트)까지의 등반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며 정상 등반의 성공 여부가 여기에서 결정된다. 경사가 낭떠러지 같고 손과 발을 모두 사용, 바위를 타고 고도 1만5,000피트 이상에서 또 3,200피트를 더 올라가야 한다. 공기는 점점 더 희박해지고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등반 30분만에 물병의 호스가 꽁꽁 얼어붙었다. 처음으로 등반 자체를 후회하는 마음조차 들었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등반한 끝에 마침내 크레이터 캠프에 도착했는데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얼음 덩어리들이 병풍을 두른 듯이 아름다웠고 나는 기쁨으로 마치 하늘을 솟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에서 정상은 고작 한두 시간 거리에 불과하나 날이 저물어서 이 캠프에서 하루 저녁을 자야 한다.
저녁이 되니 바람소리가 휘바람소리 같았고 기온도 영하 17도로 떨어졌다. 그런데 아내가 심한 두통과 헛구역질 기침을 하며 드러눕지를 못한다. 열심히 침낭과 자켓으로 아내를 감싸주고 있는데 두세 시간 후에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하고 잠도 조금 붙이는 것 같아 안심을 하였지만 그때 겪은 절박한 심정과 마음의 공포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1년 전에 이 캠프에서 포터 한 사람이 죽었고 금년만 해도 킬리만자로 등반중 세 사람이 고산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악몽의 밤이 지나고 집을 떠난 지 열흘, 등반을 시작한지 칠일째 날인 8월23일 오전 8시10분 나와 아내는 마침내 아프리카의 지붕이라 불리는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도달했다.
●티벳 탐험기-선우중옥
2박3일간의 네팔관광을 마치고 드디어 진정한 오지여행을 시작한다.
도요타 랜드크루저 지프차의 유리창 너머로 시야가 안보일 정도로 궂은 비속을 가르며 네팔에서 티벳으로 넘어가는 지점의 도시인 장무(Zhangmu)의 언덕길을 넘었다. 이쯤만 되어도 제법 고도가 있어서인지 몸을 노출시키기가 거북할 정도로 차가운 기온이 감돈다. 날이 맑았다면 경치 구경으로 여념이 없었겠지만 험한 길에 을씨년스런 날씨 때문인지 김장감이 앞선다.
길은 끊인 곳은 없지만 깊이 패이고 노출된 돌들 때문에 심하게 몸이 흔들린다. 차 앞자리에는 운전기사와 큰딸 원미(26), 뒷좌석에는 나와 처 그리고 막내딸 원희(23), 그리고 서울서 합류한 등산 후배인 사진작가 손재식이 창가에 앉았다. 우리 일행은 이렇게 기사, 가이드를 합쳐 모두 7명. 여행 일정은 열흘로 짐도 많아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차안은 좁았다.
해발 3,775m의 알람(Nyelam)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여행객을 상대로 한 초대소라고 부르는 게스트 하우스가 한 곳 있는데 예상한 대로 화장실은 밖에 있고 나무로 만든 침대와 더러워 보이는 이불 대신 준비해간 침낭을 펴고 피곤함에 모두들 쉽게 잠이 들었다.
신음소리에 깨어보니 집사람이 심한 구토와 두통을 호소.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심하게 올 줄은 예상 밖이었다. 모두들 이렇게 고산병 증세로 고생을 하며 티벳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이튿날, 어제와는 달리 맑게 개인 날씨 덕분에 멀리 구름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히말리야의 흰 산들 그리고 수많은 유목민과 그들의 가축(산양, 야크-인도 북부와 티벳 고원에 걸쳐 사는 털빛이 검은 소과의 짐승)들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해발 5,050m의 라릉 패스(Lalung Pass)를 넘어 팅그리(Tingri) 마을까지 달려갔다. 마을에서는 마침 말축제가 벌어져 예상치 않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전통적인 유목민의 강렬한 색상(빨강, 노랑, 흑색) 의상을 잘 차려 입고 행사가 진행된다. 열심히 묘기를 보이는 기수들을 보며 남녀노소가 즐거워한다.
여행은 더욱 더 고도를 높인다. 해발 5,220m의 락파(Lhakpa) 패스를 넘는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유채꽃과 이름 모를 야생화 때문에 시각적으로 평지를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지나는 길은 지난주의 많은 비로 인해 엉망진창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수많은 대형 트럭들이 진창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고 줄을 서있다.
티벳 제2의 도시 시가체(Shigtse)에 왔다. 이 곳은 티벳의 종교 지도자인 판첸 라마(Panchen Lama)가 거주하는 곳이다. 티벳이 중국으로부터 종교적 정치적으로 통치를 받고 있어서인지 판첸 라마의 궁 주변은 어쩐지 우호적인 느낌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곳 최대의 절인 찰십윤포사의 절에 들어가니 그 곳에 신심 있는 신도들과 몇몇 승려들이 눈에 띌 뿐이었다.
여행 7일만에 티벳의 수도 라사(Lhasa)에 도착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포탈라궁은 바위산 꼭대기에 정성을 다해서 지어졌다. 20만개 이상이 되는 불상에 셀 수도 없는 국보급 불교 문화재들이 놓여 있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 이후 티벳 사람들의 정신적 문화와 지주를 교묘하게 파괴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이 곳을 방문하면서 느껴졌다. 티벳 최대의 승원이라 부르는 드레픙 승원에는 신도가 눈에 띄지 않았다. 역시 불사중인 세라 승원에서 그나마 기도 중인 승려들을 한차례 본 것이 전부였다. 포탈락궁의 외곽을 따라서 도는 링코르나 조캉 사원을 따라서 순례하는 바코르의 행렬도 흐름이 끊긴 듯한 모습이다. 이것이 오늘날 티벳의 현실이고 치러야 할 물결이라면 이 정도에서 더 변하기 전에 그럴싸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어야 하는 것이 그나마 라사에서의 우리의 할 일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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