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보는 시각
▶ 홍순형<남가주 한인노동상담소장>
70년대 초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평화시장 소년소녀 노동자들의 혹독한 노동 실태를 죽음으로 폭로한 전태일 선생을 우리 민족의 대표적 양심으로 존경하는 나는 자살과 관련한 비보를 접하면서 평범하게 처리되는 자살이란 행위도 그 내면에는 선언적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보는 버릇이 있다. 물론 당사자가 이승을 떠난 후 진실을 밝히기란 너무도 힘들다고 생각되는 면이 있지만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을 접하면 적어도 진실에 접근해 보려는 노력은 해보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고 이명섭씨가 목을 매달아 스스로 삶을 포기 한지 1년이 채못되어 김창욱옹과 김경원씨가 또 각각 죽음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 끔직한 장면들을 가급적 빨리 잊고자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분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이들을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라며 죽음을 무책임한 행위라고까지 평가하다. 그러나 만약 진실이 항상 밝혀지는 이상적인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이 세분의 비참한 죽음에 드리워진 암흑을 진실로 거두어 줄수 있지 않을까? 이명섭씨는 일본계 대기업 니폰 익스프레스사의 상관들의 차별과 모함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저승을 택했다. 이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범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으나 적어도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하는 상황에 와있다. 과연 진실이 밝혀질지 의문이지만 이명섭씨가 진정 차별과 음모에 걸려든 분노에 대한 최후의 항거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분은 오늘 진실을 밝히려는 작은 노력들에 감사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창욱옹의 경우는 다르다. 분단된 조국 북녘땅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이 절망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연결된다. 해외에서 생사도 확인이 안된 유가족까지 남긴 채 스러져간 그분의 최후는 실로 참담한 분단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도 이명섭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니폰 익스프레스사처럼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보면 분단이 가족을 형제, 자매, 부모, 자식을 갈라논 바로 그 원인 아닌가... 그러면 분단의 원흉이 고 김창욱옹의 살인자다. 문제는 ‘분단이라는 현상은 우연히 생긴 자연발생이 아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비롯된 역사이며 진실 규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분단을 만들고 정당화한 모든 사회 세력과, 사상, 논리 또한 죄를 지었다고 규정할 수 있다. 지난 6월 정상회담으로 통일의 시대가 열린 이 시점에 김옹의 죽음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단을 발생시킨 모든 반통일적 세력과 요소는 김옹의 살인자요, 나아가 민족의 반역자라고 감히 선언한다. 우리 모두 김옹의 비통한 죽음앞에서 반성을 해야할 것이다. 조국의 통일을 반대하는 논리가 내 머릿속에 있다면 그런 낡은 생각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분단세력이나 요소는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 김경원씨의 비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조국에서 일명 IMF시대를 맞아 실직가장이 속출하면서 자살로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한 토막의 뉴스가 되어 태평양을 건너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지 벌써 3년째지만 이곳 한인타운 일각에서 일어난 김선생의 삶을 우리는 심각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조국을 등지고 IMF를 극복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한 가장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지 불과 몇달이 못되어서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든 범인은 누구일까? 물론 IMF가 그를 실직시키고 그를 조국밖으로 밀어낸 책임이 있지만 불법체류자라고 사람을 규정하고 이런 신분을 악용한 자들 또한 살인자다. 한인사회에 이민관련 사기행각을 벌이는 자들로 비롯된 피해는 이루 말할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기 행각이 폭로되고 척결되도록 피해자들과 언론을 비롯해 모든 양심인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전태일 선생의 말은 보다 넓고 큰 메아리가 되어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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