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의 엘리트
▶ 장석정<일리노이주립대학 경영학 교수>
한국사회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각종 비리와 부정이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최근에만도 새로 임명된 장관이 무언가 미심쩍은 일에 관련되었었다는 이유로 한달도 못되어 물러났고 은행의 거액 부정대출사건에도 이른바 실세의 고위관료가 연루되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사실 한국에 믿을 만한 곳은 하나도 없고 썩지 않은데가 한 군데도 없다는 개탄의 소리가 들려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계, 관계, 재계, 법조계, 학계 등 모든 분야의 고위인사들이 저지르는 온갖 부조리와 파행을 수없이 보아 왔던 우리들은 이제 한국의 지도자급 인사들, 즉 엘리트(e그룹을 한 두름에 못 믿을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기능은 엘리트그룹이 담당하게 마련인데, 사회의 엘리트그룹이 총체적으로 무능하고 부도덕하다면 이는 매우 절망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물론 한국사회의 엘리트그룹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 사회가 남다르게 획일화되어 있고 지나친 공동체 의식이 지배하는 나머지 모든 일을 일반화하고 객관화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이렇게 지도자들을 한 두름에 매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도 엘리트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정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클린턴대통령이 스캔들로 정치생명에 위협을 받았을 때 미국인들은 미국정계가 송두리째 썩었다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어떤 종교지도자가 추행을 했다고 해서 미국의 종교계 전체가 매도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어느 지방법원에서 부정이 터지면 전국의 법조계가 비난을 받고 모(某) 대학에서 비리가 드러나면 학계 전체가 매를 맞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엘리트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사회적 기준이다. 한국사회의 엘리트는 개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분야와 직종에 따라서 이미 구분되어져 있다. 그래서 정계, 관계, 법조계, 학계 등은 이미 그 전체가 엘리트그룹이라고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밖에 많은 분야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관련되는 분들의 양해를 바라면서 오직 글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세간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자면) 아무리 무능해도 검찰에 있으면 엘리트지만 유능해도 경찰에 있으면 엘리트가 아니고, 아무리 무능해도 대학교수면 엘리트지만 유능해도 초중고등학교 교사라면 엘리트가 아니라는 판결이 대충 내려져 있다.
미국과 같이 다원적, 복합적이고 수평적인 사회에서는 각 분야에서 능력과 자질, 성과와 업적에 따른 엄격한 엘리티즘이 지배한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 요구되는 기능과 역할을 남들보다 우수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검증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알 고어나 조지 W. 부시가 정계의 엘리트인 것처럼 빌게이츠는 재계, 타이거 우즈는 스포츠,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계의 엘리트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개개인의 특질은 도외시하고 특정한 ‘엘리트신분’에 대하여 막연한 사회적 기대감과 도덕적 책무를 지운 다음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가중책임을 물으며 비난을 쏟는다. 이에 통칭 엘리트 그룹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사회의 여론과 틀과 모양새를 결정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분에 넘치는 사명감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구별되어 있는 엘리트그룹에 대하여 획일화된 사회적 압력이 작용한다.
미국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엄정하게 선별된 엘리트들이 철저한 사회적 책임 의식과 직업의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간혹 그들중에서 일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에 동요하거나 굴복하지 않는다. 미국의 엘리티즘은 각자가 자기책임하에 자기이해와 자기발전의 동기에 따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선의의 경쟁풍토에서 자연히 생성되고 있다.
어느 분야에나 알곡과 쭉정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제 한국사회도 고위관료, 판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등이면 무조건 엘리트라는 전근대적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초등학교교사, 경찰, 운전기사, 자영업자, 국악인, 운동선수들 중에도 엘리트들이 있게 마련이다. 각 분야에서의 진정한 엘리트를 가려내고 그들의 기능과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반면에 특정 분야나 직종에 있는 사람들을 무조건 엘리트로 추키고 엉뚱한 책임논리만 펼 것이 아니라 그들중에서도 쭉정이를 가려내어 가차없이 다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룹전체나 그 우두머리에 대하여 애매하고 어정쩡한 비난만 퍼부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을 철저하게 추궁하는 올바른 견제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건전한 엘리티즘의 정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