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로서 루 게릭병과 싸우는 의사 줄스 로디시
55세의 줄스 로디시는 의사지만 불치병인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말기 환자이기도 하다. 현재 증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정신과 지각 상태는 멀쩡해 로디시에게 ALS는 마치 "내 죽음을 맨 앞자리서 구경하는 것"만 같다.
ALS로 판명받은 후 지난 6년간 로디시는 이병 환자들의 평균 생존율을 앞질렀을 뿐 아니라 하루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해왔다. 혈액및 종양전문의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기존 병원 수준을 능가하는 적확한 치료 시스팀을 고안해낸 한편 ALS 환자 사망의 제 1원인인 감염으로 죽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해 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조언과 의지를 제공하는 사람이며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상담도 해준다. 로디시는 언제나 스스로를 "환자들이 앞으로의 삶을 겪어내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사항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환자 사정을 봐주는 친절한 질병은 없겠지만 ALS는 극도로 잔인하다. 운동근육신경세포를 공격, 근육을 조절하는 신경을 쓸모없는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이 병의 초기 증상은 피곤함이나 동작의 둔함 정도지만 곧 손, 팔, 다리, 목 근육을 약화시키고 결국 마비로 인해 호흡 능력을 상실한다. 1939년 5월 2일 현재 2,130게임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웠던 뉴욕 양키스 야구선수 루 게릭이 이 병으로 더 이상 시합에 나올 수 없었고 2년후 사망한 이후 루 게릭병으로 널리 알려졌다.
ALS는 일반적으로 3-5년동안 진전되지만 대부분의 뇌속 신경세포는 건강하므로 정신력이나 감각은 손상받지 않는 상태여서 스티븐 호킹도 이론 물리학에 기여할 수 있고 줄스 로디시도 가족과 친구를 위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로디시는 워싱턴 교외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자택에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호흡 관장 근육이 4년전 활동을 멈춰서 윙윙거리는 기계가 목에 달린 기관절개 튜브로 숨을 쉬도록 한다. 그간 가족의 대가는 컸다. 심각한 환자의 24시간 연속 보살핌은 물리적, 감정적으로 지치고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ALS와의 전쟁은 1993년 말께 빙판에서 넘어진 후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몇 개월간 엉덩이의 통증과 행동의 둔함이 계속됐다. 중년의 나이와 하루 18시간의 과중한 업무가 마침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생각했을 뿐 자신이 조금씩 약해져 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날 그는 차문에 꽂힌 열쇠를 두손으로도 돌릴 수 없게 되자 1994년 5월 진단을 받았다.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부인 캐롤린은 영어교사였고 장녀 엘리자베스는 인근 대학에 다녔었다. 아들 마크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4학년으로 여름방학이라 집에 있었고 막내 에밀리는 중학생이었다.
악화는 점차적이었지만 분명했다. 1995년 1월까지만 해도 그는 몸이 더 좋지 않은 날에만 휠체어를 사용했지만 12월이 되자 설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결정적 위기는 1996년 1월 20일에 닥쳐왔다. 줄스가 휠체어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은 상태로 숨도 쉬지 않는 것을 캐롤린이 발견했다. 줄스는 뇌에 손상을 입은 상태로 살기를 원하지 않았고 의사들은 산소 손실이 그의 두뇌에 해를 미치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캐롤린은 음식 섭취와 호흡용 튜브를 삽입하라고 일렀다. 그는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뇌는 전혀 손상받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그들 앞에 놓였다. 영구 호흡 튜브는 목에 구멍을 내는 기관지 절개를 요구했기 때문에 로디시는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숨을 쉴 수 없었다. 로디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뜻을 표했고 가족에게 안녕을 고했지만 다음날 아침 마음을 바꿔먹었다. 아직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기술인 패시-뮈어 밸브가 지속적으로 공기를 성대로 공급해 주는 덕분에 자기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었고 5개월 후 퇴원했다.
로디시는 가족들이 그의 오랜 생존의 공으로 돌리는 규칙과 일과를 설정했다. 우선 간호사들을 위한 35페이지 분량의 훈련 매뉴얼을 작성했다. 여기에는 매일 수행돼야 하는 모든 과정, 모든 장비의 수리와 운용, 그가 필요로 하는 살균 기술 등이 담겨있다. 의학장비들로 윙윙거리는 방의 벽에는 가족과 친구의 사진, 도표와 치료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담은 리스트로 가득 차 있다.
로디시의 하루는 빡빡하다. 자신을 위한 일과 수행 짬짬이 의사들의 추천으로 그에게 전화한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준비하도록 전화로 상담하며 도움을 제공한다. 신문도 열심히 읽고 테입으로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정신없이 바쁜 일로 기회가 없었던 포크너의 소설들을 읽는 즐거움도 누린다.
지난 6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가을에 결혼한다. 에밀리는 지난해 예일대에 진학했다. 마크는 대학을 마치고 가정 진료을 제공하는 인터넷 회사를 차렸다. 특히 최근에는 32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캐롤린은 아직도 남편을 살려내라고 의료진에게 말했던 날을 여러 번 떠올린다.
이후 그녀나 자식에겐 희생이 따랐지만 기관지 절개로 그를 살린데 대해선 유감도 후회도 없다. 줄스는 "지난 4년간 내 자식들의 삶의 전개를 볼 수 있었던 것만 해도 나에겐 더없는 행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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