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에서 한 철도국 직원이 열차의 냉장칸에 갇힌 사건이 있었다. 냉장칸을 점검하다 실수로 문이 닫힌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지만 밖에서 열게 만들어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결국 얼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몇시간을 기다려도 바깥에서 인기척이 없자 그는 자포자기했던것 같다. 마침내 다른 직원들이 냉장칸의 문을 열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직원들은 동료의 죽음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 냉장칸은 오래전부터 고장이 나서 실내온도나 공기가 사람을 죽게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냉장칸에 갇힌 직원은 얼어서 죽었다기 보다 ‘내가 결국은 죽고만다’는 강박증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죽은 것으로 보아야 했다. 실제상황 없이 ‘생각’만으로도 사람이 죽을수 있는 것이었다.
여름이 막을 내리는 노동절연휴, LA한인타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K씨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IMF여파로 한국에서 사업에 실패한 후 미국에서 새삶을 일궈보려던 선량한 가장이 겹겹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생을 끝내버린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문사로도 여러 독자들이 전화를 해서 안타까움과 가족을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K씨 사건을 보면서 내게 가장 가슴아픈 것은 그가 형체도 없는‘생각’에 눌려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처지가 절박하기는 했다. 미국에 온 10개월동안 전재산 정리해 가지고온 돈은 비즈니스가 망해 날리고, 방문비자는 만기가 돼 불법체류신분이 되고, 취업을 위해 소셜시큐리티 카드를 받아보려던 계획은 이민대행업자의 서류위조로 무산되고 … 그렇지만 죽음까지 갈만한 실제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부인 말에 의하면 K씨는 소셜시큐리티 카드 신청이 잘못되면서 “이민국에서 나를 잡으러 올 것이다, 곧 추방당할 것이다”는 강박증에 시달려 아무 것도 하지를 못했다. 거의 1천달러에 달하는 디파짓을 그대로 버리고 아파트를 옮겼을 정도였다. 냉동칸의 철도국 직원처럼 그도 강박증의 감옥에 갇혔던 것으로 보인다. 강박증에 우울증, 불안증이 겹치면 사람이 자살을 할수 있다고 한다.
강박증은 비전문적으로 말하면 ‘생각의 노예’ 상태라고 할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는 사고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특정한 생각에 내가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 그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치기도 하고 행동이 따르기도 한다. 개스불을 안끈것 같아 몇번씩 확인하고, 병균이 오염될 것같아 하루에도 수십번씩 손을 씻어야 하는 것들은 강박행위이다. 행동없이 생각만 집요하게 되풀이되는 것은 강박관념이다.
정신과의사들은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강박증 환자가 늘고있다고 한다. 그러면 강박증은 개인만의 문제일까. 사회의 강박증이 더 심각하다. 우리는 지금 강박증의 사회에서 살고있다.
미국에 처음 와서 “내가 정말 이상한 나라에 살러 왔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은 딸을 데이케어센터에 보내고 나서였다. 어느날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것을 말하는 데 기가 막혔다. 낯선사람과는 절대로 말하지 말 것. 누구든 자신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면 싫다고 말하고, 도망치고, 믿을만한 사람에게 알릴 것-어린이 성추행이 이슈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예방교육을 시키는 것이었다. ‘낯선 사람=위험한 사람’이란 강박증이 심어진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 만드는 사회에서 어떤 훈훈함을 기대할수 있을 것인가.
초등학생이 장난감총을 학교에 가지고 갔다가 무장경관들의 집중포위를 받는 일은 총기에 대한 미국의 강박증이 빚어낸 코미디이다. K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민자에 대한 미국사회의 강박증이다. 이민자는 일자리를 빼앗고 세금을 축내는 존재, 아시안, 히스패닉은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미국에서 살려하니 가능한한 막아야 한다는 강박증이다.
사람마다 한두가지 강박관념은 있다. 잠시라도 쉬면 불안한 일에 대한 강박증도 있고, 일등이 되는 것, 날씬해지는것, 젊어지는 것, 성공하는 것에 대한 강박증도 있다. 적당한 강박관념은 요즘같이 경쟁적인 사회에서 필요악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강박증의 특징은 너무 꼿꼿해서 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휘지 않으면 꺾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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