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무더웠던 날씨만큼 길고 지루한 여름이었다.
눈과 귀를 시원하게 씻어줄 것이라고 고대했던 박세리의 승전보마저 없어 답답함이 더했다. 간간이 박찬호의 승리소식이 들리긴 했지만 무거운 마음을 달래진 못했다.
올 여름동안 우리를 더욱 무덥고 짜증나게 한 것은 8·15행사를 둘러싸고 나타난 한인회와 평통의 싸움이다. 올 8·15행사는 국내외의 사정이나 새 천년의 첫 8·15행사임을 감안할 때 가장 멋진 축제 속에 치러져야 할 행사였다. 그러나 어떠했는가. 분열만 남기고 동포들간 감정의 골만 더 깊어졌다.
한인사회 대표 단체라는 이 두 단체의 싸움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처음에는 행사 주최권을 놓고 내가 주최하느니, 네가 주최하느니 싸우더니 나중에는 소위 친북인사들과 행사를 같이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실랑이다. 또 양성철 주미대사 연설의 순서명칭을 놓고 한쪽에서는 축사로 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키노트 스피커(Keynote Speaker)로 해야 한다고 싸운다. 이외에도 축사인원을 몇 명으로 하느냐, 행사장에 태극기를 게양한다 안한다 등 끝이 없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태극기 게양과 관련한 헛소문의 진상을 파헤친다며 공개질의서까지 나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LA 한인사회 대표 단체들간에 이같은 싸움이 벌어지자 당시 민주당 전당대회 참석 등의 이유로 LA를 방문중이던 한국의 국회의원들까지도 행사에 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고민하다가 안면 때문에 엉거주춤 행사중간에 들어오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행사가 한번만 더 치러진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누구를 위한 행사이고 무엇을 위한 행사인가. 한인회와 평통이 그 답을 모를 리 없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를 묻는다면 그들도 분명히 그 답을 알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3김’이다. LA 한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는 한인회와 평통이다. 한국인들이 3김을 싫어하는 이유는 똑같이 되풀이되는 정치행태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LA의 한인들이 한인회와 평통을 지겨워하는 이유도 바로 되풀이되는 행태에 대한 염증 때문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같으냐고 화를 낼 수도 있다. 한국의 3김이 스스로 가장 싫어하는 말이 3김인 것과 같다. 서로 같이 묶어지기를 싫어하는 거부감 때문이다. 물론 각 사람들이 한인사회에 미친 영향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대다수 한인들에게 비춰지는 한인회나 평통의 모습은 똑같다.
도대체 미래가 없는 단체인줄 알면서도 기대 또한 버리지 못한 것이 바로 한인회와 평통이다. 우리가 3김에 느끼는 것과 같다. 다시 한인회와 평통을 들먹인다는 자체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객담처럼 들릴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에게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유산의 한 부분을 만들어야 하는 몫이 있기 때문이다.
한인회와 평통은 봉사기구다. 봉사는 사랑이어야 하고 소리가 나서는 안된다. 자기보다는 남에게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 소리나는 봉사는 과시일 뿐이다. 소리나는 일은 안하는 것만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앞세워 그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를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자기 임기 동안 무엇을 만들어내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남북이 이렇게 빨리 화해가 될 줄을 누가 예상했는가. 역사는 변하는 것이다. 우리 이민사회도 변하고 있다. 자신만이 바퀴를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이 시대 지도자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지도자는 말을 잘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힘보다는 무한한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망상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있어서의 지도력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정말 오래간만에 비가 오더니 가을을 재촉하는 새 바람도 불어온다. 한인사회 새 바람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한인회와 평통이 한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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